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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05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나이가 그렇게 어렸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많지도 않은 나이. 부모님과 쌓은 추억이 없어서였을까. 두 분은 항상 바쁘신 분들이었다. 틈만 나면 해외로 출장을 가기 일수였고 홀로 남겨져 놀이터에 가면 또래 아이들은 전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 나뭇가지 하나로 죽죽 낙서를 하기 바빴던 그 어린 시절.


마음은 점점 비뚤어져가고,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이 얼마나 추한 감정인지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었을 때 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꼭, 모래에 낙서를 한 지 한 달이 됐을 때 쯤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눈물 한 방울 안 흘릴만큼 야박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아직까지도 장례식 날 웅크려서 펑펑 울던 것이 기억 한 켠에 남아있었다.


자주 보지도 않았으면서, 정도 안 들었으면서. 이상하게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처럼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나는 맡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들으며 큰 아빠의 집에서 외삼촌 댁으로, 외삼촌 댁에서 할머니 집으로, 할머니 집에서 또 어딘가로. 어딘가로.


그렇게 옮겨지면서 마음을 닫게 되는 것은 일상 다반사였다. 어린 기억 속 시절에는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유독 노래를 쓰면 사랑에 대한 감정을 담기 힘들었다. 사랑을 해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게 힘들었다.


언제가 끊어질 것 같은 얇은 관계 위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적성에 맞지를 않았으니까. 윤기라는 사람은, 줄타기를 하기 보다는 먼저 그 얇은 선을 잘라내는 편에 속했다. 차라리 사람이 오르기 전에 잘라내 버리는 게, 둘 다 다칠 염려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지금껏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 한 번을 못해봤다. 사람 사귀는 게 두려워서. 만남이 있다면 반드시 이별이 있기 마련이고, 이별이 있으면 상처가 남기 마련이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싫었다. 또 알지도 못하는 괴로운 감정으로 눈물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보라색 편지가 소중했다. '달을 닮았다.'라는 말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무슨 심정으로 그 사람이 내게 그런 말을 해주는지도 모르고. 마냥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쌍방향으로 원하지 않는 상태라도 상관 없었다.


꾸준히 그 사람에게서 편지가 도착해 준다면, 도착해 준다면 나는.


"...상관 없는데."


몇 잔 들이키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눈 위로 시큰한 열감이 느껴졌다. 남준에게 쓰디 쓴 잔소리를 몇 번 들으면서 비수가 가슴에 꽂히기를 여러번. 저는 결국 마시지도 못하고 남준의 술값만 죄다 계산한 꼴이 되어버렸다. 위로를 바라고 간 것도 아니었지만, 해결책을 얻어온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상태로 지민의 얼굴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나는 또 마음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알게 모르게, 어쩌면 속으로는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


손에 칼을 품은 채로 서로에게 악수를 청한다는 것. 누군가가 자신으로 인해 아프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가도 이기적인 마음은 다시 새록 새록 마음 안에 다잡혔다. 날씨는 더 쌀쌀맞아졌고, 밤기운은 찼다. 이렇게 늦은 밤이면 무슨 심정에서인지 지민은 꼭 부엌 불을 켜두고서는 그 밑에 앉아 자신을 기다린다고 꾸벅 꾸벅 졸곤 했다.


피곤하면서. 흘긋 훔쳐본 테이블 위에는 잔뜩 놓여있는 레포트 자료들과 숙제들이 놓여 있었다. 꽤나 성실한 모범생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냥 좀 자지. 괜스레 미안하게. 그래도 남준에게 그 아이도 똑같이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들 변하는 감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여전히 자신의 인생을 쫑냈다는 건 사실이었고, 밉다는 감정이 남아있는 것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이었다. 그저 이 쓴 감정을 어딘가에 풀어야 할 대상이 지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생각했다. 평소라면 멀었을 길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도 빠른지.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들어갈까, 싶다가도 이내 집 안에 자욱한 냄새가 나는 것을 꺼릴 것만 같은 둥실한 얼굴이 생각나 미간을 구겼다. 아직까지도 정장 주머니 안에 박혀있는 선명한 담배곽이 걸음을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가슴께를 찔렀지만, 담배를 피우자니 자꾸만 남준의 말이 생각나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괜한 말을 해가지고."


