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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로테이션 01

햇빛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깨는 잠이 싫어서 달아놓았던 커튼이 무색하리만큼 따뜻한 햇볕이 눈을 찔렀다.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 특별할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하루. 그것이 일상이었다.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하고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한 그저 취업준비생 23살의 인생.


'지민아 언제 집 한 번 들려. 반찬 해뒀어.'


채 다 뜨지도 못한 눈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침대 옆 서랍에 놓여있는 휴대폰이었다. 문득, 오랜만에 엄마에게로부터 문자가 하나 와있다. 그러고보니 반찬이 떨어졌었나. 알 턱이 없었다. 요새 집에서 밥을 먹고 다니는 일은 드물었으니까.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지민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명백히 말해, 실패했다고. 사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하게 살아갈 생각도 없었지만. 23살이라는 나이는 애매하기도 너무 애매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애매한 건 아직 취업도 확정되지 않았고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 만족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지민은 무용을 배웠던 아이였다. 아이라기보다는 이제 사람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거에는 미래가 밝았던 제법 유명한 무용수였다. 그저 부모님의 소개로 어릴 때부터 배우게 됐던 현대 무용이 어느새 마음 속에 자리잡고 점점 진로가 한 곳으로 집중될 때 쯤, 왜 그렇게 인생은 순탄치 않은 건지 연습을 하다 넘어져 그대로 발목을 다치고 말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별 게 아닌 부상일지라도 무용수에게 가벼운 부상은 치명적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나가게 됐던 국제 콩쿠르는 한번에 말아먹었고 그렇게 단숨에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후회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다만, 지금 조금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아, 학점 관리 좀 해둘걸..."


취업할 곳이 전혀 없다는 사실 뿐.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가다보니 어느새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제 와서 준비를 해봤자 늦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위 친구들은 어느새 다 취업을 해 나가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모습을 보자니 의욕이 절로 상실됐다.


노력을 안 하는 편도 아니었다. 현재로서 최선을 다하는 건 그저 부모님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아르바이트나 열심히 하는 것. 그게 다였다. 누가 취업 좀 대신 시켜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었다. 공부라고는 해놓은 게 없었고 가진 거라고는 전에 했던 무용으로 잡힌 잔근육들과 동작들 뿐이었으니까.


부스스한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침대에서 빠져 나오고서는 곧장 침구 정리를 했다.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긁적이며 나가다가 문득 어젯밤에 그대로 벗어놓고 들어온 옷가지들에 발이 걸려 눈을 내렸다. 눈살을 찌푸리며 한 가지씩 주워 들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나..."


궁시렁 거리면서 단숨에 세탁기로 던져버렸으나 넣어지기는 커녕 맞고서 튕겨나가 다시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옷가지들을 보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다시 주우러 가려는 찰나, 방 안에 놔둔 휴대폰에서 경쾌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누가? 딱히 전화올 사람은 없었던 눈살을 찌푸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호석이 형'


화면에 뜬 4글자에 눈이 휘동그레졌다. 과거, 함께 무용을 배웠던 형이었으니까. 거의 3년만이었다. 서울로 올라갔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서로 연락이 끊겼었는데.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호석이 형?"


그때부터였다. 인생의 전환점이 시작됐던 것은.



-



"야 박지민. 너 제대로 못해?"

"죄송합니다...그게 아니고..."

"변명."


그만두고. 딱딱하고 차가운 말이 귀에 박혔다. 움찔하고 눈을 질끈감자 그 조차도 보기 싫은지 앞에 서있던 그는 한숨만 깊게 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니이...사람이 깜박 잊을수도 있지..."


웅얼거리면서 그가 던져놓고간 수건들과 갖가지 것들을 집어 들어 품에 안았다. 안 치워놓고 있다가는 또 화낼 것이 분명했다. 일의 시초는 이러했다. 한 달 전 웬일로 전화를 다 했냐고 웃으면서 통화하기도 잠시, 호석은 급한 일이니까 빨리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직장을 가질 생각 없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좋은 일거리가 있다는 말까지. 원하지도 않았는데 끊임없이 내뱉는 그의 말을 뚝 잘라 무슨 말인지 정확히 말해달라고 하자 말은 간단했다. 자신이 아는 사람이 민윤기의 매니저로 뛰었었는데 얼마 전에 잘렸으니 혹시 매니저로 들어가볼 생각 없냐고.


민윤기라. 현재 남자 피겨 스케이팅으로 국가대표를 하고있는 사람이었다. 하얀 피부와 제법 마른 몸과는 달리 얼음 위에 서면 올곧은 얼굴과 단단하고 화려한 기술 덕분에 골수팬들이 제법있는 그 사람. 그의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사실상 자기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매니저를 한단 말인가.


