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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하늘 03

이탈리아의 거리는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전보다는 달라져있는 듯 했지만 딱히 상관 없었다. 원래부터 풍경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거니와 지금 둘이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주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보다 더 혈안이 되어있는 것은 밥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이었다.


중간 중간 맛있어 보이는 가게도 여럿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성에 차지 않았다.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뭐가 그렇게 고민스러운지. 뒤에서 졸졸 따라오고있는 지민은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 거렸으나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한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입만 열면 화부터 내니까.


화를 낼 상황인가,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 이해가는 녀석의 마음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승무원이라서 그런지 새까만 머리와 탐스러울만큼 붉은 입술. 언제가 되어서야 저 오동통한 입술을 한가득 베어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속이 타 침만 꿀꺽 삼켰다. 처음에 본 인상으로 지민은 제법 매력있는 얼굴이었다. 귀엽다는 것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귀여운 면은.


"와..."

"......"


가만히 걷다가 들려오는 탄성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대로 뒤돌았다. 눈까지 반짝거리며 거리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토스트 가게를 바라보는 지민이 시야에 들어왔다. 토스트라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봤을텐데 이탈리아에서의 토스트 가게 하나가 그렇게 특별한지 우물쭈물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라보는 통에 피실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면이 귀여운 것일지도. 사소한 것에 눈을 빛내는 지민을 바라보다 한걸음 더 앞으로 다가갔다. 원래대로라면 질색하며 다시 한 걸음 물러났을 테지만 이미 토스트에 정신이 팔렸는지 윤기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메뉴판에 열중하는 모습이 제법 볼만했다.


프랑스어로 다시 말을 걸까 했지만 그랬다가는 분위기를 깰 것 같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먹고 싶어?"

"네? 아, 아니요!"


혼내려는 것도 아닌데 물어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손사레를 치는 지민을 보고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냈다. 먹고 싶다고 하면 어디 덧나나. 입장을 과시하고 싶은 것도, 돈을 과시하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지금 같이 있는 사람이 그 유명한 S기업의 대표라는 것을 잊고 있는지 지민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라고 딱잘라 말했으면서도 여전히 메뉴판에 시선을 고정하며 입술까지 삐죽 내미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졌다, 싶어 지갑을 꺼내들어 익숙하게 이탈리아어로 하나를 달라고 말하며 카드를 건넸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말릴 틈도 없었는지 펄쩍 뛰어오르며 됐다고 말하는 지민을 바라보며 입술 위에 검지 손가락을 갇다대며 쉬이, 라고 낮게 웃어보였다.


"아니...저는 진짜...괜찮은...데..."

"괜찮으니까. 먹어.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런거야."


입동굴을 드러내며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토스트를 건네는 손을 차마 처낼 용기는 없었다. 샐쭉 입을 내밀며 불만이 있다는 듯 그를 노려본 지민은 얌전히 토스트를 받아들었다. 뭐, 사줬으니 맛있게는 먹어주는 게 예의겠지? 사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천천히 먹으라며 어느새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를 끌어준 그의 호의를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럴 때는 진짜 신사 같은데. 앉은 채로 토스트를 크게 한 입 베어물자 입 안 가득 들어오는 짭쪼름한 베이컨과 물컹한 계란, 그리고 쭉 늘어나는 치즈의 조합이 향기로웠다. 행복하다는 듯 저도 모르게 눈웃음을 잔뜩 지어보이자 마주 앉은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


턱을 괴며 빤히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문득 불안해져 표정을 확 굳히자 그는 말을 하다 말고 그대로 웃음이 터져 고개를 숙이고 언뜻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웃는거 예쁘네."

"...네?"

"좀 많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의외였다. 당연히 트집 잡거나 이거 사줬으니까 뭐 해달라 이런 식으로 말할 줄 알았던 터라 얼굴은 금세 새빨개졌다. 괜스레 오해 했다는 부끄러움도 있었고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에게서 나온 말이 '귀엽다'라는 의미를 가져 그런 것도 있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기려 얼굴을 숙여 토스트를 다시 한 입 베어물어봤지만 이미 모든 걸 알고있는듯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바라보는 윤기의 시선이 느껴져 도저히 그럴수도 없었다. 주제를 딴 곳으로 돌려야만 했다. 이대로 먹다가는 애꿎은 토스트가 무슨 맛인지 모르게 될 것만 같았다.


