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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02

밥이 차마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떠나 보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지난 26년간 폭력을 휘두르며 대한 대가를 이제서야 치루려 하는 것인지. 밥값이 아까우니 혼자 차려먹고, 집을 제공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라며 뺨을 때리던 고모님은 어딜가고.


토요일의 제법 여유로운 점심 밥상에는 생애 생전 차려준 적도 없었던 갈비가 놓여있었다. 물론, 본인이 차린 것은 아니었으나 어젯밤에 생각이 많아 늦게 잠든 지민이 샤워를 마치고 부엌으로 나오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가정부가 말하길, 고모님이 차려주라고 일렀단다.


보나마나 최고급 고기를 썼을 것이 분명하여, 맛있는 향기까지 식욕을 북돋으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누군가 한 사람의, 아니 자신의 영혼보다 훨씬 소중한 한 사람의 인생을 곧 망치는 것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단순히 '정략결혼'이라는 간단명료한 단어로 대체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사슬이 되어 그를 옥죄어 올 것이라 생각하니 깊은 속이 울렁거렸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꾸역 꾸역 맛있는 밥을 집어 넣자 마음과는 달리 꿀꺽 잘도 넘어갔다. 이질적인 고모님의 모습에, 그런 모습을 26년간 바라보고 자라온 탓인지 몸과 마음이 겉도는 자신도 어찌보면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역겨운 생각을 하면서.


결국 지민은 밥 한 그릇을 통째로 다 비웠다. 먹으면 먹을수록 어째 배는 부른데, 마음은 공허해지는 기분이었다. 숟가락을 식탁 위에 가볍게 내려놓고서는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신발에 발을 구겨 넣었다.


어딘가로라도 떠나 잠시 생각하지 않으면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봤자 돈 한 푼 가진 거 없는 대학생이 갈만한 곳은 기껏해야 공원같은 곳 밖에 없었지만. 물론, 이런 사태가 될 때가지 아무런 조치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고, 고모님의 옷깃을 붙잡고 늘어져 보기도 했으며, 몸을 때리려는 시늉을 해도 눈을 질끈 감고 버티고 서기까지 해봤다. 심지어는, 이제 와서 왜 나를 이용하려 드는 것이냐고 악을 질러 보기도 했으나.


바위보다 더 단단한 그녀에게 통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찌보면 이 집안의 최대 피해자인 지민은 가장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터덜 터덜 걸음을 이끌어 도착한 곳은 역시나, 공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쌀쌀맞은 날씨라 그런지 벤치 쪽은 사람 흔적 하나 보이지를 않았다.


그 곳에 털썩 주저앉아 신발 끝으로 바닥을 툭툭 쳐보기도 하고 질질 끌어보기도 하면서 조금은, 많은 생각을 했다. 어느 것이 최선일지. 내가 여기서 사라져 버린다면, 죽어버린다면.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받은 것이 많았기에, 셀 수 없이 많았기에.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 시궁창은 S기업의 사생아라는 타이틀이 붙은 채 뒷세계에서 욕이나 들어먹고 있는 신세. 더군다나 지민의 입장에서는 집안에 대들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


저 하나 죽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자신의 사촌 형인 지훈이라는 작자가 고집이 세다는 사실도 잘 알았고, 결혼 하기 싫다고 짜증을 부려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것 쯤은 쉽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완가로서는 머리가 트인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쪽이 더 이득이 될지 판단하는 눈 쯤은 이미 지민의 위를 훨씬 겉돌고 있었다. 차라리, 모든 일들이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일들이 죄다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평생을 사랑해 주겠다며 이마에 잔뜩 입을 맞춰주던 엄마와 사별하던 그 날. 거둬들이기 싫다는 눈빛으로, 벌레를 보는듯한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고모님을 처음 만났던 그 날.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면, 차라리 비오던 그 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는 선택을 했었다면.


지금의 이 상황은 윤기에게 다르게 작용할 수 있었을까.


울컥, 눈물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윤기라는 사람은 생각보다도 훨씬, 지민에게 크나큰 달이었다. 잊을 법하면 금세 마음 위로 떠올라 은은하게 제 마음 한구석을 밝혀주는. 우울한 밤이라도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이어폰 너머로 날아가 그의 환한 달무리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달.



