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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로테이션 13

밥을 먹는 내내 이렇게 정적이 흐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잘 먹는 곳으로 가자며 앞장선 윤기를 따라간 곳은 다름 아닌 고기집. 애초에 고기를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냄새가 잘 베이는 니트까지 입고있던 터라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다가 밖에 나갔는데 내 몸에서 고기 냄새 진동한다고 말하면 어떡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도 남았다. 주문을 먼저 시키기도 전에 직원을 불러서 세트를 시켜놓고서는 마주 앉아있는 윤기와 눈이 딱 마주쳤다. 괜히 그가 건네준 젓가락만 만지작 거리다가 눈만 스르륵 아래로 내렸다.


나무로 된 애꿎은 테이블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 목이 말랐던 것인지 따라놓은 냉수를 두어 모금 들이킨 윤기는 지민에게 말을 건넸다.


"안무는 잘 되어가?"

"네?"


살풋 웃으면서 말을 걸어오는 통에 설렐 부분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심장 고동 소리가 귀끝까지 울려왔다. 바싹 바싹 타들어가는 목에 지민 또한 냉수를 급하게 속으로 들이부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답은 해야하니까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겨우겨우 입을 떼는데 그는 웬일로 짜증 하나 없이 곧이 곧대로 기다려 주었다.


"짜보기는 했는데, 그게...윤기씨 마음에 들지는 잘 모르겠어요."

"마음에 들거야."

"아...그래도...제가 안무 짜보는 건 처음이고...게다가 피겨 안무다 보니까 일단 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분께 맡기시는 건..."


자신감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어조에 피식 윤기가 웃었다.


"애초에 그럴거면 너한테 안 맡겼어."

"......"

"초등학생같은 율동 짜와도, 내가 알아서 소화 할테니까. 그건 네가 걱정할 부분 아니야."

"그래도요...세계 그랑프리인데...이번 대회 우승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방금 말했지. 네가 걱정할 부분 아니라고.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얌전히 안무나 짜서 틈 날 때마다 보고해."

"네..."


마지막 말에 조금은 웃었다. 여전히 차가운 척 하고는 있지만 속은 따뜻한 말이 싫지만은 않았다. 윤기만의 표현력이었다. 그런 사소한 부분들이 좋았다. 단순하게 다정한 사람보다 속이 더 깊은 것 같아서 한 마디 한마디가 소중하게 느껴졌으니까.


사실상 이런 말을 하는 윤기에게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애초에 무용을 전공한 녀석이 율동같은 안무를 짜올리도 없고. 저번에 잠깐 말했던 대화 속에서도 국제 콩쿠르를 나갔다는 말이 있었으니까 그 정도 실력이면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럼 다음 연습 때, 제가 짠 거 보여드릴게요."


조금 긴장되지만.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은 입가에서만 맴돌았다. 긍정의 표현인지 그는 웃기만 했다. 뒤이어 주문했던 고기들이 나오고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겹살이겠거니 생각했더니 나오는 건 두꺼운 육즙이 가득한 등심이었다.


"이, 이게 뭐에요...!"

"뭐긴. 고기지."


제가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요. 울상이 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왜 그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어 입만 앙다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먼저 결제하겠다는 말 믿지 말걸. 들어오자마자 계산부터 하겠다며 직원에게 주문과 함께 카드를 건네던 그를 막았어야만 했다.


이렇게 비쌀 줄도 몰랐고, 더군다나 지금 입고 있는 니트도 윤기가 결제해준 덕에 입고있는 것들인데. 이토록 많이 받아먹어도 되나. 뒤늦게나마 가격을 확인하려 영수증으로 손을 뻗는데 지민의 오동통한 손에 시선이 간 그는 지민보다 더 빠르게 영수증을 뺏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아...!"

"뭘 보려고 해."

"가격..."

"내가 계산했으니까 그냥 먹어."

"아니 그래도...비쌀텐데..."

"너 돈 많아?"


