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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로테이션 08

"네...?"


마을 축제를 가자고 말하는 듯한 윤기의 어조에 들고있던 노트와 날라온 수건을 힘없이 내렸다. 정신을 놓고 있다가 샤워장으로 향하는 윤기를 보고 황급히 달려가 옷깃을 붙잡았다. 그 덕에 뒤돌게 된 윤기는 무표정으로 지민을 응시했다.


"왜."

"저, 저는 그런말 한 적 없는데요?"

"했잖아."

"아, 안했어요!!!"

"눈으로 했잖아. 포스터 뚫리게 쳐다보던데."


변명할 것 없는 윤기의 대답에 입만 꾹 다물었다. 거짓말도 아니었고,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봤나 싶었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뾰로퉁한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은 굳게 닫혀있는 지민을 바라보다 됐다 싶어서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샤워장으로 향했다.


혼자 남게된 지민은 얼굴은 또 빨개지고, 마음은 두근거려서 미칠 지경이었다.


"조금 반칙 아니야...?"


마을 축제에 가고 싶다고 단 한마디도 안 했는데.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이라도 거절을 해야하나 싶던 찰나에 간단한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온 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뭐해. 안 가고."

"아...그게...역시,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그게 무슨 말인데. 눈살을 찌푸리며 지민 가까이로 다가온 윤기는 제법 위압감이 드는 표정으로 말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었다.


"윤기씨 연습도 해야하는데...괜히 방해하고..."

"다 끝냈어. 그러니까 가는거야. 너 때문에 안 하는 거 아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마치 꼭 읽었다는듯 딱 잘라서 말하는 태도에 밑을 보며 손가락만 만지작 거렸다. 그럼에도 망설여지는 이유는 평소보다 적어 보이는 연습량 때문일까.


"그래도..."

"내가 됐다면 된거야. 나오기나 해."

"......"

"아니면 나 혼자 가고."

"아, 아니에요!"


혹여 놓칠새라 헐레벌떡 쫓아가는데 윤기는 앞장서서 걸어갈 뿐 그 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밤의 일본은 고요했다. 윤기와 나란히 서서 걷는 게 낯설었고, 밤공기가 시원하게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괜스레 옆에 있는 윤기를 보다가 입만 벙긋거리고 다물기를 반복했다.


"할 말 있냐."

"아니요..."

"내가 말했지."


그러면 울 것 같은 강아지 표정 짓지 말라고. 나지막이 말하는 윤기를 보고 있다가 고개만 푹 숙였다. 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연습은 힘들지 않았느냐, 혹시 고민은 있느냐, 일본에 온 소감이 어떻느냐. 근데 그런 질문 해봤자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올 게 뻔하니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강 옆 둑길로 가는데 옆으로 흐르는 강이 꼭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아서 눈이 반짝였다. 축제가 열린다는 장소는 조금 더 가야했지만 이미 충분히 조그마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평소와 다른 사복을 보는 것은 이번이 2번째이지만 지난번 간편한 차림에 비하면 훨씬 달라진 윤기의 모습에 괜히 계속 웃음만 나왔다.


아는지 모르는지 웃는 모습을 보고 왜 웃느냐고 질문도 하지 않는 윤기에게 굳이 이유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반대편에서 살랑 살랑 불어오는 가을 밤바람을 느끼듯 두 눈을 감았다가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이라도 마음껏 봐둘까 싶어 살짝 눈길을 돌렸는데.


"우왓...!!!"


그대로 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팔짱을 끼고 걷길래 당연히 정면을 보고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본 윤기는 의외로 고개를 돌려 지민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자리에 우뚝 멈춰서자 피식 웃은 그는 지그시 바라보기만 할 뿐 더 이상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와...깜짝이야..."

"왜 자꾸 쳐다봐. 힐끔힐끔. 그거 기분 나쁜데."

"아뇨...제가 언제..."


