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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06

'너 오늘 학교 안 와?'

'대리 출석 해둘까?'


아침부터 요란하게도 울리는 문자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다. 여전히 눈가가 따갑고 쓸리듯 아픈 것이, 지난 밤 그대로 울다가 잠든 모양이었다. 가을 기운에 추위까지 많이 타는 성질임에도 불구하고 여름 이불 한 장을 몸에 돌돌 감은 채로 잠이 들었으니, 감기 기운은 더욱이 심해진 것 같아 보였다.


아침 일찍 맞춰두었던 알람을 듣지도 못한 걸 보면 어지간히 아프다는 것을 깨달을 법도 했지만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 다른 것들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내고 휴대폰을 겨우 집어 토독 토독 답장을 눌렀다.


'응 미안 나 아파'


짧고 간결한 문장이었으나, 이 마저도 지민에게 있어서는 큰 발전이었다. 아프다는 것을 티내기 시작하면 마치 적자 생존이라도 하듯 눈칫밥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누군가에게 몸이 불편하다는 걸 티내는 것은 그에게 있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문자를 보내두고 혼자서 애를 태웠던 태형은 아프다는 친구의 문자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을 뿐이었다. 녀석이 웬일일까, 싶다가도 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닐지 휘몰아치는 걱정이 머릿속을 메웠다. 연락을 해보자니 아픈데 방해가 될 것 같고. 생각해보니 이사 간 집 주소를 물어보지도 않아서 병문안을 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아이씨..."


솔직히 말하면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해도 지민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될지 잘 모른다는 말이 옳았다. 짜증나는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도 그저 남편이라는 작자가 간호라도 제대로 해주길 바라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강의실로 옮겼다.


그 시각 지민은, 어젯밤 제대로 씻지도 않고 잔 탓에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온 몸과 더우면서도 추운 기운에 으슬으슬 떨고있을 뿐이었다.


"으으..."


추워. 달달 떨다가도 엣취, 하고 작은 재채기를 반복하고. 와중에도 든 걱정은 그가 끼니를 제대로 채우고 나갔을까 하는 것 뿐이었다. 의자 위에 걸쳐둔 얇은 가디건을 몸에 걸치고 코까지 훌쩍거리며 문을 조심스레 열자 다행히 그는 이미 출근한 뒤인지 현관에 놓여있었던 구두가 없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일 때문에 서로 보기 껄끄러운 것도 있고, 자칫 했다가는 감기가 옮을 수도 있으니까. 병원에 어서 가봐야 할텐데.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지갑을 꺼내 주섬주섬 뒤지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내렸다.


"아...맞다...나 돈..."


결혼식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번 달 아르바이트를 못 가는 바람에 잘리는 것은 물론이고, 월급까지 못 받아 지민은 현재 철저하게 땡전 한 푼 없는 상태였다. 미리 대비를 해둔다는 것이 정신이 없어 그대로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가뜩이나 머리가 아픈데, 금전적인 문제까지 겹치자 머리가 어질거렸다. 깊게 한숨을 내쉬자 입 안에서는 더운 공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일단 씻기라도 씻어야 할 것 같아 비틀비틀 걸으며 화장실로 향하는 내내 속이 복잡했다. 뭐라도 더 사과를 해야하나, 싶은.


밥이라도 먹었나 싶어 부엌 쪽을 흘긋 보니 이제 막 세제가 닿아 깨끗하게 씻겨진 채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냄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라면 봉지.


"...건강에 안 좋은데."


투덜투덜 거리며 와중에도 그를 걱정하는 모습을 내비추자 스스로도 논란 기색이 역력했다. 차라리 일찍 일어나기라도 해서 밥이라도 차려줄 걸. 냉장고에 백숙 남은 거 넣어뒀는데...


손에서는 식은땀이 자꾸만 나서 화장실 문을 여는데도 여러번 헛손질을 하고서야 겨우 열 수 있었다. 결혼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칫솔부터 시작해 모든 것들이 쌍으로 있는데. 왜 자꾸만 겉돌게 되는 것인지. 망설이다가 자신의 칫솔을 집어든 채 치약을 꾹 눌러짰다.


치약 담당은 그라서, 이번에는 민트향 치약을 쓰게 됐는데. 평소에 쓰던 향수와는 무언가가 미묘하게 다른 것 같아 입에 넣고 한참을 굴리면서 두 눈을 감았다. 열이 오른 입 안에 퍼지는 알싸한 민트향.


그의 입에서도 같은 냄새가 날까?



-



샤워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그저, 눌러붙었던 식은땀이 조금이나마 식었다는 점과 찝찝했던 기운이 날아갔다는 것 뿐. 그 마저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시 땀이 나면서 사라져 버렸지만. 밥이라도 먹어야 힘이 나겠다, 싶었지만 음식을 차릴 기운도 없거니와 구미도 당기지 않아 부엌 앞에서만 몇 분을 버렸다.


