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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로테이션 11

무거운데, 투덜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마냥 무겁다는 말이 그저 입밖으로 나온 것인지 한 손에는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다른 한 손에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공항을 걸어가는 지민을 흘긋 바라봤다.


"왜이렇게 늦어."

"윤기씨가 들어볼래요? 이거 엄청 무겁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 들어줬잖아."


선심 썼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서는 한 손에 든 가벼운 짐을 내보였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뾰로퉁한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짐 들라고 매니저 데리고 가는 거나 똑같은데 뭐. 딱히 죄책감 느낄 일도 없고.


일본에서의 전지 훈련을 마치고 한국으로 다시 입국하는 날. 왠지 모르게 심술이 끝까지 뻗어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자꾸만 지민에게 화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윤기 본인은 눈치 채지도 못했지만. 더군다나 왜 심술이 나는지 이유도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지민과 라멘을 먹은 날은 입국하기 정확히 3일 전의 일이었다. 분위기에 결코 이끌린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자주 입는 흰 티셔츠가 눈에 거슬렸기에 일시불로 옷을 사줬더니만. 그 생각이 머리에 닿았더니 이상하게도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왜 안 입고 다니는데?


사실, 3일 전부터 계속 묻고 싶었다. 사준 당일 사준 게 좋다고 실실 웃으면서 새 옷인데도 불구하고 소매 끝을 잡아당겨 냄새까지 맡을 때는 언제고, 이상하게 그 날 이후로 한번도 지민이 그 옷을 입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간장이 묻었던 옷이 제일 아끼던 옷이라더니.


거짓말이었나.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리고 입국하는 당일인 오늘도, 그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나왔다. 입을만한 옷이 그것 밖에 없었다고 생각을 해본다 하더라도, 나라면 사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하루 입고 나오겠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지민의 상의를 쳐다보는 일이 거북해졌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복잡한 문제와는 얽히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생각이 꼬였나보지, 간단하게 마무리 하자고 마음 먹었다. 잔뜩 짐을 들고 끙끙대는 지민의 모습을 보다가 한숨만 푹 내쉬었다. 무거울 법도 했다.


무슨 심보였는지 평소에는 면세이고, 쇼핑이고 전부 다 패스였던 그가 잔뜩 짜증나서 왜인지 보이는 것마다 죄다 쓸어담아 계산했으니까. 그 모든 것들이 가방 안에 담겨있으니 무겁지 않을리가. 그런 사실을 알고도 도와주지 않고 가벼운 가방 하나만 들어주는 건 역시 좀 심했나.


"줘."

"네?"

"달라고. 내가 들 테니까."


갑자기 또 들어주겠다는 말에 눈이 휘동그레져서는 바라보기만 하는 지민을 쳐다보다가 혀를 차고 그대로 가방을 빼앗다 시피 손에 들고서는 어깨에 걸쳤다. 무겁기는 지랄맞게 무겁네. 중얼거리고서는 공항 밖으로 먼저 걸음을 바삐했다. 뒤에서는 한참 따라오느라 바쁜 지민의 발걸음 소리만이 허공을 채우고 있었다.



-



"야, 박지민."


네? 멀리서 부르는 목소리에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던 물통을 급하게 뗐다. 뒤이어 덤벙대는 성격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인지 와르륵 쏟아지는 물에 놀라기도 잠시, 평소라면 느긋하게 기다려줬을 윤기의 고함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야!!! 안 와?"


평소보다 확실히 마음을 긁는 소리에 놀라서 걸음을 바삐했다. 링 근처로 가자 언제 나왔는지 스케이트 슈즈까지 벗어 던져놓고서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수건을 목에 걸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근처에 놓여있던 져지를 대충 몸에 욱여넣더니 그가 한마디 내뱉었다.


"나 갈래."

"...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끔뻑거리기도 잠시 되물어보는 말투가 거슬렸는지 미간을 구긴 윤기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간다니까. 다시 한 번 무겁게 떨어지는 말에 우물쭈물 아무말도 못하고 손가락만 만지작 거렸다. 간다니? 어디로? 설마,


"집으로요...?"

"그럼 내가 어딜 가는데."

"아...그게...아직 2시도 안됐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말이 뒤에 자연스럽게 붙어 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어오는 윤기에 입만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요 근래 자꾸만 저기압이라는 사실을 은둔적으로 느끼긴 했다. 쌀쌀맞은 정도가 있다면 그만큼 다정한 면도 제법 있는 그에게서 요새 나긋함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틱틱대는 말투며, 인사도 해주지 않고. 내가 싫어진 걸까. 원래부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그런 쪽으로 생각이 들어서 괜스레 마음이 우울해졌다. 연습을 관두고 갈 정도로 뭔가가 거슬리나 싶었지만 감히 먼저 제쪽에서 물어볼 수도 없는 질문일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하는 바보같은 짓은 관두기로 했다.


