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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로테이션 번외 (1)

그들의 첫날밤

"와, 바다다."


부릉 부릉 요란하게도 나는 차의 엔진 소리 한 가운데에, 지민의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스포츠카가 로망이라며 한번쯤 타보고 싶다는 지민의 어리광 섞인 말에 빌리긴 했는데. 이거, 다음부터는 지민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서는 다른 한 손으로 창 밖에 한창 머리를 빼고 바다를 쳐다보고있는 지민의 어깨를 끌어당겨 제자리에 안착시켰다.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까부터 주의를 연거푸 주었으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바빠서 놀러가보지도 못했다는 퍽 애잔한 말에 넘어가 줄 줄이라도 알았는지 아까부터 자꾸만 목을 빼고 기어오르길래 그대로 제지했다. 한번 흘긋 노려봐주니 혼이 나는 것은 또 싫은지 입술을 삐죽 내미는 모습이 여간 요망스러웠다.


"혼나, 자꾸 그러면."

"...혼나도 되는데."

"박지민."

"알겠어요...안 하면 되잖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틱틱 말을 내뱉더니 이내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을 보고 피실 웃었다. 여전히 뇌구조 하나는 단순한 녀석이었다. 길다고 하면 제법 긴, 몇 시간의 여정을 달리는 중이었으나 지민과 함께라 그런지 어색하거나 지루한 감이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차를 탄 덕에 피곤할 법도 했는데 자라는 말에도 고집을 부리고 아까부터 조잘거리더니 이제 그 마저도 지친듯 보였다. 딱히 특별한 일정이 있어서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랜만에 외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왔고, 뉴스로 들은 둘째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급히 일정을 잡은 것 뿐. 말하자면 흔히 '상견례'라는 것을 급히 치르는 중이었다.


긴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그런 건 어디 팔아먹었는지 아까부터 놀러간다는 생각밖에 머릿속에 들지 않는 자신의 예비 신부를 빤히 바라보다가 됐다 싶어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괜히 긴장해봤자 좋을 것도 없었고. 지민을 선보이러 가족에게 간다는 사실부터가 그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였으니까.


연락이 끊긴지가 오래였다. 지민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연락이 끊겼으니까. 피겨를 하느라 바빴던 탓도 있었지만 가족 자체가 외국에 나가있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굳이 연락을 해서 서로가 인사를 할만큼 윤기는 누군가와의 관계에 낙관적인 편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도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경우였고. 말은 결혼이었으나 프로포즈 후 러시아에서 돌아와서는 줄곧 윤기의 집에 얹혀살다시피 왔다 갔다 거리고 있는 지민이었으니. 그 아이가 하는 행동들은 죄다 눈에 들었다.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도 않고 뭘 하나 싶었더니 오븐으로 뭔가를 열심히 굽고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은 어젯밤이었다.


이미 샤워까지 마치고 혹여 지민이 집에 가겠다고 하면 패딩이라도 걸치고 바래다 주려 했는데 오히려 열중하며 딴에는 앞치마까지 메고 부엌에서 왔다갔다 거리고 있는 모습이 퍽 눈에 걸려서. 물론 그 모습 자체도 눈에 걸렸지만 더 눈에 걸리는 것은 지민의 그 다음 말이었다.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 드리려고 쿠키 굽고 있어요!'


그게 굳이 그렇게 밝게 말할 일인가. 손수 쿠키를 구울 줄 안다는 것도 제법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그 쿠키의 대상이 자신이 아닌 남이라는 사실에 괜히 질투가 났었다. 어른스럽지 않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녀석과 만난 이후로는 한번도 어른다운 일을 해본적 없다는 사실에 이미 두 발 두 손 다 든 상태였다.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품에 소중하게 안고서는 지금도 제 손 하나 잡아주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는 지민에게 어쩌면 조금 심술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먼저 오른손을 뻗어 억지로 지민의 손을 잡아당겼다. 빠져 나가지 못하게 꽉 쥐어버리니 금방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더니 이내 지민의 맑은 웃음소리가 두어번 들려왔다.


그러고서는 손 모양을 바꿔 깍지를 끼고서는 다시 빤히 쳐다보길래 흘긋 잠시 시선을 돌려 지민과 눈을 마주했다. 아, 저것이었다. 아침부터 무언가 줄곧 바라왔던 것은. 올곧게 시선에 담기는 저의 모습.


제일 원하던 것이었다.



-



아까 차 안에서는 그렇게 당당하더니. 놀리다시피 피실 웃으며 제 뒤에 숨어있는 지민을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이 그렇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을 팍 구긴 그는 다시금 따지듯 물어왔다.


"왜, 왜 웃는데요???"

"...너 귀여워서."

"...거짓말."

"티났어?"

"씨이..."


이게 어디서 욕이야. 검지로 툭하고 코끝을 가볍게 치다가 눈이 마주친 사이 가볍게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하고 나는 소리가 야실스러웠으나 혹여 집에서 나오고있는 다른 사람에게 보인 것은 아닌가 싶어 미쳤냐며 등을 쳐오는 지민을 바라보며 그저 웃기만 했다.


