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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연예할래? 02

"완전 한적하다. 혹시 집 자주 안 들려요? 먼지 쌓였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구두를 팽개치듯 벗어던지고서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지민을 지그시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것을 신경 쓸 틈이 아니었다. 저 목소리 하나를 건지는 게 중요했지. 짝이 달라 굴러다니고 있는 구두를 모아 구석으로 넣어버리고서는 먼저 들어간 지민의 뒤를 따랐다.


더러워지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언제나 깔끔하게 해두고 사는데 다른 사람이 집에 들어온 이상 그것도 깨져야 할 약속이라도 되는듯 거실은 이미 지민의 손을 거쳐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들어가며 벗어던진 자켓도 그렇고 들고있던 휴대폰도 내동댕이. 거기다가 어느새 그 자리에서 바지까지 벗으려 했으니까.


"야. 안 멈춰?"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검지로 애써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자 지민은 생각하지도 못한 반응이라는듯 금세 바지춤을 잡고있던 손을 멈추더니 어느새 또 스르륵 다가왔다. 그러더니 또 그 얄궂은 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선 속삭이며 하는 말이.


"침대로 먼저 갈래요?"


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고개를 돌려 야살스럽게 웃고있는 지민을 노려보고서는 팔을 빼내 떨어뜨렸다. 지민이 잡았던 팔을 툭툭 털며 아무말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자 다시 갸우뚱하는 고개가 무슨 뜻인지 이해 못했다는 표정이다.


"뭐야, 진짜 나랑 음악만 하려고요?"

"그럼 내가 다른 걸 할 줄 알았어?"


그 소리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다음 입술을 삐죽 내민 지민은 은근히 흘겨보며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김 빠져. 나 박지민인데."

"알아.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 한 그 말. 후회하게 될 걸요? 다른 사람들은 나랑 자고 싶어서 안달 났..."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자기나 해. 내일부터 혹독하게 굴릴거니까."


그 대답도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닌지 샐쭉하게 쳐다보고서는 팔짱을 끼고 먼저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녀석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원래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너무 터무니 없는 것을 집에 들였나 싶으면서도 아까 들었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서 잊혀지지 않아 곤혹이었다.


아까 들었던 그 감미로운 목소리가 거짓이 아니라면. 내일 녹음할 때 여실히 티가 날 테니까. 그저 다음 날 아침이 기대될 뿐이었다. 침대에서 자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방으로 들어간 것을 보아하니 침대를 차지하고 누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씻은 다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방으로 향하자 먼저 잠들었는지 하얀 이불을 온 몸에 칭칭 감고 있는 지민이 두 눈에 들어왔다. 그 새 씻기라도 했는지 물기 가득한 얼굴과 머리칼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화장실 위치는 기막히게 알아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것은 좋았으나 뭔가 모르게 침범당했다는 기분이 자꾸만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기분 나쁜 감정은 아니었다. 오늘밤부터는 강제로 소파에서 자겠구나 하며 얇은 이불을 챙겨 소파로 향했다. 저녁을 먹었으려나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지만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까지 한 끼 먹지 않은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피실 웃었다.



-



아침은 전쟁이나 다름 없었다. 본래부터 눈이 일찍 떠지는 타입이기도 했고. 늦잠을 자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다. 되려 늦게까지 잤다가는 너무 잔 탓에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침대가 아닌 소파에서 일어난 몸은 무거운데다가 온 곳이 다 쑤셨다.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기지개와 함께 목을 두어번 꺾자 우두둑하는 뼈소리가 여실히 들리는 것이 그간 밤의 고생을 상기라도 시켜주듯 컸다. 한숨을 내쉬며 뒷머리를 긁적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집어들어 왔던 메세지를 확인했다.


'일단 내일 녹음실에 다시 가두라고 해놨네.'


"안 한다니까."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구기고 답장 하나 없이 그대로 그 메세지를 삭제했다. 불만이면, 박지민같은 애를 끌고왔으면 됐잖아.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곡은 쓰는대로 전부 소화해낼 것 같아서.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 깔끔히 씻고 나올 때까지 거실에서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박지민 녀석. 아직도 안 일어난거야? 대체 몇 시까지 잘 생각인거야.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시간을 확인하자 거의 정오가 된 시간. 잔 지 거의 8시간은 된데다가 곧이어 녹음실로 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물기가 다 마르자마자 걸음을 방으로 옮겼다.


