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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로테이션 22

"러시아 다시 온 기분은 어때."

"으...그냥 추운데...윤기씨는요?"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고 진즉 알아봤지만, 추위에 약한 지민은 아까나 지금이나 여전히 달달 떨고있었다. 12월 끝자락의 러시아는 추웠다. 길다란 패딩을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발까지 동동 구르며 춥다고 중얼거리는 지민을 바라보고 있다가 피실 웃었다.


러시아의 추위는 익숙했다. 워낙 전지 훈련 탓으로 자주 오기도 했고. 원래부터 추위를 많이 타는 편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러시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이번 생에 온 러시아가 두 번째인 기분이었다. 지민과 함께라서 그럴까. 유독 특별해 보였다.


"붙어."


네?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호텔로 향하는 마지막 신호등의 불빛만 바라보고 있던 지민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했던 그렇게 할 생각이었던 터라 윤기는 손을 뻗어 지민을 세게 잡아 끌었다. 낮은 비명과 함께 턱하니 옆에 달라붙게 된 지민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추우니까. 붙으라고."


그제서야 본 뜻을 알아차렸는지 아, 하고 탄식을 내뱉은 후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는데 그게 또 눈에 들어와 씨익 웃기만 했다. 지민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을 꽤 즐겨하는 편이었다. 웃는 얼굴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무언가 해줬을 때 빨개지는 그 아이의 얼굴을 좋아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키스라도 해주면 더 빨개질까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빨개지는 건 둘째치고 오늘이 자나가도록 말을 걸지 않으려 할테니까. 공공 장소에서 키스를 하는 것을 지민은 싫어했다. 윤기는 딱히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는 쪽이 아니었기에 공공 장소이든 집이든, 아니면 빙상장이든 상관없었지만 지민은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다고 그 조그마하고 예쁜 입으로 말해오는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더 좋았다. 얼굴을 봐주지도 않으면서 차갑게 식은 손이 꼼지락 거리며 코트 자락으로 기어들어왔다. 추운 건지 아니면 더 봐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건지 알 수 없어 그대로 잡아 빼 손등 위로 입을 맞췄다.


쪽하고 나는 소리가 야실스러워서 결국 고개를 휙 돌린 지민은 한참은 더 붉어진 얼굴로 입을 벌려 빽 소리를 질렀다.


"윤기씨!!!"

"왜."

"아니...거리 한복판인데..."

"이렇게 해달라고 손 넣은거 아니야?"


차마 아니라고 말은 못하는지 입만 댓바람처럼 뚱하게 내민 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대로 웃었다. 말이라도 못하면. 금세 신호등은 파란불로 바껴서 때마침 잡았던 손을 끌고 앞으로 향했다. 그런 거 아니라고 투덜거리면서 따라오는 모습이 귀여워서. 아무 말없이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경기를 이유로 다른 나라를 방문한 것은 지민으로서 처음일 터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는 것이 없을테고. 그런 점은 알고있나. 경기 전 일주일까지 내가 착 달라붙어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을리가. 말도 안 해줬는데. 아직은 말해주기 이르다고 생각해 남몰래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



"어, 이번에는 윤기씨 옆 방이네요?"

"매니저니까."

"그래도 좋다."

"왜?"


잠금 해제 카드를 받아들고서는 호수를 확인하고 신난다며 방방 뛰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카드를 뺏어 들었다. 바로 옆 방인 것이 누가 보기에도 보여서 왜 그렇게 신나하는 것인가 싶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옆 방인 게 그렇게 좋나. 어차피 옆 방 아니라도 일주일 동안 내 방에서 머물게 할 생각이었는데.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놓으라며 다시 방 카드를 뺏어가고서는 품에 꼭 안는 모습을 보고서 피식 웃었다.


"윤기씨 옆 방이니까 좋아요. 그냥. 그냥 좋아요."

"응큼한 생각 했냐."

"무, 무슨!!! 아, 아니거든요?"


농담이랍시고 던졌더니 진담처럼 받아들이고서는 금세 표정이 굳어지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뇌구조 하나 단순한 건 여전했으니까.


"제가 뭐...무슨 윤기씨인 줄 아세요? 저 그런 생각 안해요!"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런 생각,"

"......"

"하루 수백번도 더 하는데."


아, 또 붉어졌다. 이번에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만 달싹이며 고개를 아예 푹 숙여버리는 것을 보고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던 지민은 먼저 올라가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야, 같이가."