"가자고."

"아...진짜로 가시려고요?"

"차."

"...네?"

"대기시키라고, 밖에."


샤워도 하지 않을 생각인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먼저 밖으로 향하는 윤기의 뒷모습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분명 일본 전지훈련 때는 괜찮았는데, 언제부터였지. 그러고보니 이렇게 쌀쌀맞게 대하게 된 것은 옷을 사준 그 이후였다.


역시 그 자리에서 그 가격으로 일시불은 무리였던 거겠지. 아무리 국가대표라고 해도 자기 돈이 그렇게 나가면 나는 아까울 것 같은데. 억지로라도 반품 시킬걸 그랬다, 라는 조그마한 마음이 이상하게 심장 깊은 곳을 도려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와서 반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에게 필요 없다고 되돌려 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키를 꺼내서 밖으로 나가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도저히 있을수가 없었다. 차를 몰아 집까지 갈 때까지 그는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



몸이 안 좋아서 연습을 쉬고 싶다는 문자가 윤기로부터 날아온지도 어언 이틀. 저번에 연습을 도중에 나갔으니 오늘로 벌써 3일이 된 셈이었다. 연습을 이렇게 쉬어도 되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혹여 몸이라도 어디 안 좋은 건가 싶어 걱정됐다.


먼저 지민의 쪽을 걱정하리라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지만 혹시 아픈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물어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생활에 관여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소파 위에 놓인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최근 연락처에 곧바로 뜨는 '윤기씨'라는 이름에 쉼호흡을 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그냥 혹시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냥 매니저로서 물어보는거야. 건강 체크는 기본이잖아. 무언가와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괜스레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혹시 나 때문에 그러면 어떡하지?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숨만 푹푹 나왔다. 화면을 키고서 날짜를 보자 10월 12일. 어, 그러고 보니까 나 내일 생일이네. 알아봤자 축하해 주는 사람이라곤 주위 몇 친한 사람들 뿐이었지만. 친한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무용을 그만두면서 그 마저도 적어졌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생일이라는 날짜에 무색한 감정이 들게 된 것은. 한숨만 깊게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윤기씨 혹시 어디 아프세요?'


타자를 누르고 지우고, 누르고 지우고를 여러번 반복하고서는 기어이 보내기 버튼을 누른 후 소파에서 발작을 일으키다 시피 몸을 뒤흔들었다.


"헐, 보냈어...!"


이미 발송은 됐는데 괜히 보냈나 싶어 고민하던 중 보낸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알람음이 울렸다.


"윤기씨다!!!"


'아니.'


화면을 들여다보자마자 누가봐도 윤기가 보낸 것이 분명하다는 말투에 안도하기도 전에 삐죽 입을 내밀었다. 아픈 것도 아니면 대체 연습을 왜 쉬는데? 매니저인 나한테라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면 많이 힘든 건가.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하나 싶던 찰나에 뒤이어 경쾌한 알람음이 다시 한 번 더 울렸다.


'왜'


그 즉슨, 이유를 묻는 말이었다. 턱하고 막혀오는 말문에 할말이 없었다. 요새 왜 연습을 안 하는지 궁금하다 그러면 나대지 말라고 할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걱정됐다고 하면 이건 문맥이 좀 이상하고. 혹시 화났어요? 라고 묻기에는 너무 나가는 것 같고.


아, 뭐라고 변명을 해야하지? 우왕좌왕 하는 사이 벌써 답장을 안 한지 10분은 훌쩍 넘어가있었다. 아, 어떡해. 답장 늦게 하는 거 진짜 싫어하는 사람인데. 중얼거리면서도 아직 타자판을 치지도 못하는 상황에 머리만 감쌌다. 발을 동동구르며 손만 쥐락펴락 하던 찰나에 충동적으로 메세지 하나를 보냈다.


'그럼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영화 한 편 보실래요...?'


잠시만, 미쳤...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나서야 황급히 타자를 지우려고 했지만 야속한 손은 이미 보내기 버튼을 누른 후였고 발송이 완료됐다는 알림이 뜨자마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나 지금 뭐 보낸거야?"


미쳤어!!!


머릿속이 온통 패닉이었다. 우선, 쉬고있었을 윤기에게 다짜고짜 영화를 보자고 하는 대목도 부자연스러웠고 아프냐고 물어보고 안 아프다면 나랑 영화라도 보자, 이런 식으로 말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상한 애로 생각하면 어쩌지.


아까보다 몇 배는 불안해진 눈으로 휴대폰을 물에 담궈 고장나서 그런 문자가 간 거라고 변명이라도 해볼까 싶었던 찰나에 알람음이 울렸다. 다짜고짜 놓여있던 휴대폰으로 달려가 무슨 변명이라도 보내야겠다 싶었는데 미리보기 창에 뜬 말은 생각 외였다.


'그래.'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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