자꾸 쳐다보던데. 발뺌할수도 없는 딱딱한 말투로 말하던 그는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행여 놓칠 새라 황급히 달려가 걸음을 따라잡은 지민은 차마 윤기를 바라볼 수도 없어서 흙에 파묻혀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오래된 운동화 끝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마을 축제는 왜 가고 싶은데."

"아니, 그거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저 딱히 가고 싶다는 말 안 했거든요?"

"했는데."

"아, 안 했다니까요?"

"그런 걸로 치고. 왜 가고 싶은데."


인정해주나 싶어 기뻐하던 찰나 뒤에 들려오는 '왜 가고 싶냐'는 질문에 다시 시무룩해졌다. 일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것에 관심이 없는 윤기를 잘 알기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안타까운 건 마을 축제의 묘미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스케이트 외에 다른 것에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었다.


그것까지 매니저가 신경쓸 부분이 아니라고 딱밤을 때리며 저번에 그는 말했지만, 역시나 신경쓰이는 건 당연했다. 연습을 마친 윤기는 표정에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삭막한 얼굴이 되어버리니까. 마을 축제에 같이 가준다는 것과 그 상대가 좋아하는 윤기라는 것만이 행복한 점들의 다가 아니었다.


이렇게나마 그를 연습장 외에 다른 곳으로 데려가볼 수 있다는 것도 크나큰 행복이었다.


"그냥...한번도 이런 축제 가본적이 없어서요."

"왜? 너 이렇게 떠들썩한 거 좋아하지 않아?"


아니, 뭐. 맞는 말이지만. 웅얼거리며 말하다가도 목소리가 작아졌다.


"어릴 때 연습만 너무 많이 해서 이런 경험 해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아기자기하고 예쁜 게 너무 좋아요. 축제도 그렇고요."


밝아 보이는 면모에서 예상 외의 답변이 튀어나오자 그의 표정이 문득 굳었다. 연습만 많이해? 그게 무슨 말이야. 과거에 무슨 운동이라도 했었던 건가. 그러고보니 지민의 대해서는 대학이고, 사는 집이고, 몇 살인지 조차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무슨 연습."

"아, 제가 말씀 안 드렸었구나. 저..."

"......"

"현대무용 배웠었어요...아...옛날 일이지만..."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리던 녀석은 그런 말에도 아무 반응이 없는 윤기를 흘긋 보더니 괜히 입맛만 다셨다. 이런 분위기 되라고 이야기 꺼낸 거 아닌데. 윤기는 유독 남의 불행한 과거에 예민했다. 평소라면 그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시한 채로 과거를 묻으려 하겠지만 이상하게 불행한 시절의 얘기만 나오면 그랬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굳이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던 건데. 하지만, 굳이 현대무용을 그만뒀다는 얘기가 불행한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나. 그런 당돌한 생각이 아무 생각없이 입 밖으로 나온 결과가 이것이었다.


"왜, 왜 그런 표정 지어요...?"

"어?"

"저 그런 표정 짓는 윤기씨는 싫은데..."

"...네가 싫으면 어쩔건데."

"......"


윤기의 차가운 말에 울상이 되자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는 한숨을 내쉬며 우뚝 걸음을 멈췄다.


"알겠어."

"......"

"우리 이 이야기는 일단 묻어두자."


평소와는 달리 다정한 목소리였다.



-



"와아, 진짜 많다."


축제를 하는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뭐라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잔뜩 늘어진 상점이며 먹거리들에 놀란 지민이 입을 쩍 벌리고서 제자리에서 펄쩍 펄쩍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신난 지민의 모습을 보는 것도 또한 드물었기에 가만히 냅뒀지만.


확실히 연습장에서 볼펜을 들고 식단을 짜거나 연습하는 윤기의 모습을 지켜봐주고 그런 때의 표정과 마을 축제에 데려갔을 때의 표정이 다를 것이라고 예상은 어느정도 했었지만 확연히 나는 차이에 조금은 조바심이 났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는 본인도 잘 몰랐다.