잠버릇이 그렇게 험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이불은 저만치로 던져버리고 혼자서 쿨쿨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에 화장기 가득한 얼굴을 보다 민낯을 봐서 그런지 괜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은 그렇게 어른스러운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제 보니 그저 예쁘게 생긴 사람일 뿐이었다.


오히려 토실토실 살이 오른 눈덩이는 귀엽다는 느낌마저 만들어냈고. 가수는 목소리가 중요했지만 얼굴도 빼놓을 수는 없으니까. 그 점이 되려 합격점이라고 생각했다. 데뷔를 해도 실패할 타입은 아니라고,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팔을 뻗어 그를 흔들었다.


"으으응..."


늦잠을 방해받기 싫은지 고개를 세게 가로저으며 더 웅크리다가도 몇 번 더 세게 흔들자 희미하게 뜬 눈과 시선이 맞닥뜨렸다.


"안 일어나?"

"아...지금...으응...몇 시예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하고 제법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11시 40분."

"아 뭐야...완전 아침이잖아요...조금 더 잘래."


말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서는 다시 돌아누워 이불을 끌어당기는 손을 잡아 그대로 일으켰다.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한 꼴이 우습기도 했지만 일어나기 싫다며 갖가지 소리들을 내며 고개를 힘없이 픽픽 가로젖는 모습에 왠지 웃음이 튀어나왔다.


어젯밤에 유혹하던 얼굴은 어디간 것인지. 동일 인물이 맞는지. 원래 아침에는 이런 모습인지. 나이는 몇인지. 물어보고 싶은 사실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으나 잡았던 손을 아예 확 놓아버리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 모습은 그닥 귀여운 장면이 아닌 터라 아예 등을 쳐서 강제로 기상하게 만들었다.


"아파요!!!"

"아프라고 그런 거다, 임마. 빨리 일어나. 아침 챙겨줄테니까."

"나 요리 못하는데."

"누가 너보고 하래? 해줄테니까 나오라고."

"그 쪽도 그렇게 요리를 잘 할 것 같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흐흥."


또 샐쭉 웃음을 지어보이고서는 한없이 눈이 휘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놀려먹으려는 것인지 어쩐 것인지. 요리에 능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완전히 못 한다는 말도 틀린 말이었다. 간단한 것 정도야 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아침으로 거창한 게 필요 없다는 것 쯤은 윤기도 잘 알고있었다. 그저 놀려먹으려고 했던 것인데 금세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부엌으로 먼저 나가버리는 그를 바라보고 있던 지민은 살풋 웃음을 지었다. 반응이 참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처음에 노래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장난 치는 건가 싶기도 했고. 그간 밤에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지민에게 아침이라는 것은 밤과도 같았다.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밖으로 나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와 새콤달콤한 냄새들이 코를 자극했다.


간단한 계란 후라이와 토스트. 말그대로 간단한 아침이었지만 평소라면 아침을 건너뛰었을 지민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룸 서비스 하나 시키는 것도 귀찮아 미루던 중이었으니까. 직업상 몸매를 관리해야하기도 했었기에. 과식은 금물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 진심인 것 같아 보였고 어제 받았던 명함에 적혀 있던 S 엔터테인먼트가 국내에서 가장 큰 소속사라는 것 쯤은 지민 또한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노래가 부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가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 허구언 날 처음 보는 남자들을 가게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그들을 대하고, 술을 따르는 일보다는 노래가 훨씬 낫다고 잠시 동안이나마나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지민에게 있어 노래가 언제나 그저 그런 취미로만 다가왔던 것도 아니었다. 어느 한 순간에는 노래가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때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음악에게 희망을 놓아버린지는 오래였고. 지금은 그저 오래된 추억의 일종이 되어버린 음악이 과연 내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런 불확실함만이 마음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젓가락을 집어 들어 계란과 토스트를 입에 넣고서는 한껏 우물거리며 앞에 앉은 윤기를 바라봤다. 아침부터 커피를 진하게 타서 한모금씩 하고있는 것이 얼굴 그대로가 드러난다 싶었다.


민윤기라는 이름은 신문이나 뉴스에서 많이 들어봤던 이름이었다. 귀에 익숙하기도 했고. 내는 곡마다 전부 히트곡. 노래를 받고 싶어서 가수들이 줄을 섰다는 유명한 사람. 그런 사람이 대체 나한테 왜?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로지 일 말고는 다른 생각은 하나 없어 보이는 이 남자를 왠지 모르게 골려주고 싶어서.


