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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미 01

섞여오는 비릿한 피냄새. 엠뷸런스 소리와 새벽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변할 것 없이 시끄러운 말소리가 오가는 이 곳.


"아니요, 보호자님. 지금 수현이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ㄷ..."


아 바쁘다니까! 전화기 너머로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덕분에 피곤에 찌든 눈을 연신 부비적 거리며 전화기를 귀 가까이에 대고있던 지민은 그대로 눈을 질끈 감으며 들고있던 손을 멀리했다. 거 참, 성질 한 번 급하시네.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건만, 이런 일이 한두번 있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윗 선생님들에게 굴려지는 건 인턴 뿐이었다. 덕분에 몇 날을 꼴딱 새고서도 이 모양이니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서 보호자를 병원으로 끌고 들어와야 하나 생각하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릴 때 쯤 누군가 자신의 흰 가운을 잡아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선 언뜻 시선을 내렸다.


"선생님..."


아차.


"...수현아, 수액 맞고 기다리고 있으라니까 왜 나왔어. 밖에 걸어다니면 아직 아야 해요."

"엄마는요...?"


아까까지 구겨져있던 미간은 순식간에 밝은 미소로 탈바꿈했다. 아직 머리가 어지러울텐데도 어느 틈에 간호사 몰래 병실 밖으로 빠져나왔는지 아직 제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 키로 울상을 짓는 얼굴을 지민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봤다. 머리가 어지럽다며 응급실로 실려왔던 아이였다.


누군가의 관심이 없어 그렇게 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영양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수액만 맞으면 끝날 간단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치료 내내 엄마가 보고싶다며 칭얼거리는 녀석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환자의 말을 들어주면 다른 환자들의 편의까지 봐주게 되어 안된다는 선배들의 만류에도 지민은 전화기를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 불러줄게. 됐지?'


그 말 한마디에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수현이의 얼굴을 잊지 못해서. 근데 이게 웬 날벼락이람. 자상한 목소리를 기대했거늘 오랫동안 길게 지속되던 수화음 끝에 다다른 목소리는 생각보다 얇고, 생각보다 날카로운 색을 가지고 있었다. 혹여 수현이의 엄마가 소리 지르는 것이 그 아이의 귀에 들어갈 새라 급히 전화기를 내려두고 시선을 맞추듯 무릎을 꿇었다.


"어떡하지, 수현아. 엄마가 오늘은 바빠서 안되겠다고 하네."

"...그러면 엄마."

"......"

"...안와요?"


인생은, 충동적이라고. 언제나 생각해왔던 일이었다.


"아니야. 선생님이,"


마음이 약한 게 아니라. 그저 모든 사람들이 충동적이게 살아가는 것 뿐이라고.


"바래다줄게. 엄마 보러 가자."


그 중에서도 내가 약한 것 뿐이라고. 그렇게 애써 합리화를 하면서도,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바래다 주기는 개뿔. 대체 몇 일동안 잠을 못 잤는데. 이 환자를 마치면 겨우 자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져 기뻐 날뛰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어딜 데려다 주겠다는거야.


머릿속은 복잡하고 더럽고 추잡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데도, 그 말을 듣고서 다시 눈웃음을 환히 지어오는 수현이의 얼굴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짜요???"

"응, 집에 가면 엄마가 기다리고 계실거야. 수현이 집주소 알지?"

"네!"


그럼에도, 아이의 손을 맞잡고 오랫동안 입고 있던 탓에 왠지 모르게 쉰내가 날 것만 같은 흰 가운을 벗은 채로 자동차 키를 챙겨드는 것은.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



"수현아, 더워?"


혹여 다가오는 여름 기운에 덥다고 칭얼거릴까봐 차에 타자마자 약한 온도의 에어컨을 틀었지만 엄마를 보러 간다는 사실이 마냥 좋은듯 함박웃음을 띄고있는 수현이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렇게도 좋을까. 피식 웃으며 자동차 핸들을 고쳐잡았다.


대체 얼마만에 밖으로 나가는 것인지 알 턱이 없었다. 게다가, 사적인 용무도 아니고 환자를 바래다 주겠다는 순 엉터리의 용무였지만. 보나마나 선배나 치프가 알게되면 몇 일 동안 응급실 출입을 금지 당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왠지 모르게 가벼웠다.