단도직입적으로 가슴을 푹 찔러오는 질문에 뜨끔했다. 아, 아니요. 많지는 않은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은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확실히 돈이 적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항상 얻어먹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적어도 너보다는 돈은 많이 벌어. 알잖아."

"알긴 아는데요...사주실 필요까지는..."

"너 몇 살이었지?"

"네?"


고기를 굽다말고 흘긋 쳐다보는 눈에 입만 벙긋거렸다.


"23살인데요...?"

"난 너보다 2살 위거든. 내가 직장에서 상사 입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너보다 한 수 위야, 임마."

"그럼 제가 죄송하잖아요...오늘 피곤한데도 불러내고..."


아까 연달아 팬들이 달려들던 모습이 떠올라 질끈 눈만 감았다. 그런 감은 눈에 속눈썹이 바들바들 떨린다는 사실은 과연 알고 있는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기는 한숨만 푹 내쉬었다.


"진짜 안 나가고 싶었으면 안 나왔어."

"......"

"나가고 싶으니까 나왔던 거야. 이런 기회 흔치 않거든."


씁쓸한 이야기인데도 덤덤하게 말을 꺼내는 그를 보고 테이블 밑에서 손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국가 대표니까. 팬들이 달려든다거나 파파라치에게 일상이 찍힌다는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익숙해 지다보니 당연히 만사를 귀찮아하는 그로서는 밖에 나올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도 억지로 끌고 나온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아까부터 조금씩 새어들어오고 있는 참이었다. 윤기 쪽에서 선뜻 배려해 말해준 건 너무나도 고맙고 소중한 일이었다. 다 구워진 고기를 자기 입에 먼저 넣어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인 그는 익었다며 지민에게도 집게로 고기를 집어 그릇에 놓아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런 이유니까. 그냥 맛있게 먹어."

"네!"


포슬포슬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고기를 한 점 입에 쑤셔넣었다. 부들부들 입 안에서 퍼지는 고기 맛이 좋았다. 평생 가도 못먹을 맛이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같이 먹는 사람이 윤기인데. 그것 하나만으로도 23살의 생일이 행복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 후로도 윤기가 주는 고기를 맛있게 받아먹었다.



-



배불리 먹고 나서야 뒤뚱거리듯 밖으로 나오는데 역시 10월이라도 가을은 가을인지라 휑한 바람이 니트의 뚫린 구멍 사이로 송송 들어왔다. 덕분에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감싸는 건 덤이었지만. 점심을 다 먹고나자 아직 시간은 2시를 조금 달리고 있었다.


고기 냄새가 나나 싶어 킁킁 옷소매를 코로 가까이 했지만 사실상 본인의 냄새를 스스로가 알아본다는 사실은 어려웠다. 포기하고 윤기 쪽을 흘긋 쳐다봤는데 셔츠 차림인 그도 추울 법 한데 되려 덤덤했다. 입술을 삐죽이고 가만히 있으려다 기어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안 추워요?"

"뭐가."


애초에 질문의 의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물어오는데 황당했다. 아니, 날씨 안 춥냐고요. 다시 주어를 명확히 해서 말하자 그제서야 이해했는지 아, 하는 얼빠진 소리와 함께 피식 웃는 그였다.


"삶이 얼음하고 함께하는데 이 정도가 추우면 안되지."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유독 추위에 강한 편이기도 한 그였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차이가 나는구나 싶어 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이제 정말 집에 가야될 시간이구나 싶어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려고 걸음을 돌렸다.


"박지민."


걸음을 우뚝 세우게 만든 목소리는 다름아닌 윤기의 것이었다.


"네?"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자마자 뒤도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살풋 웃는 그의 모습이었다. 뭐라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턱이 없었지만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바닥만 바라보던 윤기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조금 걸을까."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말이라 잠시 사고회로가 정지한듯 제자리에 멈췄다. 입만 벙긋 거리다가 순간 자신이 들은 말이 맞는 말인가 생각해보기도 전에 싫냐는 질문이 들려와서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그럴리가. 절대 싫을리가 없었다.