-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곧 이 집에서 나가는 것도 시간 문제일 테니까. 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것이 정략 결혼이라는 걸 알지도 못할테니 평범하고, 행복한 척을 하며 결혼식까지 거행하게 될 터였고.


어릴 때 사고로 부모까지 잃은 입장에서, 이런 슬픈 속을 털어놓을 곳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S기업의 자제와 결혼하게 되면 이후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보장이 되어있는 셈이었고. 더이상 제 음악이 팔리지도 않고, 들을 사람도 없어진다 해도 인생이 망하는 일은 없게 될...


"아."


그만 입가에서 씁쓸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 언제 이런 치졸한 생각을 하게 됐지. 음악에 목숨을 걸고 이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도,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이 없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있어준다면. 있어준다면 최고의 음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


세상이라는 게 참 무서웠다. 하나를 알게 되면 더러운 것 하나는 더 알게 되는 꼴이었고. 지금 자신의 모습만 봐도 그랬다. 상대와 첫대면을 하는 날이 바로 내일이라고 들었고, 결혼식 날은 더 앞당겨 다음주 목요일이라고 들었는데. 누가 봐도 성대하게 치뤄질 것이라며 신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S기업 회장에게 과연 무슨 말을 했어야 했던 걸까.


그저 입술을 꾹 닫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욕소리를 견딘 채. 전화기를 손에 붙드는 것 말고는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는 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곧 있으면 집을 비워야 하니 짐을 챙겨두라는 말에 손수 박스까지 가져와 짐을 싸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고.


쭈뼛 쭈뼛 평소와 달리 훨씬 어색한 웃음을 얼굴에 띠며 돕겠다고 소심하게 말하는 매니저를 단칼에 거절한 후의 마음은 그닥 좋지 않았다. 오랜 기간을 함께해 준 사람이었다. 아플 때도 외국어 하나 못하는 그 형은 약국까지 뛰어가서 온갖 약들을 사오곤 했으니까. 그만큼 소중했기에.


그만큼 공허함이 컸다.


제 결혼을 말리지 않는 모습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강제 결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도, 옆에 서서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계약서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매니저가 조금은 미웠다. 물어보고 싶었다. 그저, 비즈니스 적인 관계일 뿐이었냐고, 그 정도로 정의될 사이였냐고. 나는, 나는 적어도.


"...끈끈한 정으로 연결되어있는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는 담배 하나가 들려있었다. 끊었다고 생각했고, 끊어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편의점까지 들려 저도 모르게 담배 한 갑을 손에 꾹 쥔 채, 베란다에 기대 라이터에 불을 켜고 있는 꼴이라니.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의지력이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다, 내가. 내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하지. 어떤 사람일까. S기업이라니, 듣기만 해도 등이 설 정도로 대기업 중에 대기업이고. 숨겨져왔던 둘째 아들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은 상태니까, 온실 속의 왕자님같은 분위기일까.


오만하고, 아랫 사람 대하듯 남을 부리는. 매캐한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후 내뱉었다. 희뿌연 연기가 나오는 것이 눈이 따가웠다. 오랜만의 담배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눈이 시큰거리는지. 가수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고, 팬들이 돌아선 것도 아닌데.


근 30년을 죽도록 살아온 인생의 끝이 정략결혼이라니. 그저 터무니 없는 운명의 종점에 서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지하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슴 한 켠이 시리는 이유는 이제 보지 말자고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했음에도 담배를 쥐기 전 다시 한 번 열어봤던 보라색 편지와, 그 안에 여전히 어여쁘게도 적혀있는 달을 닮았다는 말 때문일까.


달이라. 하얀 달이라. 그 사람에게 있어 난 어떤 달일까. 환한 보름달? 아니면, 반쯤은 가려져 속을 알 수 없는 반달. 그것도 아니라면,


"속이 새까맣게 문드러져서 다 타들어가버린."


삭일지도 모르지.



-



누군가와의 첫만남은 언제나 떨리는 것이었다. 처음 대학에 입학하여 신입생들을 만날 때도 그랬고, 처음 동아리를 들어가 자기 소개를 했을 때도 그렇고, 몇 년 전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는 길 듣게 되었던 윤기의 노래와의 만남도 그렇고.