-



무슨 그런 말을 해? 방으로 겨우 피신하다시피 들어가자 떠오르는 아까 그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 얼굴로, 그런 말 하는 거 반칙이잖아. 카드키를 꽂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문 앞에 기대어 볼만 찰싹 찰싹 때렸다.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그가 그렇게 대답해올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어찌보면 지민이 당황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굳이 윤기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만. 한참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겨우 겨우 속을 다스리며 냉장고로 향했다. 보통 냉장고 안에 든 음료수는 실제 얼마 하지도 않으면서 호텔에서 비싸게 받아먹는다는 것 쯤은 잘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한켠에 놓여있는 맥주를 빤히 바라보던 지민은 그대로 그것을 휙하니 집어들었다. 입을 뾰로퉁하게 내밀고 차가운 맥주캔을 가만히 들여보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술에 약하기도 했고. 저번에 잘못 먹었다가 필름 끊기고 그 상태로 사고친 적이 한 번 있어서. 말하자면 된통 당했달까.


그런 지민이 술을 집어들었다. 한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캔을 따마자 들리는 통쾌한 소리에 작은 웃음소리를 내기도 잠시, 입 안에 들이 붓자 마자 나는 쓴 맛에 눈살을 찌푸렸다. 쓰디 쓴 이 맛은 어찌 나이를 먹어가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써..."


술집에 가면 술보다는 안주를 더 먹는 편이었다.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태형이 야박을 주기도 했지만. 술에 절어 사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다. 결국 한 캔을 땄으면서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두어모금쯤 마신 맥주를 선반 위에 올려뒀다.


나중에 다시 먹던가 그렇게 해야지. 요금은 반드시 윤기에게 내라고 말할 것이라 마음 먹었다. 애초부터 그가 그런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맥주를 딸 일도 없었으니까. 벌써부터 그런 말을 듣고 애 취급을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올 의 모습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얼굴이 붉어졌다.


다른 사람에 비해 키가 작다고, 혹은 젖살이 많이 붙은 얼굴 때문에 애취급을 받는 것은 익숙했다. 나이 스물셋을 먹도록 애 취급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콤플렉스 마냥 싫어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그런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딱히 기분 나쁘지 않았다.


지민의 눈에도 그가 마냥 애처럼 보여서일까. 차가우면서도 승부욕 한 번 발동하면 끝을 보는 성격에, 무모하고 바보같고. 그러면서도 질투는 엄청 하는 그런 애. 어리광 부리면서도 곁에 있으면 듬직한 사람이라서 더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단연코 말해 윤기의 그런 어리광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되려 잘 받아주는 편이었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며 피실 웃고있는데 갑작스레 벨이 울렸다. 급하게 현관으로 달려나가 누구냐고 물어보자 들려오는 답은 아까까지만 해도 머릿속을 한가득 채우고있던 그 사람이었다.


"나가자. 오랜만에 데이트 좀 하게."



-



"여, 연습은요?"


기껏 데리고 나왔더니 밖의 풍경을 보기는 커녕 연습은 안 해도 되냐는 둥, 휴식은 언제 하냐는 둥 난리다. 가만히 대답도 안 하고 듣고있다가 멈출 줄 모르는 지민의 입 위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가 살며시 얹었다. 그 덕분에 말이 막혀서인지 눈살만 찌푸린 채 눈을 맞춰오는 녀석을 보고 피실 웃었다.


"하나씩 질문해. 내가 입이 10개냐?"

"알겠어요...연습은 안해도 돼요?"

"일주일 전부터는 항상 휴식이야. 괜히 무리했다가 근육통 오면 끝이니까."

"아...그럼 호텔 가서 쉬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큼직한 손을 가져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게 또 마냥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지 살짝 고개를 숙인 지민의 정수리만을 바라봤다.


"안 쉬어도 돼."

"왜요?"

"너랑 데이트하고 싶으니까."


정면을 보고있던 눈을 돌려 씨익 웃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얼굴을 가만히 붉혔다. 놀리기라도 하려는 것인지 고개를 돌려버린 지민의 앞으로 얼굴을 내밀며 살풋 웃는 얼굴이 그저 잘생겼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쿵쿵 거리는 심장 소리가 그에게 들릴까봐 괜스레 걱정됐다.


"나 안봐줄거야?"

"...몰라요."

"귀여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의심하기도 전에 그는 볼 위로 가볍게 키스를 해왔다. 화들짝 놀라 그대로 얼굴을 돌렸다. 윤기씨, 라고 부르며 화를 내려고 했지만 마주하는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다정한 표정이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얼굴.


뾰로퉁한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이내 궁시렁 거리며 시선을 내리 깔았다. 보나마나 무슨 말을 해도 시종일관 저 얼굴로 쳐다볼 것이 뻔했으니까. 공공 장소에서 하는 그런 짓들이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느끼는 것을 아는지 자꾸만 집요하게 그 점을 물고 늘어졌다.


"자꾸 그러면 미워할거예요."

"누구를? 나를?"

"......"