뭐 어때, 우리 결혼한다고 저 사람들한테 말하려 온건데. 그렇게 말해봤자 한창 붉어진 얼굴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볼을 두어번 쓸어주다 현관에서 나와 반갑게 웃어보이는 가족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건넸다.


"어머, 네가 지민이구나? 반가워, 나는 윤기 엄마야."

"앗, 네...! 안녕하세요,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윤기의 어머니는 생각보다 훨씬 사근사근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의 차갑고 무심한 성격은 대체 누굴 빼닮은 것일까 오랜 생각을 했었는데 환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오는 예비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지민은 그런 생각 쯤이야 날려버린지 꽤나 오래였다.


똑같이 웃으며 그녀가 내미는 악수를 받아들자 이내 따뜻한 포옹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이는 거라서 부모님들이 들떠있을지도 모른다며 남 일처럼 말하던 윤기였으나, 아니나 다를까. 저만치 멀리 서서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는 그가 눈에 들어왔다.


빨리 오라고,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다그치듯 눈짓을 보냈으나 어깨를 한 번 으쓱하는 그는 다가올 기미가 없어보였다. 제법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 내민 순간 지민의 앞에 훅하고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인영에 놀라기도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눈을 뻐끔뻐끔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저 녀석이 결혼할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이렇게 예쁜 사람이랑."

"네...?"

"반가워, 난 윤기형 민준우라고 해."


그를 빼다 박았는지 새하얀 피부와 검은 머리. 환하게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입동굴. 누가 봐도 형제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랐음에도 조금은 큰 체구가 눈에 띄었다. 윤기와의 차이를 굳이 말하자면 성격 따위겠지만.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오는 모습이 윤기와의 첫만남을 상기시켰다.


처음부터 화내고, 처음부터 쌀쌀맞게 대하고. 심지어 한 번 차였었는데. 그와 비교하자면 사근사근한 말투와 환한 얼굴이 다른 성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제법 밝은 편인 것 같았다.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온다는 말은 그에게로부터 듣지 못했기에. 잠시 준우로부터 시선이 멀어진 틈을 타 고개를 돌려 윤기를 째려봤다.


"왜 형도 있다는 말은 안 했어요?"

"...굳이 해야 하나?"

"쿠키 갯수가 모자라자나요!"

"쟤한테는 줄 필요 없어."

"형한테 쟤? 지금 쟤라고 했어요??"


발끈하며 미간을 잔뜩 구기자 이내 피실 웃으며 집으로 들어가자는 말로 주제를 돌리는 그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따라잡으며 툴툴 거리기 시작했다. 형한테 왜 쟤라고 하냐는 말부터, 왜 온다는 말을 안 했는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는 왜 인사를 나누지 않는 것인지.


그의 성격을 잘 알고있다면 왜 그런지 쯤이야 상상이 갔지만. 그래도 자신을 만나고 제법 완화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착각이었나. 집은 깨끗한 단독주택이었다. 외국에 나가있는 경우가 많기에 잘 쓰지도 않아 더러울 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느껴질만큼 하얀색의 2층집은 동화 속에 나올 것만 같은 단아한 곳이었다.


얼마나 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 여기 살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게 중요한 건가 싶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이사를 안 했다 했으니 결론적으로 제 애인이 여기서 어릴때부터 자라왔다는 말이 됐다.조그만 그의 모습이 생각나니 괜히 웃음이 나와서 잠시 멈춰서 정원에 핀 민들레를 빤히 바라봤다.


어릴때부터 설마 저렇게 차갑지는 않았겠지? 민들레 홑씨도 날려보고, 불어보고 했을까? 저 나무에 걸려있는 그네는 뭘까. 혹시 타고 놀았던 걸까? 그런 재밌는 상상들을 하면서.


"뭐해, 안 와?"

"가요!"


그의 말에 허둥지둥 따라가 팔짱을 꼈다. 그런 것이 싫지는 않은지 웃으며 바라보는 눈빛에 괜히 웃어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상체를 숙여 그가 귓속말을 속삭여왔다.


"우리 뽀뽀 한번만 더할까."


간질거리는 말에 농담 하지 말라고 말하려다 괜히 장난끼 가득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그저 웃고만 말았다. 손을 들어 검지로 그의 입술을 꾹 눌러 저만치로 밀어내고서는 입꼬리를 올려 나지막이 말했다.


"윤기씨 하는 거 봐서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깨끗한 피톤치드 향기가 콧가를 간질였다. 참 그다운 향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집에서 자라 그런가. 그는 유독 민트나 피톤치드같이 꼭 차갑고 시원한 향기를 좋아했다. 그가 구두를 벗는 사이에도 떨어지기 싫어서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괜히 바라봤다.


알고나 있는지. 피실 웃은 윤기는 커다란 손으로 지민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왔다. 퍽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면서.