"어...대표님은 안드세요?"


나름 용기 내서 물어본 것이었는데 아무 대답 없이 한참을 빤히 쳐다보던 그는 이내 피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먹어볼까."


네? 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윤기는 상체를 일으켜 지민의 손을 잡고서는 토스트를 한 입 베어물었다. 정확히는지민의 입이 닿았던 그 부근에. 깜짝 놀라 눈을 휘동그랗게 뜨는데 정작 먹은 본인은 별 감흥이 없는지 씨익 웃으며 다시 자리로 앉는 것을 보고 어버버, 입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한참을 넋을 놓고 그가 끝까지 먹는 것을 쳐다보다 정신이 들자 빽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내가 언제 이거 먹으랬어요!!!"

"맛은 있네."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맛있다며 대답한 윤기가 밉기만 했다. 미간을 잔뜩 구기고 그가 베어먹은 토스트를 바라보다가 싱숭생숭한 마음에 입술만 잘근 잘근 씹었다. 먹어야 해, 말아야 해. 그대로 버리기에는 아직 먹은 게 두 입 밖에 없는데다가 배도 고프고. 그렇다고 먹었다가는 그가 뭐라도 놀릴 것만 같았다.


"입술 깨무는 거."

"......"

"버릇이면 고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무슨..."

"아니면 다음에 베어먹는 쪽은 네 입술이 될 것 같거든."


씨익 웃으며 눈웃음을 지어오는 그를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얼굴을 푹 내렸다. 지금 잘못 들었나, 저거 지금 나한테 키스하겠다는 말이지? 화끈거렸던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을 내뱉는구나 싶으면서도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에 괜히 마음이 붕 떴다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내, 내가 입술 깨무는 거랑 그 쪽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 쪽 아니고 민윤기."

"아니 어차피 한 두 번 볼 사이인데..."

"민윤기."

"씨이...알겠어요. 민윤기씨."


포기하다 시피 지친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듯 '민윤기'라는 이름을 말하자 퍽 마음에 드는지 입꼬리를 말아올린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하나에 뭐가 좋다고 또 저 표정이야? 입을 삐죽 내밀고 다른 쪽을 바라봤다. 그가 베어물었던 곳을 애서 피하며 한 입 한 입 씩 토스트를 삼켰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그대로 입에 넣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웃기만 하던 그는 이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귀엽기는."


워낙 작게 중얼거린 터라 듣지도 못했지만. 먹는 게 제법 느린 탓에 지민이 토스트를 완전히 다 먹는데에는 무려 20분이나 걸려 버렸다. 오물오물 입가에 씹으면서도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 그저 씨익 웃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 먹었나 싶어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하자 지민의 입에서는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방금 먹었잖아요."

"어?"

"토스트."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보인 지민을 바라보다 눈만 두어번 깜빡였다. 지금 뭐라고? 반문 해봤자 지민의 주장이 달라질 리는 없었다. 저도 먹었고 윤기도 한 입 먹었으니 결국 한 끼는 해결된 것이 아니냐는 게 그 아이의 말이었다. 확실히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떼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점심으로 토스트 하나는 너무하지 않나. 그것도 성인 두 명이서 토스트 하나.


따지고 싶었으나 이번에는 이겼다는듯 승리감에 도취된 웃음을 얼굴 가득 띄우고있는 녀석을 보니 굳이 그 기분을 망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아 반문 대신 피실 웃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그래, 내가 졌다. 두 손을 다 들어올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고개를 가로로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저 이제 들어가봐도 되는거죠?"

"...아마도."


그 말에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인사 하나 없이 휙 돌아서 반대 쪽 거리로 걸어가 버리는 지민의 뒷모습만을 눈에 담았다. 야속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당돌한 성격도, 야속한 성격도, 혹은 때로 보여주는 나름 귀여운 면도 싫지는 않아서.


저만치 발을 빨리해 도망가듯 가버리는 지민을 따라잡아 그의 오른손을 덥석 붙잡았다. 덕분에 놀라 확 빼려는 것을 그대로 꾹 잡고 그 안에 카드를 쥐어줬다.


"뭐, 뭐에요!!!"

"택시 타고 들어가."