문제는 그토록 좋아하는 우상과의 만남이 제법 껄끄럽지 않은 상황에 이루어졌다는 사실 뿐이지.


"어...그...저기..."


말문이 트이지를 않았다. 상황 설명의 요는 간단했다. 만나기로 한 약속대로 만났고, 꿈에 그리던 사람을 눈 앞에 두고 볼 수 있게 됐다. S기업의 힘 덕분인지 인기있는 레스토랑임에도 불구하고 주말 한낮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고 덕택에 들어올 때만 해도 검정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온 얼굴을 가리고 들어왔던 윤기의 얼굴도 환하게 드러나있는 상황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민에게 강요되어왔던 얄궂은 일이었으나, 집안에서의 지원은 지금까지 일체 없었다. 돈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들을 혼자 해결해야만 했고 대학도 장학금을 겨우 받아내 간간히 다니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덕택에 돈이 남아돌아 콘서트에 간다던가,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에는 꽤 많은 제약들을 받았다.


기껏 해봐야 앨범 한 장을 한참을 고민한 후에 산다던가, 휴대폰으로 노래를 듣는다던가. 그런 자질구레한 것. 그렇게 실물 한 번 본 적 없던 자신의 우상을, 눈 앞에 대면해놓고 보니 가슴 한 편이 훨씬 더 아파왔다. 지난 번 콘서트 때 올라왔던 사진에 비하면 훨씬 마른 몸.


스케줄이 끝났으니 이쯤되면 살이 조금씩 오를 때도 됐는데, 원초부터 뼈대가 있던 몸이 누가 봐도 말랐다고 생각할만큼 턱선이 드러나 있었다. 이유야 보나마나 뻔했다. 이 정략결혼, 모든 것의 시초가 되는 나 자신. 바싹 타들어가는 목 밖으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첫 대면은 취직한 후에 돈을 많이 벌어 간 콘서트나, 팬 싸인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웃음이 나와야 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윤기씨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지민은 그저 부잣집 둘째 아들, 자신의 인생을 빼앗아간 나쁜 사람.


그 이상, 그 이하의 존재도 아닐테니까. 그렇다고, 그 말이 또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의 인생을 자신이 이 손으로 끝내야 한다는 죄책감과 죄악감, 그리고 밀려오는 슬픔 감정에 잠식되어 있다는 것 뿐이었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양측 모두 계약서와 혼인 신고서에 도장까지 찍어둔 상태였고, 오늘 만난 이유는 사소한 턱시도라던지, 결혼식을 진행할 곳, 그리고 이후에 생활은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할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그에게, 지민은.


나쁜 사람인 것만 같았다.


차라리 이 상황에서 돌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움직이지도 않는 단단한 돌이 되어버려서, 그가 양심의 가책 하나 없이 자신을 뻥 차버렸으면. 저만치로 뻥 차버렸으면...그래서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그런 것들을 바랄 뿐이었다.


주문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양 측은 말 한마디를 할 수 없었다. 이 무거운 침묵을 깨는 것은 둘째치고, 할 말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잘 보여야 하지 않겠냐며 억지로 입혀진 명품 옷의 정신적 무게는 무거웠다. 평소와 달리 누군가가 메만져준 머리도 어색했고.


"...결혼식은."

"......"

"간단히 하고."

"......"

"집은, 뭐. 넓은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


그가 꺼낸 첫마디였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라이브 방송처럼, 가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몇 번이고 찾아봤던 영상 속 그의 목소리처럼 똑닮은 중저음의 안정적인 톤이 귓가로 살며시 스며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의 목소리에 심장이 쿵쿵 뛴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목소리를 듣고서도 설렐만큼 그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인테리어나 기타 취향적인 부분은."

"......"

"각자 알아서 하지? 어차피 각방 쓸텐데."

"......"

"너도 어차피."


이득 보려고 나랑 결혼하는 거잖아. 그래도 견딜만 했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방해하는 거 하나 없이 쥐죽은듯 박혀 살면, 티나지도 않게 박혀 살면 적어도 그에게 속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 순간들 만큼은 견딜만 했다. 그의 입에서 차갑고 차가운 그 한마디가 새어나오기 전까지.


