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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연예할래? 01

조용한 공간 안에서 울리는 여러 비트들과 휘양찬란하고도 다정한 음색들. 제법 달달한 멜로디들과 귀에 익은듯한 나긋한 기계음. 그 모든 것들은 함께 공존했다. 언뜻 보면 알지 못할 기계들, 그것들은 전부 한사람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헤드셋을 눌러쓰다시피 꽉 끼고서는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다가도 그는 이내 한숨과 함께 들고있던 볼펜을 놔버렸다.


"그만."


차갑고도 낮게 말하는 무서운 목소리 탓에 녹음실은 순식간에 차가운 분위기로 바뀌어갔다. 녹음을 하고 있던 여자 가수의 목소리는 뚝 끊긴지 오래였으나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간주가 더더욱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는 손을 뻗어 음악을 아예 꺼버리고서는 헤드셋을 뺐다.


"야."


녹음실 안에 있는 것은 가수와 프로듀서 뿐만이 아니었다. 신인 가수 실력이 좋다고 노래 좀 맡아달라고 하길래 기대를 하고 했던 작업인데. 정작 온 건 몸매나 얼굴만 뛰어날 뿐, 노래의 '노'자도 모르는 어린 녀석. 잠시라도 노래 쓰는 것을 즐기며 밤새 작업을 손봤던 게 후회스러웠다.


"너 목푸는 연습이라도 제대로 했냐?"


추궁하듯 묻는 말투에 그저 투명한 유리 녹음실 안에 있는 그녀의 얼굴은 당황한 낯빛이 역력했다. 알 것도 없고, 보나마나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지만. 이러한 경우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얼굴이 무지막지하게 예쁘거나. 다른 하나는 그대로 사장이 꽂아줬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면서 만나본 수많은 아이돌과 비교해 봤을 때 얼굴이 그다지 뛰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후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말하자면 낙하산. 뭐, 그런 건가. 돈을 벌려고 음악을 시작했던 것도, 다른 무언가의 대가를 바라고서 음악을 시작했던 것도 아닌데.


며칠 밤을 새서 겨우 완성시킨 이 달달한 곡을 소화하지 못해낸다니. 첫 소절을 부르는 음색을 듣자마자 끌 뻔 한 것을 간신히 억눌렀더니 되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연습 하나 하지 않은 티가 톡톡히 났다. 이래서, 대표님께 직접 받는 부탁은 싫었던 건데.


"가만히 있으면 다야? 너 곡 받으러 왔잖아. 노래 부르러."

"그게..."

"나 아무한테나 곡 줄 만큼 한가한 사람 아닌데."


삐딱한 시선을 하고 턱을 괸 채 노려보자 아무말도 못하고 뒷머리만 긁적거리는 게 영 글렀다 싶었다. 쓰고 있었던 비니를 빼서 신경질적으로 컴퓨터 앞에 내던지고서는 오른쪽 언저리에 있던 차갑게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 녹음하다 말고 어딜 가나!!!"


그대로 자리를 떠 문을 덜컥 열자 뒤에서 소리치는 다급한 대표님의 목소리가 들렸왔으나 그 따위 것을 생각하고 행동할 여유는 지금 없었다.


"제대로 된 가수 끌고올 거 아니면 저 부르지 마세요."


뒤이어 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녹음실에 남은 것은 이제 프로듀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 뿐. 아까까지만 해도 녹음실 안에서 한껏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신인 가수는 그대로 입을 삐죽 내밀고 말았다. 그 피디님이 예민한데다가 실력을 따진다는 말을 듣기만 들었지, 실제로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이게 뭐야! 예쁜 노래 선물해 주신다면서요!"


앙칼진 목소리에 주춤하고 물러서는 대표의 모습이 퍽 우스웠다. 한숨과 함께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해 그대로 피해버린 그는 궁색한 변명만 반복했다.


"민 피디가 그렇지 뭐..."



-



요즘 세상에 제대로 돌아가는 게 있기나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곡을 만들어 달라며 찾아오는 것들은 많은데 제대로 된 건 하나 없고. 실력 하나 괜찮은 녀석이 있다가는 돈이 없어 뜨지를 못하고. 그런 현실에 부딪혀 본인의 재능을 살리지도 못한 채 평범한 누군가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녀석들을 전부 모아 띄워줄만큼 본인은 착한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저 흘러가듯 살면 끝이었다.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던 것인데, 어느 순간 돈에 목이 메이게 됐고 그렇게 어찌어찌하다 국내에서 제일 이름이 알려진 프로듀서로 뜨기는 해도. 그것이 끝. 돈이 손에 쥐어지니 정작 다른 것들은 성에 차지 않았다.