남준은 그 후에도 연달아 지민의 입장을 대변하여 말을 했다.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정작 해결책은 나오지 않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도, 정작 태도를 달리할 수 없는 것은 오래된 습관일까.


훅 끼치는 찬바람에 눈을 잠시나마 질끈 감았다. 따가웠다. 동동 얼어버린 빨간 손가락이 마치 저와 지민의 사이를 대변이라도 하는듯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고보니 지민에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나와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다고 한들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음악이 있는 것처럼 지민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존재할 테니까. 네 삶의 원동력은 뭐야?


혹시 그걸 내가 빼앗아 버린 건 아니지?


어쩌면 그 질문 두 가지가 무서워서 아직까지도 말을 못 붙이고, 정을 못 붙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왕 결혼한 것이니 그래도 잘해주려 노력해보라는 남준의 말과는 달리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을 잘 붙이지도 않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사랑을 넘어선 감정을 가져보라니.


터무니 없는 말이지.


내게는 보라색 편지가 끊긴 것처럼 네게도 뭔가가 끊긴 것이 있을까. 없어진 것이 있을까. 너도, 상처를 받았을까. 그런 내뱉지도 못할 수만가지의 질문들을 집으로 가는 내내 외우고 또 외우던 그는 이내 도착해버린 집 앞에 서서 얌전히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이 시간이면 자고 있겠지, 싶으면서도 정작 마주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각은 이제 막 밤 12시를 가르치는 시점. 평소보다 배는 늦은 시각에 얼떨결에 보니 아무리 몇 잔 안 기울였다 해도 온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듯 싶었고.


혹여, 오해라도 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저 깊숙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직 윤기는 자각하지 못한듯 싶었다. 문을 덜컥 열고 들어간 시점에, 지민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씻고 자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


왜 이럴 때마다 항상 운명의 장난같은 것이 시작되는 건지. 구두를 벗으려고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고개를 드는 순간 저만치 거실에서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던 지민과 그만 두 눈이 마주쳐 버렸다. 마주쳤다기에는 믿기 어려울만큼.


서로의 내면을 마주쳐 버린 것만 같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싶어 입을 꾹 다물다가도 구두를 벗고 태연한 척 들어섰다. 이상하게 평소라면 잘 다녀왔냐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라도 무언가 말을 했을 지민은 이상하게 눈이 마주친 이후 되려 시선을 피하며 뒤로 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덩달아 그런 태도에 잠시나마 미간이 구겨졌던 그는 오늘도 역시나 고운 말이 서로에게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라는 판단을 멋대로 내리고 제 방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너,"


유독 어두운 집안. 불 하나 켜지지 않아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새하얀 달빛만이 다였고,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볼 왜그래."


어느 정도 거리가 단숨에 가까워졌을 때 쯤 지민의 볼이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걸음이 단숨에 우뚝 멈췄다. 결혼식을 할 때 말고도 이렇게 가까워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약 두 발걸음 정도를 사이에 두고 지민의 앞에 선 그는 생각보다 훨씬 여리디 여린 체구에 놀란듯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미간을 잔뜩 구겼다.


볼이 빨갛게 부어오른 채로 꽤나 보기 안 좋은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한 쪽만. 넘어져서 뺨을 다쳤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고. 혼자서 다쳤다는 건 생각 조차 하기 힘들었으니, 나오는 결론은.


"누가 이랬어."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는 결과 밖에 없었다. 그 한마디에 무슨 나쁜 잘못이라도 들킨 아이처럼 새빨갛게 볼이 붉어져버린 지민은 아무 대답 없이 입술만 앙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천성부터 말을 곱게 하는 재주는 없었던 데다가, 원초부터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아무말 없이 윤기의 질문에도 눈만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로 세차게 저어버리는 지민을 바라보다 무의식 적으로 손을 뻗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손이 올라가면서도 저도 모르게 놀라고 있었으니까. 새하얀 손이 볼에 닿기 직전, 지민은 살짝 얼굴을 뒤로 하더니 중얼거리듯 나지막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맞았잖아."