터덜터덜 걸어 들어와 잠이라도 조금 더 자고, 나중에 저녁에 상태가 괜찮아지면 백숙이라도 데워놔야겠다 싶은 생각이 뇌리에 스칠 때 탁자 위에 놔뒀던 휴대폰에서 제법 경쾌한 알람소리가 울렸다. 방에 들어가다 말고 우뚝 멈춰서서 알람을 확인해보니,


'[S라이브]민윤기님이 라이브를 시작하셨습니다.'


라는 제법 당돌한 문구가 액정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와 동시에 라이브를 켰다고 신나서 뜨는 다른 SNS의 알람들. 평소라면 뜨자마자 방방 뛰며 들어갔겠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묘하게 상황이 달랐다. 봐도 되는건가, 싶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으니까.


보면 꼭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결혼 후에 처음으로 켜는 라이브이다 보니 역대급으로 팬 유입이 많을 것이고, 또한 어제 일도 있어서 과연 그가 라이브를 켜서 무슨 말을 할 지 조금은 두려워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한 구석에는 팬의 마음과, 죄를 지은 죄인의 마음이 공존하여 껄끄럽지 못한 심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최근 들어 아마 그와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건 아마 자신이겠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일 것이 뻔한데. 그래서 더 보고 싶었고, 더 그리웠다. 가장 마주치는 시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가장 적은 시간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눈을 마주쳤다가는, 모든 걸 간파해서 말해버릴 것만 같은 그 깊은 눈동자에.


꼭 매료될 것만 같았다.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이끌고 그 알람이 '3분 전'이라고 변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지민은 침대 위에 드러눕고서는 한참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 기어이 그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꾹 누르자마자 곧장 뜨는 앱 화면에서는 아마도 작업실인지 비니를 쓴 채로 턱을 괴고 피실 웃고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이러면 안된다는 거 아는데, 이러면 안된다는 거 나도 정말 잘 아는데...


"아..."


진짜 잘생겼다. 가뜩이나 열 때문에 푹 익어버린 얼굴은 무의식 중에 액정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는 생각에 더욱이 붉어져 버렸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를 어찌하여도 없앨 수 없는 것은 누군가에 대한 호감은 쉽사리 지울 수 없기에, 누군가에 대해 열정적으로 갖는 마음은 쉽사리 분리되지 않아서 였을까.


여전히 지민의 마음 속에는.


팬으로서의 환호가 가득했다.


-오랜만이다, 그죠.


스피커에서는 퍽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 한마디에 보고 싶었다는 말로 도배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있던 지민은 제법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괜히 침대 시트를 부여잡을 뿐이었다. 나도, 한 달 전만 해도 저렇게 댓글 달고 있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했다. 노래를 작업하고 있다는 것과 작업실이 더 넓어졌다는 이야기. 얼마 전 남준과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 또,


결혼에 관한 이야기.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말할 수 밖에 없는 토론거리였다. 팬들이 무작정 그에게 연애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대부분이 그의 결혼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으나. 무시를 하고 싶어도 켜놓은 댓글창은 전부 결혼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되어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 분 어때요?'


'둘이 어떻게 만났어요?'


'연하예요?'


신경 안 쓰는듯 흘긋 보며 애써 웃다가도 차마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이 딱. 정말 딱 하나 존재했다.


'오빠 행복해요?'


순식간에 파스슥 표정이 굳을 법한 것을 겨우겨우 입꼬리를 올렸다. 눈치를 챌 순간도 없이 순식간에 내려갔던 것이라 알아 챈 사람도 없었지만. 비문 그 질문을 본 게 윤기만은 아니었다. 오로지 '결혼'에 관련된 댓글들이 달리는 것을 보고 조바심이 난 것은 되려 지민 쪽이었다.


이 모든 사태가 자신인 것만 같았기에. 새로운 노래를 낸다는 소식까지 밝혔는데도 오로지 그의 결혼에만 관심이 가있는 팬들이 조금 미웠다. 다른 거, 다른 것도 좀 물어봐 주지. 어떻게 보면 조금은 두려웠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의 입에서 직접 결혼에 대한 언급을 듣자니, 그도 거북해서.


윤기는 그 질문을 보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이내 제법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행복해요."


그 말 한마디를 듣자마자 지민은 홈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는 순간이었다. 머릿 속이 온통 무언가로 뒤틀리는 기분, 누군가가 헤집어 놓는 기분. 홈버튼을 누르고, 라이브가 꺼진 이후에도 한참동안 남는 그의 다정한 한 마디.


'행복해요.'


참 잔인한 말이었다.