빵빵하게 부풀려진 볼이 사랑스러웠다. 볼에 키스를 한 것 가지고 삐졌는지 자꾸만 옆으로 멀어지려 하길래 그대로 당겨서 손을 잡고 주머니 속에 넣었다. 두껍게 입고 나오라니까 얇은 셔츠에 패딩만 입고 나온 지민의 손은 차가웠다.


차가운 것은 윤기의 손도 마찬가지였지만. 맞잡아서 손이 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보다는 그저 마음 가는대로 붙잡고 있고 싶다는 이기심이 더 컸다. 그게 또 마냥 싫지는 않은지 꼬물꼬물거리며 깍지를 껴오는 작은 손을 보고 피실 웃었다.


아까는 미워한다면서. 거짓말에는 약한 모양이었다. 그런 표정으로 미워하겠다고 말하면 누가 믿어. 미워한다고 말해도 별 수 없었다. 이 쪽은 놓아줄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게 지민과 둘이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반짝이는 불빛들로 가득했다. 얼마전 크리스마스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을 남기기라도 하듯 곳곳에 세워져있는 트리들과 그 옆에 루돌프 구조물들. 아기자기한 걸 별로 눈여겨보는 편도 아니기에 평소라면 지나쳤을 사소한 광경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멈춰서는 지민 덕이었다. 조금 걸었다하면 우뚝 멈춰서서 연신 감탄하는 말을 하면서 방방 뛰다가도 사진을 찍어줄까 싶어 물어보면 그것은 또 부끄러운지 연신 고개를 가로 저으며 손사레를 치는 모습이 사실은 더 보기 좋았다.


"저번에는 미안."

"네?"

"크리스마스 때. 같이 못있어줬잖아."

"괜찮아요, 그 날 기자 회견도 있었고...그래도 문자 했으니까...!"


또 그렇게 좋은 소리만 한다. 손가락을 들어 이마를 퉁 튕겼다. 아야, 하고 자신의 이마를 문질거리던 지민을 바라봤다. 한참 깊은 눈동자. 문자만 했다고 만족하는 애인이 어디있으랴.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일수가 있을까.


소심하고, 그 주제에 뭔가를 바라면 안 된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지민이라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가만히 냅둘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때는 꼭 같이 있고 싶다고, 지민이 선뜻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그런 걸 원한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 지랄맞은 기자 회견 때문에. 갑자기 그 날 일정이 생길 줄도 몰랐고. 그 일정이 끝난 뒤 최고 속도를 밟아 지민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크리스마스가 지나있을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더 욕심내도 돼."

"네?"

"나 네 애인이잖아. 틀려?"

"그, 그건 맞는데...저 진짜 괜찮아요...!"


뇌구조 단순한 건 여전하더니. 거짓말 못하는 것도 변함이 없다. 어정쩡한 웃음을 띠며 그렇게 말하면서 잘도 거짓말을 했다. 괜히 먼저 더 앞으로 향하는 녀석의 손을 붙잡고 확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반동으로 더 깊고 푹 안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엄마야...!"

"난 더 욕심낼거야."

"네...?"

"언제나 곁에 있어달라고 투정 부릴거고. 너 떠나려고 하면 붙잡고. 나 그렇게 살 거라고."

"......"

"그러니까 공평하게 너도 욕심 좀 내라, 임마."


말투는 차가우면서도 뒷머리를 보듬어오는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분명히 차가운 손인데, 온기 하나 없을 손일 것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그 손길이 따뜻하다고 느껴지는지. 가만히 한참을 안겨있다가 고개를 살짝 들자 무엇을 보는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뭘 보고있어요?"

"있잖아."

"네?"

"다음번 우리가 왔을 때도 이 풍경이 그대로일까."

"......"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왠지 모르게 알아들을 것만 같았다. 똑같은 느낌을 받고있었으니까.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따스한 눈발과 거리를 자연스럽게 걸어다니는 외국인들, 그 한가운데에 서있는 우리가 과연 다음에 왔을 때도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일까.


그대로일까. 그대로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상이 뒤바뀌고, 무언가 그대로 있는 것이 비정상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과연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대로일 수는 없겠죠."

"......"

"봐요, 윤기씨."

"......"

"내가 변하지 않고, 윤기씨가 변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지금 같은 거리를 걷고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살풋 웃으면서 볼을 맞잡아오는 지민과 눈을 맞췄다. 휘어져버리는 눈웃음 속에 푹 갇힌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게 설득력있는 그 말에 그저 똑같이 웃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어, 그러네."


무심하게 대답했을 뿐인데도 활짝 웃은 지민은 저도 모르게 발돋움을 해 그의 입에 가벼운 키스를 남겼다.


"대담한데. 박지민."

"윤기씨는 훨씬 더 대담한 짓,"

"......"

"할 줄 알잖아요."

"...알지."