이런 상황에서도 녀석은, 거짓말을 하려고 든다. 내가 나쁜 추궁을 하는 것도, 혼을 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잘못을 저질러서 교무실 앞에 서있는 학생처럼 구는 저 태도에 이상하게 속이 탔다. 누구에게 맞은건지, 오늘 아침만 해도 별 이유나 탈은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얼떨결에 본 문자에 본가로 가겠다는 말을 했었던 것도 같고. 훔쳐본 거라 그걸 들이밀 상황도 안됐지만. 조금 더 가까이 훑어보니 눈이 잔뜩 부어있다.


울었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말이 더 거칠어졌다.


"누구한테 맞았냐니까."

"맞은 거 아니에요..."

"거짓말 하지 말고. 너 지금 볼 부었,"

"안 맞았다니까요!!!"


아.


지민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서는 스스로의 행동에 놀라 입을 틀어 막았다. 내가 방금, 방금 무슨 소리를 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 앞에 놓여있는 것은 조금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윤기와 자신의 볼에 가까이 오려 했다가 멈칫한 새하얗고 핏줄이 선 손.


잠시나마 볼에 닿았다가 떨어질 때의 감촉이 잔뜩 뜨거운 볼 위로 차가워 좋았지만 뒤이어 화를 내버렸다는 사실에 눈에 한가득 눈물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아...그게..."

"......"

"윤기씨가...자꾸...그러니까..."

"......"

"...미, 미안해요...화내서..."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제 앞에서 벌벌 떨며 결국 눈물을 후두둑 쏟아내버리는 지민을 보던 그의 손길이 단숨에 툭 떨어졌다. 순전히 걱정되는 마음에서였다. 누구든지 맞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잔뜩 붉어져서 누가 봐도 아플 것처럼 생긴 그 아이의 볼 위로 눈물이 여러번 떨어졌다 마르기를 반복했다.


어찌나 서러웠던 것인지, 숨까지 헐떡이며 사과를 하는 지민을 보고서는 어째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어이 녀석을 울리고 말았다는 그 생각에, 그 죄책감에. 여기서 어떤 태도를 취했어야 됐었던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속이 뒤섞이는듯한 니글니글한 기분에 주먹만 세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박,"


이름을 부르려던 찰나 그대로 그는 등을 보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탁, 하고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어찌도 고요한 집안에 그리 크게 울리던지. 붙잡으려고 내밀었던 손이 무색할만큼 분위기가 허해졌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울음이 제멋대로 나오는지 참으려고 애쓰는듯한 답답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우는 쪽은 지민이인데, 어째 제 속이 이렇게 뒤틀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항상 그랬다.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 다가서려고 하면 어느 한 사람은 그것을 피해버리고. 마주칠 수 없는 것인지,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어쩌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그 아이에게 있어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닫힌 문 앞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던 지민을 회상했다.



-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속이 진정되지를 않았다. 눈물을 그쳐보려고 애를 쓰고, 애를 써도. 다른 것을 생각하려고 무슨 짓을 해봐도. 통하지를 않았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어폰에 그의 노래를 틀고 이불 속에 웅크려 있으면 괜찮아지곤 했는데 언제나 만병통치약이었던 그의 노래는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약발이 안 듣는 듯 했다.


되려 그의 낮은 중저음이 귀에 박히면 박힐수록 심장이 더 패이는 기분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울지 않겠다고, 그보다 힘들지 않으니까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오늘 하루 아침만에,


고모님을 봰 다음 깨져버렸다.


일의 시초는 이러했다. 조금이라도 그에게 숨통을 열어주고 싶어 본가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소속사의 압박도 그렇고, 결혼한 사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여러 곳에서 그를 옥죄이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오늘만 해도 그랬다. 남은 백숙을 치우고 있는 사이 제법 반갑지 않은 곳에서 문자가 와서 확인을 해보니.


'이번주 토요일 오후 3시. 데이트.'