항상 그랬다. 내가 힘들더라도 누군가를 웃게 만들어주는 게 이토록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을 느끼는 것은.


"엄마랑 만나면 제일 먼저 뭐부터 할거야?"

"으응, 일단 선생님한테 고맙다구 하구우..."


그 소리에 앞만 보고 운전하고 있던 지민은 들키지 않을 정도로 피식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백미러를 흘긋 쳐다봤다. 아직까지 환하게 웃은 얼굴 그대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수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안전벨트라도 채워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으나, 아이를 키워본 적이 있어야지. 고작 5, 6살 쯤 밖에 되지 않은 수현이를 위한 카시트가 지민의 차에 있을 리는 없었다.


"수현아, 얌전히 앉아서 가자. 그러다 다칠라."

"네에."


이럴 때 말은 또 잘 듣네. 아까까지만 해도 주사 바늘이 무섭다며 온갖 난리를 부리더니. 어린이 환자를 다루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었다. 엄살이 심해서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정말 겁이 많아서 다루는 방법이 능숙하지 않으면 되려 치료를 잘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초보자에게는 자주 있는 실수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가슴에 새기듯 아침마다 반복하는 대목이었다.


분명히, S 아파트에 산다고 했으니까, 이 쪽 길로 빠져서 들어가면 되겠다.


"수현아,"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왜 항상 유념하지 못하는 걸까.


아주 순간이었다. 퍽 다정한 말투로 잠깐 뒤를 돌아보는 사이, 앞 차가 급정거 한다는 사실을 보지도 못한 채 쿵하는 커다란 둔탁음과 함께 아릿한 순간의 고통과 터질듯한 굉음이 귀를 억눌러온 것은.



*



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일정한 기계음이 귀를 뒤덮었고 흐릿한 시야가 다시 선명해지기까지는 몇 분 간의 시간이 소요됐다. 가슴에 느껴지는 조금의 통증과 왠지 모르게 뜨뜻미지근하며 축축한 허벅지가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온전한 것들이었다.


"아파..."


갈라진 목 틈 사이로 터져나오듯 간간히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생각보다 푹신한 감촉에 잔뜩 미간을 구기며 앞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 안에 들어오는 둥그스름하고 하얀 물체에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에어백이 터졌구나..."


직감적으로 느꼈다. 사고가 났구나, 하고. 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만 봤지, 사고의 피해자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가지, 빠져나가서는 대체 어떻게 병원까지 돌아가나 싶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갈 때 쯤 문득 수현이를 까먹고 있었다는 생각에 등이 오싹해졌다.


"수현아!!!"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바라봤다. 위험하다고 제자리에 앉으라 제지를 해서 그나마 다행이지, 앞 차를 들이 받으며 전해진 충격은 오로지 지민에게만 간 듯 생각보다 평온하게 그 자리에서 기절해 누워있는 수현이를 보고 조금은 안도한 한숨을 내쉬었다. 팔을 뻗어 이름을 부르며 세차게 여러번 흔들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뜨는 수현이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선생님..."

"괜찮아? 다친 곳은?"

"...배고파요."


다행이다. 다친 곳이 없어서. 튀어나오는 엉뚱한 대답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보다, 갑자기 사고가 왜 난 거지? 속도 위반을 한 것도 아니고, 잠깐 뒤돌아본 것 외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을 터인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왜. 일단 나가고 봐야겠다, 싶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아...!"


순간 휘몰아치는 고통에 모든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으응, 괜찮아...나 괜찮아, 수현아. 잠깐만 거기 있어줄래? 선생님이 금방 꺼내줄게."


애써 괜찮은 척, 담담한 척을 하며 수현이에게 웃어보였지만, 달달 떨리는 손으로 고통의 근원지인 허벅지를 바라보자, 생각보다 가관인 모습에 절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부딪힐 때 유리가 깨졌던 것인지 커다란 파편 하나가 허벅지에 박혀 상처를 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축축함은 그 사이에서 새어나온 피 때문인가, 싶었으나. 지금에서 할 수 있는 건 급히 응급처치를 하고 수현이를 빼내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당장...유리를 빼고 지혈을 하는 게 우선이겠지. 뚝뚝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다른 한 손으로 닦아내고 지혈을 할 손수건을 찾은 다음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잘못해서 신음소리라도 크게 냈다가는 덜컥 겁을 먹은 수현이를 마주할 수도 있었기에.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멘탈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하나의 실수로 다른 이를 패닉에 빠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조수석 서랍에 들어있던 알코올을 꺼낸 지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혹시 모를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거즈와 함께 갖고있으라는 조언 아닌 조언에 얼떨결에 넣고 다닌 것 뿐이었는데 이런 쓸데없는 상황에 도움이 될 줄이야.