그래서 어찌보면 음악을 더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지민은 생각했다.



-



"네에??? 그게 무슨 소리세요, 다음에는 저희 쪽 곡 써주시기로 했잖아요!!!"

"확답 준 적 없다고 말했는데. 난 쓰고 싶을 때 써. 그리고 지금은 다른 걸 쓰고 싶은 거고."


옥신각신 작업실 안에서는 크거나 작은 소리들이 오갔다. 요약을 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곡을 받기 위해 서있던 줄들이 길었는데 그걸 다 내팽개치고 쑥 끼어들어온 '박지민'이라는 저 사람은 누구며 뭔데 중간에 곡을 채가느냐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질투들.


질투라면 익숙했으나 윤기에게 항의를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몇 분 후 깨달았는지 지친듯 지민 쪽을 노려보던 여러 가수들을 지민은 그저 어깨를 으쓱 하고 마주볼 뿐이었다. 아, 벌써부터 미움 샀네. 나쁜 건 내 쪽이 아니고 제멋대로인 저 사람인데.


"박지민, 이리와."

"곱게 불러도 가거든요?"


피식 웃으며 금세 윤기의 곁으로 가서는 그가 쓴 악보를 바라봤다. 왠지 모를 멜로디들 뿐. 이걸 하루 아침에 썼다고? 믿을만한 것도 아니었으나 누구보다 떨린 표정으로 어떻냐고 물어오는 그가 나름 귀여워서. 악보를 대충 훑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저 가이드 녹음 좀 해주시면 안돼요?"

"가, 뭐?"

"가이드 녹음. 초짜라도 그런 것쯤은 알거든요? 나 악보 잘 못 읽는단 말이야."


애교라도 부리듯 고개를 가로젓는 지민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생애 생전 곡은 많이 썼어도 직접 가이드 녹음을 해준 적은 없었으니까. 당돌한 말이다 싶으면서도 악보를 잘 못 읽는다는 말에 납득이라도 하듯 구겨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


애초에 기초 지식 하나 알려주지 않고 저 목소리를 탐하려 했던 건 이 쪽 과실이니까. 그 정도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잔뜩 떠올랐다. 맞는 말이었으니 가이드 녹음쯤이야.


"알겠으니까 다 나가있어. 다 끝내고 부를게."


자신들이 곡을 써달라고 할 때는 꿈쩍도 안 하고 버티더니 대뜸 나타난 초보자의 말에 저리도 기를 죽이니 기다리고 있었던 가수들은 그저 어이없을 뿐이었다. 그 프로듀서 맞아? 얼떨결에 계단으로 쫓겨나버린 그들은 질나쁜 농담을 하기 바빴다.


"생초짜가 음악에 대해서 뭘 안다고 들어왔대?"

"어떤 수를 썼길래 민 피디님이 속아 넘어가는건데."

"뻔하지 뭐, 몸매 좋고 얼굴 예쁘던데. 그거 하나면 다 아니야?"

"어머, 그게 무슨 가수니? 몸 파는 사람이지."


저만치에서 깔깔 거리며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서로 서로 속닥거리는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고있던 지민은 피실 웃으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또각또각 나는 구두 굽 소리가 나쁘지는 않아서. 화났다는 표정보다는 '같잖다'는 표정에 가까운 그 얼굴로 다가서자 아까까지만 해도 욕을 하던 베짱은 어디로 가고 움찔한 채 입을 다무는 그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면."

"......"

"그쪽들이 나보다 예쁘면 되잖아요. 안 그래?"

"어머, 무슨..."

"왜요? 아까 나보고 예쁘다면서요. 맞아요. 나 예뻐."

"......"

"어디 나보다 더 예뻐지게 노력."

"......"

"열심히 해봐요."


승리에 도취된 웃음을 유유히 얼굴 한가득 띄우고서는 돌아섰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애초부터 남의 시선 따위에 의식하며 살아왔다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자퇴까지 하면서 여기까지 악착같게 살아왔을 리가 없으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중얼거리며 자판기를 찾았다. 평소라면 담배 한 개비라도 입에 물어 이 쓰디쓴 기분을 없애버릴 것이 분명했으나 목소리가 나빠진다고 담배갑을 통째로 뺏어 가져가버린 윤기 탓에 그것 마저 저지 당했다. 이런 기분에는 차가운 콜라가 최고였다.