"왜. 벗기 힘들어? 도와줄까?"

"혼자할 수 있어요."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신발을 벗었다. 말로는 격식 같은 거 차리기 싫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정장까지 차려입고 와서는. 항상 저보고 단순하다느니, 멍청하다느니 뭐라고 해도 말하는 본인인 그가 세상에서 제일 단순하다는 것은 알고있는지.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준비한 게 없어서 어쩌지, 지민이 너 혹시 가려먹는 음식 있니?"

"아니요! 저 다 잘 먹ㅇ..."

"얘 버섯 잘 못 먹어."


손사레를 치며 말하는 틈에 앉아있는 지민 곁으로 풀썩 앉은 윤기는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파스타는 좋아하는데 잡채같이 질긴 건 별로 안 좋아하고. 먹긴 먹는데 싫어하니까 그건 하지마."

"......"

"고기 잘 먹으니까 그것도 많이 해주고."


뭔가를 주절주절 말하다가 이내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제게 쏠려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내 입을 닫았다. 그러나, 이미 쏠려버린 관심이었고. 이를 어찌하랴. 뻘쭘해서 그대로 머리를 긁적였으나 이내 지민을 제외한 모든 가족은 그대로 웃음을 터뜨렸다.


"와, 엄마 들었어요? 지금 민윤기 입에서 저런 말 나온거?"

"몇 년 만이야, 윤기 입에서 남에 대한 걱정같은 말 나온게 대체."


하나같이 웃어 넘어가려고 하길래 영문을 모르는 지민은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러다가도 고개를 틀어 윤기의 귓가에 속삭였다.


"윤기씨가 필요없는 말 다 말해서 그렇잖아요! 저 다 먹을 줄 아는데..."

"거짓말 하지마. 저번에 버섯 못 먹는다고 나보고 먹어달라며."

"아니...! 그건요...그 가게 버섯이 맛 없어서 그런 거예요..."


눈동자 굴리는 소리 다 들린다, 임마. 피실 웃고서는 지민의 머리칼을 헤집듯 쓰다듬었다. 눈을 찌르는 앞머리 탓에 질끈 감았다가도 다시 뜨니 앞에는 해사하게 웃는 그가 한가득 있어서. 괜히 환히 마주 웃었다.


"지금까지 같이 가는 데이트마다 버섯 나한테 먹어 달라고 하던데. 그 가게들 전부 망해야 하나봐. 버섯 맛없게 하는 거 보면?"

"아니이...또 막 그런 건 아니구우..."


칭얼대면서 달라붙는 게 또 싫지는 않아서. 그만 놀리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해, 지민아. 윤기가 저렇게 남에 대해서 신나게 말하는 건 처음봐서."


준우는 뒤이어 손사레를 치며 웃어보였다. 지민아? 지금 지민이라고 했어? 성 떼고? 순간 윤기의 눈썹이 언뜻 치켜 올라갔으나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 정말요? 윤기씨 저한테는 많이 말하고 그러는데..."

"다 네가 좋아서 그러는거야, 자식. 결혼 안 할거라고 맨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형보다 먼저 가네."

"아, 윤기씨가 먼저 결혼하는 거예요?"


환하게 웃으며 뭐가 그리 좋은지 저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둘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미간을 구기며 턱을 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민을 마냥 나쁘게 보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기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찝찝한게 싱숭생숭했다.


"그렇다니까. 형한테 소개시켜줄 생각은 안 하고. 이렇게 예쁜 사람을. 안 그래?"

"내가 왜 이렇게 예쁜 애를 형한테 소개시켜 주는데."

"야, 형 좋고 아우 좋다는 말이 뭐냐. 너는 내가 그 러시아 국가대표 싸인 한 장만 받아달라고 해도 그렇게 안 받아주더니."


웃으면서 말해오는 모습에 괜히 발끈했다. 아니, 곧 있으면 결혼할 사람 탐내는거야, 뭐야. 장난치는 것이라는 것 쯤은 그를 빼고 모든 사람이 알고있었으나 소통역령 제로인 윤기가 깨달을 일은 결코 없어보였다. 그저 옆에서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고있는 지민을 제외하고서는 그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지민아, 윤기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네?"

"지금처럼 잘해주고 그러디?"

"아...그게..."


슬쩍 눈을 돌려 윤기를 바라보자 잘 대답하라는듯 쳐다보고 있기에 그저 입꼬리를 올려 웃을뿐 잠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노골적으로 좋은 말을 하라는 것 마냥 쳐다보면, 난감했다. 이럴 때 보면 누구보다도 아이같아서.


"완전 재수 없었죠. 이거 해, 저거 해.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 그만둬라. 뭐, 잔소리도 장난 아니었어요. 자기가 치울 것도 아니면서 다 어지르고."


진심과 과장을 얹어 한마디 툭 내뱉자 이내 그의 표정은 배반이라도 당한듯 금세 어두워졌다. 내가 이 맛에, 전직 국가대표 놀리는 맛에.


결혼한다니까.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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