그 때 거절했어야만 했다. 민윤기가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건 익히 들어 알고있는 사실이었는데.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은 솔직히 말해 평생 23년을 살아오면서 맞닥뜨린 적도 없는 스포츠였고 맞닥뜨리고 싶지도 않은 스포츠였다. 사실상, 얼음 위에 한번도 서지 못했다는 말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유독 얼음에는 약했었다. 취미 삼아 몇 번 해보려던 시도가 끝이었고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과 자신이 안 맞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부터는 흥미 자체를 떼버렸으니까. 그런데 지금 국가대표의 매니저를 하라고? 지금이야 확실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있지만 한 달 전 그런 모든 요소들을 고려한 여유로운 시간 따위는 없었다.


돈, 돈. 그것이 문제였다. 돈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매니저가 정규직이라는 사실에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게다가 현대 무용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스트레칭 등 근육 이완 운동을 시켜주는 단순한 코치 역할도 해달라는 말과 함께 선불로 한달치 월급을 제공받아 버렸으니.


제법 짭짤한 수입이었다. 하루종일 풀알바를 뛰어도 못 만져보는 돈이 당장 통장에 입금이 됐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나? 한 가지 후회하는 사실이 있다면 그의 성격을 간과했다는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이온 음료를 안 가져와?"


죽도록 힘들다.


"죄송합니다...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그게...저도 모르게...깜박 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연달아 사과만 했다. 이온 음료가 있어야 연습이 된다는 당부와 함께 지민에게 건네졌던 이온 음료 병은 까맣게 잊고 온 바람에 아직도 숙소에서 나뒹굴고 있을 것이 뻔했다. 바보 멍청이. 어떻게 그거 하나를 기억 못하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번까지 합해서 정확히 10번째 까먹은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과거에 자신도 운동을 했다고 해서 이온 음료병까지 착실하게 들고 다니지는 않았으니까. 강박 관념인지 뭔지. 성격은 그렇게 더럽고 사람은 차가우면서 챙길 건 다 챙기는 타입이었다.


고개만 숙이고 사과하는 것을 보는 것도 이제 지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질린 것인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윤기는 말을 이었다.


"너같은 거 필요없으니까. 찌부러져서 쳐다보기나 해."

"......"

"민폐니까."


싸늘하게 굳은 눈으로 지민의 위아래를 훑은 윤기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시 링 위로 돌아갔다. 모르겠다. 왜 그런 말을 듣고 괜시리 눈물이 또 눈물이 나오는지. 윤기가 차가운 사람인 건 이미 알고있었다. 한 달이나 같이 지내면서 알게된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심한 말을 들으면 지민도 사람인지라 눈물이 괜스레 돌았다. 안 해. 내가 왜 그런 말까지 들어가면서 해야해? 관둬. 진짜 안 할거야. 매니저가 최대 한 달을 넘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럴만 했다. 저런 성격에 한 달을 넘기면 용한거지.


자꾸만 눈 밑으로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에 입술을 앙다물고 눈을 비볐다. 화끈 거리는 얼굴에 훅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안 나가냐는 말과 함께 들려오는 윤기의 고함에 움찔하고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난인 줄 알았더니, 저 사람. 진심이다.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봤다. 천재는 감정에 예민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까. 첫날부터 그에게 안 좋은 말을 들었고,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변함은 없었다. 커다란 연습장 밖으로 나오니 막상 또 갈 곳은 없는지라 우두커니 쭈그려 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생각만했다.


"미워...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래?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줘도 괜찮았던 거잖아."


투덜 투덜 혼자서 윤기의 욕을 하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미 눈물이 들어가고 왠지 모를 분노만 잔뜩 남은 상태였다. 월급을 받아버린 탓에 내뺄수도 없고 여러모로 난감했다. 애초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받아들이지도 않았을텐데.


굳이 있는 스트레스, 없는 스트레스까지 끌어모아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다. 계속 바닥에 쭈그려 앉아있다 보니 다리마저 저려서 끙끙대며 문 손잡이를 잡고 일어섰다. 아직 이른 가을이라서 그런지 따뜻한 날씨가 뺨에 맞닿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연습장 내부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 두 눈을 꼭 감았다. 여기 온 지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아직 얼음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성격이 더럽다, 차갑다, 무섭다. 이런 걸 다 떠나서 유일하게 윤기에게 장점을 찾아보자면 딱 하나가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까 점프 되게 멋있던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누군들 안 멋있어 보이냐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사실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얼음 위에서 이리 저리 날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적잖게 멋있었다. 국가대표라는 단순한 명목 때문이 아니었다.


목 끝까지 올라오는 딱 붙는 재질의 검정 폴라티. 한 번 위로 날아오를 때마다 내뱉는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만 같아 괜스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무용을 그만둔지 벌써 몇 년이 됐는가를 세지도 않았는데 취지가 다르다 하더라도 결국 점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그렇다고 다시 무용을 시작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이 멋있다고 하더라도, 재수 없는 건 재수 없는 거니까.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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