무언가를 갈구하기라도 하듯 살며시 눈을 감는 지민을 깊게 눈 안에 품으며 그대로 턱을 잡고 입을 맞췄다.


진한 키스였다.



-



"예쁘다..."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다리였다. 그것도 꽤나 낭만적인. 거리의 불빛들이 강가에 비춰 마냥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이런 분위기에 취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오늘만큼은 예외이기로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난간을 잡고 연신 웃는 녀석이 예뻐서.


"윤기씨, 저거 봐요. 강이 얼었어요. 춥긴 엄청 춥나보다..."

"그러네."


더 가까이와서 좀 봐요, 저만치 떨어져있는데 괜히 당겨오는 손길에 억지로 난간 앞까지 갔다. 내려다보이는 것은 새까만 물 속에 비친 야경들 뿐이었지만. 뭐 어떤가. 이 풍경을 지민이 좋아한다는데. 피실 웃고서는 야경 대신 그 야경을 보고있는 지민의 얼굴을 바라봤다.


추워서 붉어진 얼굴과 코가 눈에 들어왔다. 춥다고 그 난리를 떨더니. 그렇게도 좋을까. 주머니에 손이라도 넣고 보지. 눈이 잔뜩 쌓인 난간 위에 굳이 손을 올려놓고서는 강에 빠질듯이 쳐다보고있는 녀석이 마냥 아이같았다. 와중에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면 한참 지났고, 적게 지났다면 적게 지난 그 시점에 준 그 반지가 생각보다 훨씬 지민의 손에 어울렸기에 괜스레 눈이 자신의 손에 끼워진 반지로도 향했다. 반지같은 거, 그냥 금속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끼고 있으면.


"애인 있네 할 거 아니야."

"네?"

"아무것도 아니야."


그 작은 소리를 또 언제 들어는지 금세 고개를 돌리는 지민을 향해 피식 웃었다. 이런 것만 밝게 들어.


"있잖아요, 우리 내년에도 또 러시아 와요."

"그 때는 이미 내가 은퇴했을텐데?"

"이번에는 여행으로. 진짜 단 둘이 가는 여행 있잖아요. 그걸로 와요."

"...네가 좋다면. 해보지 뭐."


약속이에요, 작게 속닥거리며 눈웃음을 짓는 지민을 내려다봤다. 하얀 입김이 나오는 입가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아까부터 잘게 떨고있는 몸도 보이고. 이제 슬슬 들어가야겠구나 싶었다. 오래 있었다가는 가뜩이나 추위를 잘타는 지민이 꼭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았다.


"들어가자."

"벌써요?"

"왜. 아쉬워?"

"네에...아니...안 아쉬워요...윤기씨 피곤하죠? 이만 들어가요."


금세 시무룩해져서 네, 라고 대답하더니 이내 얼굴을 바꾸고서는 활짝 웃어오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욕심 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알아듣긴 알아들은건지. 피실 웃고나서 두 손으로 지민의 양 볼을 맞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호텔에서도 하루 종일 붙어있을 건데. 싫어?"



-



고작 밖에 몇 시간 나갔다 온 것 뿐인데 손이며 발이며 얼어붙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패딩을 입었는데 이 정도면 코트 하나 걸치고 나간 그는 얼마나 추웠을까. 밖에 있을 때는 신나서 몰랐는데 호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몸의 한기에 달달 몸을 떨었다.


아마 윤기와 함께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쯤 그도 옆 방에서 몸을 녹이고 있겠지. 지금 찾아가면 민폐일까? 쿵쿵 심장이 뛰었다. 더 있고 싶었는데.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방 안에 들어오자 아쉬운 점은 배가 되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오늘은 딱 분위기가 잡힌 터라 말해주고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타이밍을 놓쳤다. 그 사랑한다는 4글자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내일 아침에 조식 먹으면서라도 말해줘야지. 아니면 이따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할까. 아직 안 먹었을테니까 호텔에서라도 먹으면 될 것 같은데.


반지. 그 때 고맙다고 제대로 말 못했는데. 너무 예쁘다고 제대로 말해줄걸.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왼손으로 향해 더듬었다.


"어...?"


이상하네. 내가 반지를 언제 빼서 주머니에 넣어놨지? 아까 떨어뜨릴 뻔해서 그대로 넣었나? 왼손에 있어야할 반지가 손가락 사이 어디에도 머물러있지 않았다. 휑한 느낌만 감돈 채 허둥지둥 벗어두었던 패딩을 찾았다. 오른손을 주머니 속에 넣어 이리저리로 뒤적이는 사이 표정이 점차 굳어져다.


"없어..."


헐레벌떡 가방을 열고, 캐리어를 열고, 침대 이불을 뒤적거리고, 화장실 선반을 뒤적거렸다.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호텔 방과 동질화라도 되어가는지 지민의 표정도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반지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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