똑같이 기계음으로 목소리를 다듬어 주길 원하는 실력없는 가수들에 지쳤고, 과연 이딴 식으로 음악을 해도 되는 걸까 싶은 걱정이 들었을 뿐이었다. 평소라면 작업실에서 잠들었을텐데 오늘만큼은 새벽에 빠져나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조금의 반항심. 혹은 회의심일까.


사실상 두 쪽 어느 것이든 상관 없었다. 어떻게 되던 간에 이러한 상황은 음악을 손에서 놓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새벽에 나오는 것은 꽤 오랜만인데. 사실 새벽에 작업실을 나가 집을 향하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작업실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유흥가로 연결되어 있어서.


직업병 탓에 밤에 나오는 일은 잘 없을 터라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집을 골랐는데 막상 새벽에 나오니 아침보다 3배 쯤은 밝은 것 같은 갖가지의 네온 사인이 부담스러웠다. 물론, 그런 곳에 한번도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호기심이 있었던 나이가 있었고 막 나가던 나이 또한 있었다.


지금의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된 나이는 23살. 그 전까지는 방황하며 살았다. 밤 길을 걸어가자 달려드는 수많은 여자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길을 바삐했다. 이래서 밤에 나오기 싫었는데. 오늘만큼은 왠지 도무지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차 키를 갖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집에 곧장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집에 놓고 왔는데 항상 만져지던 차 키가 주머니에 없으니 텅하고 빈 게 허전했다. 아니,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노래 작업을 계속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표라도 써내야 하나. 그랬다가는 연예계고 뭐고 확 뒤집힐 것 같다는 생각에 그 마저도 하지 못했다. 애초부터 카메라에 얼굴이 담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뉴스에 실리는 둥, 며칠간 집 앞에 기자들이 죽치고 있는다는 둥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실력 좋은 신인을 발굴하던가, 실력 없는 신인들을 죄다 잘라내던가 해야지 원.


"세상 한 번 잘 굴러간다..."


푸념 섞인 한숨을 내뱉고서 쯧 하고 혀를 찼다. 오랜만에 술이 당기는 밤이었다. 또각또각 하고 울리는 구두 소리가 거슬릴 법도 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 집에 돌아가면 뭐부터 해야하지. 일단 정리도 못하고 나온 트랙 리스트부터 갈아엎고.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얇은 노랫소리가 들리던 것은. 평소라면 지나쳤을 법한 거리에서 귓가에 자꾸만 노랫소리가 울렸다. 그것도 평범한 노래가 아닌, 10년 전 쯤 나왔던 옛날 노래. 23살 처음으로 회사에 들어가 썼던 자신의 곡이었다.


현실에 치이기 바빠 하고 싶었던 말들을 꾹꾹 눌러담았던 곡인데.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이제서야 세상에 뜬 마당에 자랑할 것도 없는 그런 노래. 당시에도 히트를 치지 못해 본인 조차 잊고 있었던 그 노래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불리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듯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으며 노래를 귀에 담았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고운 목소리인데다가 부르는 창법이 다른 이들에 비해 특이했고 그가 스스로 표현하기에는 뭣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을 툭하고 건드리는 간지러운 느낌도 갖고 있었다.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단연코 지금껏 만나봤던 그 어떤 가수보다 뛰어났다. 이런 새벽에 게릴라 콘서트라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버스킹이라도 하는 것인지. 왜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던 것인지 왠지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어서 노래가 들리는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급한 마음에 빨라졌고 그만큼 귀에 들리는 노랫소리도 커졌다.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흥얼거리는 그 노래가 마음에 들어서. 완전히 곁에서 듣는 것만큼 노랫소리가 커졌을 찰나에 코너를 돌자. 거짓말처럼 그는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도착한 곳은 어느 유흥가의 뒷골목. 사람 하나 지나가지 않는 그 곳에서 네온 사인의 불빛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꽤 급하게 달려온 터라 숨을 고르는데 마주친 건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든 상태로 가게 뒷문에 쭈그려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사람.