"이탈리아 택시비 모르고 말하는 거죠, 지금."


오기를 부리듯 카드를 다시 돌려주려는 지민의 손을 아예 말아 주머니에 넣어주며 나지막히 말했다.


"호텔까지 멀텐데?"

"......"

"카드는 다음 비행 때 줘도 되니까. 그동안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자유롭게 해봐."

"......"

"대답."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것이 영 수긍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생각보다 센 힘에 당황했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피실 웃으며 놔주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더니 잔뜩 고집 부리는 목소리로 그는 말해왔다.


"안 쓸거거든요?"


흥, 이라는 귀여운 앙탈까지 부리고서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지민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정작 카드를 받은 지민은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대체 저 사람은 내가 이 카드로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쥐어주는 거야? 아예 강남에 건물을 하나 사버려?


그렇게 쓴다고 해도 도저히 잔액 부족이 뜰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 더 처참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말대로 카드를 썼다가는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만 같아 영 찜찜했다. 입술을 내밀고서는 그가 건네준 카드를 꺼내 바라봤다. 그를 닮아 그런지 새까만 검정색이다.


보기도 싫어져 주머니에 구겨넣듯 세게 밀어넣었는데, 예상 외로 호텔까지의 길은 멀었다. 걷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었고 아까 공항에서 택시를 함께 타 시내까지 나온 터라 거리를 어림 짐작 했다는 것은 꽤나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발한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숨을 헐떡대던 지민은 다시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들어 무섭게 노려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 써...안 쓸 거라고..."


그러나, 5분도 지나지 않아 그 말이 담긴 효력은 없어지고 말았다. 보란듯이 택시를 잡고 말았으니까.


너무나 먼 거리였다.


호텔과 자신의 사이도.


자신과 윤기의 사이도.



-



대기석에 앉아 흐아암, 하고 긴 하품을 내뱉었다. 그가 카드를 건네주고 비행기를 타러 오지 않은 것이 어언 3일 째. 틈만 나면 비행기를 타러 온다던 그 대표가 이상하게 요새 보이지 않았다. 그래봤자 고작 3일이지만. 신경이 쓰인다면 카드를 돌려주지 못한 사실 때문일 것이다.


유럽 쪽이 택시비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카드를 긁어버렸던 과거의 자신이 미워졌을 뿐이었다. 짐을 지고 사는 것을 워낙에 싫어하는 터라 결국 한국 돈으로 그대로 환전해 와버렸지만. 지갑 안에 든 카드와 돈들은 줄 틈도 없이 그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사실 비즈니스 석에서 마주치는 손님들은 짓궂은 그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무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 뿐이라 대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요새는 진상 손님도 줄어들었고. 비교적 편해졌달까. 이런 이유 때문에 비즈니스 석을 지원했던 것인데. 앞으로도 그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만은 말하고 있었다.


사실 마음은 어떤지 모르면서. 그가 약속을 지킬 사람인지 지키지 않을 사람인지는 조건을 내건 당시에 알 수 없었으나 최근 들어 다시 비행 스케줄에 참여하고 있는 김 기장의 모습을 보고서야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약속은, 어기지 않는 주의라고. 마주칠 때마다 김 기장과 눈웃음을 나누고 보고 싶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만족할 수 있었다.


그만큼 좋아하던 사람이 사라진 빈공간은 컸다. 이번 비행기는 일본행.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도 비즈니스 석에 오는 사람이 더이상 없다는 것은 이번 비행기에도 그가 타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도 이상하게 자꾸만 시선은 출구를 향했다.


"지민씨?"

"앗, 네!"


아. 잊고 있었다. 지금 기장님과 얘기하는 중이라는 걸. 그가 불러세우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괜찮냐고 다정하게 물어보는 그와 시선이 맞닥뜨렸다. 이상하게 들키면 안 될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심장이 거세게 쿵쿵 뛰었다.


왜 이런지 이유도 모르면서 자꾸만 입은 바싹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괜찮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곧있으면 이륙해야 하니 마무리 준비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내식 준비도 마무리 됐고 일본은 제법 시간이 짧은 터라 금방 끝날 것이 분명했다.


이제 슬슬 마감해야 겠다, 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하자 그 때 들려오는 것은 다급하면서도 차분한 어느 남성의 목소리였다.


"잠깐만요,"


아.