아니나 다를까. 고모님에게 온 문자였다. 간단하고도 명료한 내용이었지만 실상 담고있는 뜻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3시에 데이트를 하라는 뜻이었으니까. 그것도 대놓고 뻔하게. 맹목적을 말하자면 파파라치에게 찍혀 퍽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연출하라는 말이었다.


정략 결혼이긴 하나, 그 결혼 모습이 부자연 스러워 보이면 안되는 일이었으니 그 정도의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느끼면서도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넘쳐났다. 결혼을 했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그에게 수많은 부담감을 안겨줬을텐데.


열애설이 한번도 터진 적이 없던 데다가 단숨에 이름도 모르는 일반인이랑 결혼을 한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팬들은 결혼을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남겼지만 일각에서는 속도 위반이 아니냐는 말과 그 중에는 아주 소수이지만 정략 결혼이 아니냐, 라는 말들도 섞여 있어서.


아마 여론에 대한 걱정을 한 것이라고 지민은 추측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그랬다. 세상은 잔인하고도 추악한 세상. 자유를 줄 것이라고 달콤한 말로 유혹해 놓고서는 간식 속에 독을 숨겨서 주는 것이 그가 아는 고모님이었다. 지난 26년동안 그 규칙을 한번도 어긴 적 없이 몸에 해로울 것을 알면서도 독을 삼켰는데.


이상했다. 자신에 대한 일이면 꿋꿋하게 참고 넘겼을 것이, 제게 있어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니 어딘가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말이.


'싫어요.'


입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에 대한 응당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지민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반항 했다가는,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아무리 대들어도 그에 대한 영향력은 없을 것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달 떨리는 손을 붙들고 본가를 찾아갔다.


'맞을 것'을 알면서도 찾아갔다. 찾아가서, 평소보다 배는 악을 쓰며 버텼다. 그에게서 자유를 빼앗지 말아달라는 말과 그 의견 조차 무시 당하니 자신이 알아듣기도 힘든 말을 내뱉으며. 쏟아지는 눈물을 가슴 속에서 삭혔다.


"더이상 그 사람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제발, 한번만..."


결과는 보기 좋게 맞는다는 것 뿐이었지만. 곱상한 얼굴과는 달리 구두에 달린 굽이 사정 없이 배를 가격해왔고 손에 낀 반지가 뺨에 맞자 얼얼함을 넘어선 아릿한 통증이 온 전신을 덮쳤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26살이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충격이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고통은 쉴 새 없이 닥쳐오는데. 설득 하나 못했다는 사실이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 무엇보다도 더 서러웠다. 보기 좋게 그에게 도움이 될 수가 없다면, 뒤에서라도 마음껏 받쳐주고 싶었고 지지해주고 싶었는데.


아내로서도, 팬으로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어디에 속해야 하는거야?


알 수 없는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목을 옥죄어 왔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런 모든 것들이 겹쳐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뺨을 보고 걱정해줬을 그의 모습을 보고 화를 냈다는 게 더 싫었다. 스스로가 미웠다. 다시 아픈 감정이 심장으로 밀려 들어왔다.


추가적인 죄 항목이 늘었다.


그에게 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온몸에서는 끓는듯이 열이 오르고, 머리는 핑글 핑글 돌고. 식은 땀은 쉼없이 흐르는데, 그 중에서도 속이 제일 쓰렸다. 울렁 거리다가도 니글 거리고, 헛구역질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토악질은 나오지를 않았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쓰라렸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대고 있었을까. 어딘가 한 편에서 얇은 노랫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아닌, 피아노 소리. 혹여 방에서 음악 작업을 할지도 모른다며 방음벽을 달아놨다고 들었는데. 문을 닫는 것을 깜빡 잊기라도 했는지, 그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분명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멜로디.


이상하게 그의 품에 가서 안기고 싶은듯한 충동을 만들어내는 그런 멜로디. 너무 힘들다고, 나 너무 아프다고. 내 옆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나를 좀,


안아달라고.


하지 못할 말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곪아가는 속에서 맴돌았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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