"...일단 감사해요, 치프님."


훅하고 깊은 숨을 내쉰 다음 이를 앙다물고서는 알코올을 허벅지 위로 부었다. 타들어가는 따가움과 함께 밀려오는 고통을 잊을 새도 없이 덩달아 알코올을 부은 손으로 유리조각을 단숨에 빼내었다.


"아윽..."


단말마의 비명이 새어나오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들릴 정도의 소리는 아니었다. 튀어나오려는 더 큰 비명을 가까스로 누른 채 손수건으로 허벅지를 동여멨다. 더이상 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거즈를 잔뜩 꺼내 그 위에 묶은 지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현아, 오래 기다렸지. 선생님이 금방 꺼내줄게..."


아직까지 느껴지는 허벅지의 통증은 가실 줄을 몰랐으나, 우선 밖에 나가고서라도 꿰메야겠다 싶은 생각이었다. 걷기도 힘든 와중에 온 힘을 다해 문을 열어 수현을 빼내 품에 안았다. 무섭기라도 했을텐데 울지 않고 버티는 모습이 꽤, 대견했다.


밖으로 나오면 무엇이라도 나아지는 상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밖은 말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어디서부터 충돌이 시작된지도 알 수 없었으나, 화르륵 타오르고 있는 불들이며 언제 온건지 도로 전체에 가득 들어찬 구급차와 소방차까지. 한 밤 중인데도 참,


"밝네."


중얼거리며 누구에게 이 상황을 전달해야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호흡이 없어요!!!"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는 군중 한 가운데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 그 소리를 듣자마자 뭔가 알 수 없는 본능이 훅하고 튀어올랐다.


"수현아, 저기 아저씨들 보이지? 다쳤다고 말하고 아저씨들이랑 같이 있어. 선생님이 금방 갈게."


저만치 한가득 몰려있는 구급대원들을 가리키며 지민은 수현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멍청한 편은 아닌 터라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그 쪽으로 달려가는 수현이를 보고 아픈 허벅지를 괜스레 참아내며 그 곳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에요?"


치솟는 불길의 밝기에 의존하여 찾아간 곳에는 의식 불명인 남자가 한 명 쓰러져 있었다. 급성 쇼크인 것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충돌한 차사고의 원인이 큰 듯 했다. 외관상으로는 상처 하나 없는 탓에 근처로 다가온 구급 대원들도 손을 못쓰는듯 하였다.


"일단 병원으로 옮기고,"

"아니요. 지금 당장 인큐베이터 들고 와주세요."


그 중에서도 대장 뻘은 되는듯한 제법 날카롭게 생긴 남자는 잔뜩 구겨진 미간을 다시금 구기며 부하 대원들에게 손짓 했으나, 이 상태로 가까운 병원에 끌고 가봤자 심정지부터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 지민은 환자의 옆에 무릎을 꿇고 뒷목에 손을 얹은 채 기도를 확보했다.


"아니, 지금..."


의식이 없으니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해 옮길 것을 들고오려던 구급 대원은 그대로 미간을 잔뜩 구겼다. 얘는 뭐야?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나이는 많이 쳐줘봤자 20대 후반일 것이 분명한 저 앳된 얼굴은 갑자기 끼어든 상황에서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면모가 보이는듯했다.


"뭘 안다고 지금 나서. 여기 꼬마가 나설 자리 아니야.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빨리 비켜."

"인큐베이터는요?"

"뭐?"


이미 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듯 싶었다. 부하 대원들도 급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 탓에 어느 틈에 가져온 것인지 손에 들린 구급 키트와 인큐베이터를 쭈뼛 쭈뼛 제 눈치를 보며 건네는 모습에 그저 허탈한 웃음을 허, 하고 내뱉었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ㄱ..."

"이 환자 그대로 병원 가면 심정지로 사망해요."

"......"

"그리고 꼬마 아니고."

"......"

"의사예요."