톡하고 쏘는 것이. 속을 풀어줄 것만 같아서. 이 정도로 끝날 것만 같았던 괴롭힘이 서막일 줄은. 그 때까지 지민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럼 녹음 들어갈까?"


윤기가 앉아있던 의자가 반동으로 핑그르르 돌아갔다. 그 사이에 가이드 녹음을 끝내놓은 것은 고마웠지만, 목소리를 녹음한 게 본인이 아닌 다른 가수라는 것을 깨닫고 맥이 쭉 빠졌다. 사실, 그의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궁금해서 해달라는 것도 이유의 한 몫을 했는데.


긴장 풀고 평소처럼 하라고 말은 쉽게 했지만. 아까부터 눈치나 슬슬 보면서 작업실 안을 빼곡히 채운 다른 가수들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노래를 받으려다 순서를 빼앗긴 패배자들, 이라고나 해야할까. 아까 자신의 뒷 이야기를 속닥거렸던 사람들도 있고.


왠지 모르게 그들이 꼭 저를 비웃는 것만 같은 표정은. 착각일까. 묘한 느낌에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도 간주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헐레벌떡 헤드셋을 눌러썼다. 첫 부분은 저음부터 시작이었으니 감정을 잡아야 했다. 녹음실에서 전문적으로 녹음을 해보는 것은 또 처음이라.


긴장이야 뭐 조금 됐지만 그런 것을 신경쓰는 성격도 아니었고. 목소리를 속으로 찬찬히 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 악보를 찾는 도중.


"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뚝 하고 간주를 끊어버린 윤기는 왜 그러냐는듯한 입모양으로 말을 걸어왔지만 그도 그럴것이.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히 꽂아뒀던 악보가 없어졌으니까. 당황하며 바닥에 혹여 떨어졌나 살펴봤으나 그도 아니었고.


밖에서 지켜보는 윤기는 윤기 나름대로 곤혹이었다. 녹음을 하다말고 들려오는 이질적인 지민의 목소리와 그와 동시에 끊긴 간주. 그것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아까부터 키득거리고 있는 저 가수 무리들. 대체 무슨 일이지?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악보가 없어졌다고 말하며 울상을 짓는 지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얘기는 달라졌다.


뻔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곡 하나를 받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도 표현하지만 아까 가이드 녹음을 하기 전 잠깐의 틈이 있었으니 그 사이 악보를 누군가가 훔쳐갔다는 이야기 쯤은 있을 법한 얘기였으니까. 게다가 그 범인을 굳이, 다른 곳에서 찾을 수고도 없을 것 같았고.


여전히 눈꼬리를 축 내린 채 어젯밤과는 확연히 다른 표정으로 이리저리를 뒤지는 지민이 마냥 안쓰러웠다. 이런 취급 받으라고, 내가 데려온 게 아닌데. 미간이 확 구겨졌다. 되도록 녹음할 때 화는 내지 않으려고 애 쓰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표정은 갈수록 험악해져갔다.


"저거봐요, 민 피디님. 저런 생초짜한테 맡기는 게 애초부터 무리라니까요?"

"맞아요, 악보를 잃어버리기나 하고! 얼마나 소중한 건데."


가식을 떨며 뒤에서 아양이라도 부리듯 하는 말들에는 저 아이 대신 나에게 곡을 달라, 라는 의미가 이중적으로 숨어있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참으라고, 참아야 한다고. 지금 참는게 지민에게도 분명 좋을 것이라고. 일을 크게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해라."

"차라리 저희한테 곡을 주는 게 훨씬 이득이에요."

"어차피 쟤 노래도 제대로 못 부를 거 아니에요, 그죠?"


들려오는 목소리와 이리저리서 악보를 찾는 지민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대로 들고있던 헤드셋에 힘이 들어갔다.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곳이 녹음실이고, 비싼 장비들로 가득하고. 어떻게 보면 유명한 가수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이성이 뚝 하고 끊어져버린 그는 그대로 헤드셋을 빼 벽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


"야 이 시발 새끼들아."


둔탁한 굉음과 함께 단번에 부서져버린 헤드셋과 들려오는 윤기의 욕소리에 작업실 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방음이 된 녹음실 탓에 밖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아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시끌벅적해 보이던 밖이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그것이 윤기의 한마디 때문이라는 것 쯤은 지민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음악이 장난이냐?"


그의 말 하나가 이상하게 들리지도 않는데. 귓가에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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