그대로 눈이 멎는 것만 같았다.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유난히 파인 옷과 붉게 칠한 아이 섀도우. 따먹고 싶을 만큼 붉은 입술. 그 사이에서 훅하고 나오는 매캐한 담배 연기와 윤기와 마주치자 휘어져라 웃는 눈웃음에.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한참을 서서 그를 바라봤다.


"그 쪽 뭐예요?"

"......"

"우리 가게 손님? 뉴페이스네."


다시 한 번 담배를 입에 물어 연기를 빨아들이더니 다시금 헤실헤실 웃는 모습과 마지막 말로 추정해 보건데, 그가 기대어 서있는 유흥 업소의 점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어왔는데도 대답이 없자 의아했는지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훅 끼치는 달달한 과일 향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또 다시 휘어져라 눈웃음을 짓고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에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노래 좋아해?"

"좋아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요?"

"나랑 노래해보자."


뜬금없이 툭 내뱉는 말에 가만히 바라보고있던 그는 뒤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쪽이 뭔데?"

"나 민윤기. 이런 사람이고."


급하게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자 담배를 잡고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받아들어 찬찬히 훑어보더니 그는 말을 건넸다.


"대단한 사람이네. 나 그 쪽 알아요."

"......"


그러고선 씨익 웃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 몸값 비싼데."

"얼마면 되는데?"

"흐흥, 얼마면 될 것 같아요?"


야살스럽게 눈웃음을 짓는 것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점점 가까워져오는 몸에 더이상 할 말도 없었다. 그런 반응이 재밌기라도 한 듯 혼자 한참을 웃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것을 빤히 바라봤다.


"내가 노래 부르면 뭐 해줄 건데요?"


놀리기라도 하려는 건지 입에 다시금 담배를 물고 훅하고 연기를 내뿜은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되물어왔다. 뭘 해줄 거냐고? 그러고 보니 생각해 놓은 것이 없었다. 그저 목소리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것이지, 곧장 스카웃 해서 데리고 가야겠다, 라는 생각.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으니까.


그만큼 현실에 실망을 했던 것인가. 신중하다면 신중한 편이었는데도 이번만큼은 대책 없이 군 것이 분명했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이렇게 좋은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그를 연예계로 끌고 갈 무기라던가, 얼마를 주겠다던가 구체적인 사안은 하나도 정해지지 않은 채 온 것이니까.


아무말도 못한 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던 그는 이내 그 반응이 재밌기라도 한지 웃음을 터뜨리며 담배를 바닥에 짓이겼다.


"좋아요, 노래. 불러보죠, 뭐."

"정말?"

"저 남자한테는 거짓말 안 해요."

"그럼 내일 당장 녹음 들어가자. 곡은 많아."

"내일요?"


심심풀이 삼아 노래나 한 번 해볼까, 했던 것이었는데. 금세 얼굴을 밝히며 날짜부터 들이대는 윤기에 의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당황하기도 잠시 미룰 것이 뭐 있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쁜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달라붙어 보는 것도.


"근데 나, 호텔에서 사는데요?"

"호텔?"

"응, 호텔. 집이 있으면 귀찮거든요. 남자 손님들이 가끔 무턱대고 찾아오기도 하고. 그래서 집에서 안 살아요. 옮겨다니면서 살지."

"......"

"근데 노래 작업하려면 그 쪽 근처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죠?"

"그렇다고 하면?"

"어때요. 집 내주는 건? 많은 거 안 바랄게요. 어지르지도 않고. 그냥 집에 있는 방 하나만 내어주면 돼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가도 일리 있는 말에 잠시 망설였다. 지금 놓쳤다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귀한 목소리인 것 같았고 이런 가게에서 썩힐 인재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기회가 주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깟 방 하나 나눠준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그렇게 하는 편이 작업을 하기도 편하니까.


"걱정 마요. 매일 산다는 것도 아니고 음악 할 때만 그럴거니까. 쉴 때는 편하게 호텔 들어가서 쉴게요."

"...좋아."


그 소리에 환하게 다시금 웃어보이며 거의 끝까지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신발로 짓밟고 나서 얼굴을 가까이 한 그는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박지민. 그게 내 이름이에요."

"...알겠어."

"그럼 잘 부탁해요, 윤기씨."


그렇게, 어떻게 보면 위험한 도박이 시작됐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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