검은 머리칼. 하얗다면 투명할만큼 하얀 피부. 붉은 입술과 깊은 눈. 후질근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 누가 봐도 의사가 아닌 것처럼 생겼다만.


"대장님...일단 의사시라니까 맡겨두는게..."

"그래, 민 대원. 우리보다는 응급 처치에 능숙할거야. 자네는 다른 환자들을 이송하고 있게."


어느 틈에 몰려온 것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저만치에서 구조를 돕고있던 대원들이 다가와 제 어깨를 두들겼다. 그 말에 흘긋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인큐베이터까지 삽입하고 다른 대원들과 손발을 맞춰가며 숨을 불어넣고 청진기로 심박동을 확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 놈들은."


어딜가나 나서는 걸 좋아하지. 어딘가 모르게 가시 박힌 말투로 한마디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치료에 집중 중인 녀석이 알 턱은 없었지만.


"뭐야, 민윤기. 너 예전 버릇 나온다? 다 진정됐다며."

"...놔. 지금은 구조가 우선이야."

"네가 그런 말 하면 퍽도 믿겠다. 아까 나는 그 어린 의사 선생님 네 손으로 죽이는 줄 알았어."

 

어딘가 모르게 놀리는듯한 동기의 말에 팔을 뻗어 걸치고 있던 어깨동무를 밀어냈다. 그래, 나도 다 진정된 줄 알았다, 새끼야. 구조가 급선무라고 쿵쿵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안정시키고야 있었으나, 저 만치에서.


"이송할 기구 부탁드려요!"


다급하게 외치는 어린 의사의 목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술을 꾹 앙다물었다. 더럽게도,


"시발."


의사가 싫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일단 구급차로 이송할게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부부를 부축해 구급차로 이끌면서도 괜히 시선은 아까 그 곳으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툭 튀어나와 입지를 굳게 다져나가는 의사들도, 지금처럼 어린 의사가 나타나 무엇인가 다 안다는 것처럼 나서는 것도.


전부 그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다.


"민 대원, 저 쪽에 화재 사고가 발생했대. 일단 두 팀으로 갈라져서 구조한 다음에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제대로 들어낼 틈도 없이 구조 대원이라는 명목 하에 발은 움직이고 있었다. 흘긋, 뒤를 돌아 아까 그 젊은 의사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이런, 어디로 간 것인지 흔적 하나 없는 도로를 가만히 보다가 그대로 피식 웃어버렸다.


그럼 그렇지. 의사라는 것들은 다 그랬다. 돈이 되지 않으면 포기해버리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금세 관두고. 무리일 것 같다 싶으면 손을 떼버리는.


"도와주세요!!!"

"지금 가요!"


매캐한 화재 연기 탓에 목이 따가웠다. 늦은 저녁을 시켜두고서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출동 준비를 했다는 게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도움을 바라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 지금은 더 급선무였다.



*



사고의 원인은 앞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나 그대로 가드레일을 들이 받아 버린 차 때문인 것 같았다. 기적인 것인지, 불행인 것인지. 의식 불명을 제하고서는 심한 사상자는 없는데다가, 피해의 규모도 차 몇 대 치고는 적은 편이었다.


몇 시간을 뛰어다닌 것인지 주황색 유니폼은 새까맣게 그을린 자국이 여러 군데 남아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앞머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다가 이제 더 이상 임무가 없을 것이라 판단해 죽하고 상의 유니폼 지퍼를 내려 그대로 벗어던진 후 팔에 걸쳤다.


검은 반팔 하나만 바깥 공기와 닿고 있으니, 그제서야 조금 살만한 것 같았다. 한숨을 푹 내쉬고, 잠시동안 뒤를 바라봤다. 깨진 유리 파편들과, 화재로 인한 피해물들. 그것들만 정리하면 본격적인 업무는 완전히 마무리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근 들어 발생했던 사건 사고들 중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 녀석들은 신원 보호 하라니까 다 어딜 갔..."


어째 노트를 맡겨둔 부하 직원들이 하나도 안 보인다는 생각에 이리 저리 두리번 거리며 구급차 뒤로 돌아가던 찰나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파...읏..."


달달 떨리는 손으로 알코올을 옆에 둔 채 의료용 바늘과 실을 들고 본인의 허벅지를 꿰메고 있는 아까 '그' 젊은 의사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하는 건가 싶던 참에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단말마의 비명.


아아.


그가 줄곧 다친 상태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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