윤기 쪽에서 먼저 걷자는 말이 나오다니. 의외였다. 나란히 옆에 서자 다시금 심장이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는 지민의 심장에 너무나도 해로웠다. 얼굴을 마주볼 자신은 아직까지 없어서 애꿎은 신발만 쳐다보며 길을 걸었다.


잘 닦여진 로퍼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신으려고 아껴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평소 신던 낡은 운동화보다 더 신고 싶었다. 아무렴 어떠랴. 누군가가 지민의 신발에 신경쓸 일도 없는데. 눈이 쌓였다면 좋았을 걸. 지금이 겨울이라면 좋았을 걸.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겨울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때 쯤의 윤기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얼마 안 가 러시아 전지 훈련을 가야하고, 그 후로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러시아로 가야하니까. 바쁜 삶의 연속이었다. 이러다가 크리스마스도 제대로 못보내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지민 쪽에서 그런 점들을 세세하게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물어보기도 애매모호했고.


"내일부터 다시 연습 시작할거야."


정적을 먼저 깬 건 선뜻 윤기 쪽이었다. 나지막이 말하는데 그 한마디가 어찌나 기쁜지. 가만히 있다가 눈꼬리가 휘어져라 웃음을 지어보였다. 윤기가 연습을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행복하고도 소중한 말이었다. 그가 다시 얼음 위에서 춤추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그는 어디에서보다 얼음 위에서가 더 빛났다. 후에 인터넷으로 경기 영상을 보고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경기 내내 긴장된 표정으로 일관된 얼굴을 유지하다가 경기만 끝났다하면 자신감에 도취된 그 웃음이 좋았다. 누군가는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냐는 평이 있었지만 그 모습의 윤기가 지민에게는 훨씬 더 익숙했기 때문일까 지민은 그 편이 더 좋았다.


다시금 그 웃음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행복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감히 했다. 햇볕은 이렇게나 내리쬐는데, 바람만 횡하게 불어서 이미 손은 새빨개진대로 새빨개진 터였다.


지금까지 윤기와 있는 동안 두근거리는 시간이 더 많아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아까 휴대폰을 쥘 때 타자를 누르기도 약간 힘들었으니 이렇게 보면 바보가 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그와 있으면 핸드폰을 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일지도 모르겠지만.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다가 한 번 흘긋 그의 얼굴을 보면 측면으로만 보이는 모습이 각 섰다는 사실이 한달음에 느껴졌다. 오똑하게 솟은 코며,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 거기다가 새하얀 피부까지. 건드리면 다칠 것만 같은 모든 부분들이 좋았다.


"오늘 그런데 왜 갑자기 영화를 보자고 한거야?"

"네?"


가만히 걷다가 예상 외의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말문이 턱하니 막혔다.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황급히 고개를 다시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니 언뜻 웃고 있었다.


"그냥 보자고 한 거 아니잖아. 영화라면 어제 볼수도 있었고. 이번 주말도 있는데."

"그게..."


솔직히 말해 그 이유는 지민 쪽에서도 잘 알수가 없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윤기에게 얼버무리듯 보낸 문자라고 하지만 사실 얼버무리려면 다른 수단은 더 많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영화를 보자는 식의 데이트 신청을 한 이유는 오늘이.


"제 생일이라서요..."

"...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입을 겨우겨우 열어 힘겹게 내뱉은 한 마디에 그는 사뭇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이 지민의 생일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 했으니까. 갑자기 영화를 보자는 말이 당황스럽긴 했어도 설마 이런 이유일 줄은 몰랐다.


지민 쪽에서도 어찌보면 충동스럽게 훅 나와버린 '생일'이라는 단어에 급하게 입을 막아봤지만 이미 밖으로 내뱉은 말을 다시 쓸어담을수도 없고 곧이 곧대로 들어버린 윤기의 생생한 반응을 보고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이 네 생일이야?"

"네..."


어정쩡하게 웃으며 괜히 말했나 싶은 후회감이 들 때 쯤 윤기는 한숨과 함께 한마디 내뱉었다.