그저, 연습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때보다 훨씬 신나고 잔뜩 올라간 입꼬리에 왠지 모르게 괴롭혀주고 싶은 심정이 들었을 뿐. 아까 들었던 무거운 이야기 때문에 괜히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박지민이라는 사람을 한참 얕봤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온지 몇분도 되지 않았음에도 이리저리 나돌아다니고 있었다.


"천천히 가, 좀."


짜증섞인 목소리로 미간을 잔뜩 구기는 윤기를 보고서는 한참 앞질러서 가고있던 지민이 걸음을 멈췄다. 눈이 마주치고서는 밝게 눈웃음을 짓던 녀석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서는 크게 외쳤다.


"기다릴게요! 빨리 와요!"


기다리기는 개뿔. 제자리에 한시도 가만히 서있지를 못하고 그대로 걸음을 뒤로 하더니 또다시 앞으로 걸어가는 지민을 보고 지쳤다는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축제 온다고 그랬나. 확실히 말해 사람이 많은 곳은 싫었다. 이 곳이 한국이라면 쓸데없이 얼굴을 알아보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싫었고 외국이라면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이 부딪친다는 사실이 과하게 싫었다.


별 수 있나. 이미 와버렸고 지민은 한참 신난 상태인데. 한참을 더 가고 나서야 윤기 없이 혼자가는 게 또 싫었는지 멈춰서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지민과 마주칠 수 있었다.


"너는..."

"윤기씨가 느리게 오잖아요."

"길 잃어서 미아되면 대사관이라도 찾아갈 생각이야?"

"아니거든요! 저 길 안잃어버려요!"


그 말은 또 듣기 싫은지 발끈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대답 대신 피식 웃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진짜 아닌데, 라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지만 괜히 반박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번에는 지민 대신 자신이 먼저 걸음을 빨리했다. 축제라고 해봤자 윤기 눈에 드는 것은 거의 없었고 불빛이 켜져있다는 사실 외에는 딱히 볼만한 게 없는 것만 같았다.


그 때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던 지민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타코야키다!"


맛있게도 구워지고 있는 타코야키였다. 일본의 타코야키라니. 솔직히 탐날만 했다. 서울에서도 타코야키라면 사족을 못 쓰고 찾아다닐 정도였으니까. 주말마다 아파트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타코야키 트럭을 기다릴 정도의 지민이었다.


타코야키의 본고장 일본에서 직접 먹다니. 그가 이런 기회를 쉽게 건너뛸 리가 없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황급히 달려가는데 그 모습을 보고 뒤에 서있던 윤기는 느릿느릿 뒤따라갈 뿐 잔소리를 한다거나 별말은 하지 않았다.


"저기...타코야키 한ㅈ..."

[어서오세요! 도쿄 타코야키입니다!]

"네...?"


타코야키를 한참 굽고있던 아저씨의 입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유창한 일본어에 지민의 움직임이 우뚝 굳었다. 그 이후로도 한참을 일본어로 말을 하는데 순간 그대로 들고있던 지갑을 떨어뜨릴뻔한 지민은 가까스로 정신을 잡고 입만 달싹였다.


잊고있었다. 일본이니까 일본어를 당연히 쓸 것이라는 걸. 여기가 도쿄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게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민이 영어에 익숙한 편도 아니었다.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앞에 서있는 지민에게 하염없이 일본어로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아서 일단 한 걸음 멈춰서 보려고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그래도 타코야키를 먹고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아이 캔트...스피크 자페니즈..."

[무슨 말이에요?]


서투른 영어로 올망졸망 말해봤지만 통할리가 없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거의 울먹거리다시피 일본어를 못한다고 영어로 반복하는데 그 새 다가온 윤기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지민을 입을 손으로 막고 제지시키더니 입을 열었다.


[타코야키 한 접시 주세요.]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평소처럼 차가우면서도 유창한 일본어였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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