그였다.


그렇게 빨리 뛰지도 않으면서 쿵쿵 묵직한 걸음 소리를 내며 겨우 비행기 안으로 찾아들어온 윤기는 헉헉 숨을 내쉬며 땀으로 젖어버린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 고개를 들어올리자마자 마주치는 얼굴이 그간 보지 못했던 얼굴이라. 지민과 마주치자 마자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만나네."

"...또 만나는 게 아니고 그 쪽이 이 비행기를 예매한 거겠죠. 빨리 들어와요, 이륙해야 해요."

"그 쪽이 아닐텐데."

"민윤기씨."

"이왕 부를거면 성도 떼고 불러주지?"

"내가 굳이...!"


화를 벌컥 내려다가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 시선을 휙 피했다. 더이상 상대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되던 간에 결국 말로 지는 것은 제 쪽이라는 것이 명백했다. 중얼거리며 괜히 그가 안 온다고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는 것을 되새겼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 걸. 비즈니스 석으로 그를 안내하면서도 줄곧 그를 노려보던 지민은 흥,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그 모습이 마냥 고집스럽고 귀여워 피실 웃을 뿐이었지만. 3일이 지나 만난 녀석은 여전히 변함 없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이륙 준비가 끝나고 하늘로 날아올라 평범한 하늘과 평범한 하얀 구름이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대기석에 앉아있던 지민은 음료 준비를 마치고 나르기 시작했다. 나른다고 해봤자, 비즈니스 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윤기를 포함해 두 명 뿐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비교적 젠틀하게 생긴 남성이었다. 나이도 딱 윤기와 비슷해 보이는. 앉아서 다리를 꼰 채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갑자기 다가온 것에 놀랐는지 움찔하며 지민과 눈을 마주친 그는 이내 승무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며 웃어왔다.


"아, 죄송해요. 잠시만요."


테이블 위에 올라가있던 신문과 책, 그리고 휴대전화를 치우더니 다시금 웃어보이는 그 남자에게 커피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말하는 것마저 젠틀한 이미지와 닮아있는 것 같아 웃는 것이 한결 편해졌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비즈니스 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 사람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지만.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으려던 찰나 허리춤에 달려있던 콜이 울렸다. 누군가가 콜벨을 눌렀다는 신호였다. 비즈니스 석에 있는 사람이 두 명인 지금, 앞에 있는 남자를 제외하고서 벨을 누를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민윤기..."


이를 부득부득 갈듯 중얼거리다가 다시 웃으며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갔는데 아무것도 아니면 앞으로 말 안 할거야. 일부러 걷는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며 쿵쿵 다가가자 기다렸다는듯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턱하고 덮은 그는 피실 웃어보였다.


"왜 불렀어요?"

"그냥,"

"네? 아니 무슨 사람을 오라가ㄹ..."

"질투가 나서 좀."


뭐, 뭐라고? 순간 자신이 들은 말이 무엇인지를 의심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눈을 두어 번 껌뻑이는 지민을 바라보다 그대로 고개를 숙여 웃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얼굴은 아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나한테는 그렇게 밝게 안 웃어주잖아."

"그것 때문에 지금 콜 한 거예요?"

"안돼?"

"안되죠!!!"


비행기 안이라는 것을 잊고 그대로 소리를 높여 빽 소리를 지르다가도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는 녀석이 귀여워 턱을 괸 채로 바라보기만 했다.


"질투 엄청 나던데."

"......"

"난 그런 웃음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

"나도 그렇게 웃으면서 커피 건네주면 안되는 건가?"

"...하는 거 봐서요."


이런. 당돌한 대답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자 입술을 삐죽 내민 지민은 시선을 피하기만 할 뿐 더이상의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질투 난다.'라는 말에 괜히 부끄러워 짓궂게 말하는 것이라는 걸 그가 알아챌 리가 없었으니까.


이렇게 닦달하는 걸 보면 조바심이 나는 건가. 내가 관계에 있어서?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틱틱 거리며 말하고 때로는 귀여운 저 조그만 승무원이 싫지는 않았다. 해외로 나가는 것이 마냥 지루하고 싫었던 윤기에게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짜증나 마음대로 닫아버리던 비행기 창 밖 하늘이 왠지 모르게 핑크빛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박지민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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