"...네?"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눈빛 하나 변하는 거 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그와 그만 고개를 들다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잡아먹을 것처럼 매서운 눈. 놀라서 꿀꺽 침을 삼키다 그대로 딸꾹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입을 달싹이고서 그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최대한 시선을 피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 지민의 심정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

"내가 나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

"틀린 말 했어?"

"......"

"아니면. 온실 속에서 자라온 왕자님한테 이런 거친 말은 좀 거슬렸나?"

"아...그게..."


공격적인 말투. 누가 봐도 본질적으로 당신을 싫어하고 있다고 티내는 말투. 그의 눈은 이미 사람을 대하려는 눈이 아니었다. 손에 삐질 삐질 땀이 나기 시작했다. 심장 깊숙하게 박혀있던 칼날이 갈려 더 깊숙히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확인 사살을 받는다는 것은,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에게서 행복을 앗아간 만큼 모든 고통을 떠안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거늘. 이상하게 코끝이 찡했다.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억지로 스테이크를 썰어 입안에 욱여넣었다. 씹히는 감각이 생경해서 지금 먹고있는 것이 고기인지, 아니면 내 마음 속에 들어있는 슬픈 감정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미안한데. 넌 잘 모르겠지만, 서정적인 노래만 부르는 발라드 가수가 아니라서 말이야."

"......"

"굳이 말하자면 너같은 애들 까는 노래 쓰는 사람이라서."

"......"

"말이 곱게 안 나가네."

"......"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알아요, 다 알아요. 누구보다 이 세상의 부정적인 것들을 바꾸고 싶어하고, 누구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뻔한 사랑노래보다는 남을 위로해주는 노래를 더 잘 쓴다는 것을 나는,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안돼, 이러면 안돼. 눈을 꾹 감고 심호흡을 해봤지만 심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귓전까지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추가적으로 말하는데. S기업이 날 뭐라고 평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번 일을 계기로 음악계에서 날 추방시킬 생각이라면 관두는 게 좋다고 전해."

"......"

"그럴 일 죽어도 없을 테니까. 난 하고 싶은 음악 할거고, S기업에 목을 멜 일은 없을 거고."

"......"

"내 팬들하고 함께 늙어갈거야."


이상했다. 분명 전부 좋은 말이고, 전부 바라왔던 말이고, 몸소 좋아했던 사람이, 데뷔 이후로 쭉 팬이었던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데. 팬들과 함께 늙어갈 것이라는 소중한 말을 해주는데. 이토록 이질감이 들면서 심장이 저린 것은.


그 사람이 말하는 '팬'이라는 집합체에 더이상 내가 없기 때문일까.


"너를 바라보고,"

"......"

"사랑하게 되는 일은 없을테니까."

"......"

"결혼을 한다고 해도 남같은 일이 계속될거라는 건 너도 알잖아."

"......"

"정략 결혼인데 너도 분명 원하는 삶이 있을거고. 아."


애인도 있나? 그 마지막 한마디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너무 주먹을 꽉 쥐어서 피가 새어나올 것만 같은 꽉 막힌 기분이 들었을 때 더이상 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분 동안, 나온 음식들이 죄다 식어 거무 죽죽하게 변할 때까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결제는 그가 하고 나간 후였고, 덩그러니 홀로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저 자신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메모지에 휘갈긴 번호 하나. 010으로 시작되는 걸로 보아 그의 번호겠지만. 웨이터도 자리를 비켜준다는 명목으로 음식을 서빙해준 채 예약 시간이 끝날 때까지 퇴장해 있겠다고 말했으니.


지민은 지금 철저하게 혼자였다. 혼자라고,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 참아왔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입도 건들지 않은 상대 쪽의 스테이크. 바싹 바싹 목이 타들어가 몇 잔 째 들이켰던 와인잔 속 냉수. 서럽게 울면서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움켜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웃는 얼굴을 내비치고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은 채 욕이라도 들려오면 재치 있게 받아치며 피식 웃던 그의 얼굴과 말투, 표정을 단숨에 역전시켜버린 자신이, 행복을 앗아가버린 자신이.


미웠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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