"일찍 말하지 그랬어."

"네...?"

"그러면 선물이라도 준비했거나 아니면 더 맛있는 걸 사줄수도 있었잖아."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하길래 고개만 숙이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미 인적이 드문 공원이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분할 정도로 행복했다.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라니. 더 맛있는 걸 사줬을 것이라니. 좋아하는 사람과 하루를 함께 했다는 것은 이미 지민에게 있어 충분한 선물이었다.


"괜찮아요. 그런 거 안 받아도..."

"또 그런 말 한다. 그래도 선물 정도야 줄 수 있잖아. 생일인데."

"충분해요, 오늘 하루 같이 다녀주셨잖아요."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자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구긴 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라도 그건 해줄수 있었던 거잖아. 오늘이 평일이니까 다른 친구들이 일정이 안 비어서 나 부른 거 아니야?"

"아니에요...충분했어요...저 이미 윤기씨한테 충분히 많은 선물 받았어요."


뭐가 충분하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자꾸만 쿵쿵 뛰었다. 이러다가는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멈춰서서 계속 눈을 마주쳐 주는 윤기와 단 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아서 그의 눈을 피해보려고도 했지만 언제나처럼 눈을 뜨면 그가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왜 충분한데. 차라리 다닐거면 나같은 사람 말고 더 활발한 쪽이 낫지 않아?"


게다가 나 영화볼 때 잤는데. 무안한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다른 쪽을 보는 윤기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꽉 쥔 지민은 눈만 세차게 감았다. 과부하가 걸릴 것만 같았다. 좋아해요. 너무너무 좋아해요. 오늘 하루 같이 있어줘서 너무 좋았어요. 마음 속에서는 계속 같은 말만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충분해요...저 진짜 충분해요...윤기씨가 같이 있어준 것만 해도 오늘 충분한 선물이었어요."

"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웃으면서 대답하길래 마음을 다시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입이 열렸다.


"좋아하니까요."


아. 순간 튀어나와버린 말에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윤기와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뭐?"

"아니...그게..."


당황하며 아무말이나 다 내뱉어봤지만 이미 굳을대로 굳은 그의 표정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 사람은 무표정이 되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괜히 성급하게 말을 해서 화를 내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히 알았는데. 분명히 알고 있는데. 공적인 관계에서 고백이나 사적인 관계로 가고 싶다고 말을 하면 곧장 인연이 끊긴다는 걸 이미 호석이 형한테 몇 번이나 주의를 들어서 잘 알고있는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왜 말 한거야, 박지민. 스스로를 탓해봤자 소용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대답이 없었고 그저 아까와 똑같은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어떤 말을 해도 효과가 없다는 걸 실감한 후에야 지민은 살며시 입을 닫았다. 그의 대답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의 침묵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잖아."

"......"

"너를 그런 마음으로 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

"네 마음에 부응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너도 알고 있잖아, 지민아. 웬일로 다정한 듯 성을 떼고 불러주는 이름에 울컥하고 눈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알고 있었다. 차일 게 분명하다는 것. 차이고서도 상처 많이 받을 게 분명하다는 것. 그걸 다 알고있었으면서도 좋아한다고 선뜻 말해버린 애꿎은 입이 미웠다.


"죄송해요...그냥...그냥 나온 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둘 사이에 달라지는 건 없을 거예요."


애써 눈꼬리가 휘도록 한껏 웃어보였다. 그가 다시 웃어주기를, 그가 없던 일로 해주기를 바랐지만 기적은 언제나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입꼬리는 다시 올라갈 일이 없는 것처럼만 보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윤기 앞에서 울어버릴 것만 같아 고개를 숙였다.


"박지ㅁ..."

"저 먼저 가볼게요. 내일 뵈어요!"


그대로 뒤돌아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가 준 니트고 뭐고 다 미웠다. 다 싫었다. 그 자리에 서서 벗어버리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눈을 꾹 감았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멈출 수가 없었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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