"우욱,"


헛구역질이 나왔다. 먹은 것도 없는데 그랬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허겁지겁 화장실로 달려갔다. 역시나 변기를 붙잡고 얼굴을 묻었으나 토악질은 나오지를 않았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욱, 우욱, 하는 소리를 내며 변기를 붙잡고 있다가 잠시 잠잠해진 지민의 두 눈에서는 한 두 방울씩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알고 있었다. 그가 연기에도 능하다는 것 쯤은. 모든 분야에 완벽하지만, 행복한 연기는 누구보다 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조금은 했었다. 결혼식 때만 해도 그랬고, 기자 회견을 했을 때도 그랬고, 그러나 이번 경우만큼은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는 방금 팬들에게,


아주 큰 거짓말을 했다.


그 생각이 들자 멈췄던 헛구역질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지탱할 힘도 없는데 더 그랬다. 휘청거리는 몸, 어지러운 머리, 울렁거리는 속. 하나같이 제대로 된 것 없이 망가진 상태였다. 어디까지 가더라도 팬들에게만큼은 거짓말 하지 않겠다고, 속이지 않겠다고 웃으며 약속했던 것이 저번 콘서트의 멘트였다.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그 말이 슬로건이 될 때도 있었고, 그 말이 누군가의 프로필을 장식한 적도 다반사였다. 신뢰하면 민윤기. 민윤기하면 신뢰. 악플에는 좋은 노래로 대답하며 속상하다는 팬이 있으면 꿋꿋하게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해도 가만히 있던 사람이 팬들 욕만 들으면 미간을 잔뜩 구기는.


민윤기는 그런 나름의 '정직한' 사람이었다.


팬들에게는 더더욱.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다른 어떤 가수와도 차별화되게 그들의 팬과의 상호 관계성을 중요시 여기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그에게 끌렸을지도. 내가 지난 세월동안 쉼 없이 보낸 그 '보라색 편지'를 어쩌면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터무니 없는 발상 때문에.


"진짜..."


진짜 싫어. 혼잣말이 터져나왔다. 제법 서러운 혼잣말. 누군가가 들어도 상관 없을 만큼 처절한 혼잣말.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 방울들을 겨우겨우 닦아내며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싫다.'라는 형용사였다. 모든 것이 싫었다. 그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된 명분을 만든 고모님도.


결혼식날 거짓 웃음을 지으며 기자들을 향해 웃음을 지어준 그도.


방금까지 하나도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하다.'라고 팬들에게 거짓말을 한 그도.


그에게 그런 크나큰 거짓말을 하게 만든 자신도.


모두 싫어졌다.



-



"...괜히 말했나."


사람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른 다음 후회를 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어느 정도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작업실 문을 잠궜다. 오늘도 역시나, 음악 작업은 제대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젯밤 울고있던 지민의 얼굴과 남준이 했던 말들이 전부 겹쳐져서.


도무지 창의성이 발휘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독한 냄새를 내뿜는 담배 대신 뭐로라도 견뎌 보겠다며 입에 문 츄파츕스에서 달디 단 맛이 났다. 단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입에 뭐라도 물고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만 같아 그랬다.


담배 필터라도 씹듯이 배는 더 단단한 플라스틱 막대를 잘근잘근 씹으며 집에 가는 동안, 짧막하면서도 긴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관통했다. 지금 가면 그 아이가 깨어 있을까, 부터 시작해서 아직도 뺨이 많이 아플텐데 연고는 안 발라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


"...화내게 만들었는데."


허, 생각해보니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렇게 얌전하던 아이를 울리고 되려 화까지 내게 만든 장본인이 걱정까지 하기에는 팔자가 너무 좋은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다시 골똘히 머리를 굴려보니 그랬다. 뺨을 맞은 이유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다가섰던 것은 순전히 제 잘못이 맞았다.


"...하여튼 말 곱게 못하지."


말투가 거칠었던 것도 잘못이었다면 잘못이었고. 그렇게 가만히 생각을 하다 골목길에서 우뚝, 걸음을 멈췄다.


"아이씨..."


그러다가 괜히 미간을 구기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잘못이었다면 잘못이라니, 그냥 순전히 잘못인거지. 이상하게 곡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집착하면서 순전히 평범한 것에는 이토록 관심이 없었다. 단점이라면 단점이고, 장점이라면 장점인 이 부분.


어쨌든 가서 사과라도 해야겠거니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남준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고. 저와 똑같이 인생을 S그룹에 빼앗겼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으니까. 자신이 결혼으로 인해 음악으로서의 발판의 길을 잃었다면.


지민은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 전부를 잃었다는 가정이 성립되었다.


"아, 담배."


겁나게 땡기네. 와그작, 하고 입 안에 있던 라임맛 츄파츕스를 깨물자 잔 조각들이 혀 끝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사탕이었는데. 집이 다 와가서 그런가. 되려 과감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릿속으로는 이렇게나 고민하고 있으면서 도어락을 여는 손은 왜 그리도 간단히 행동하는지. 본인의 손이면서도 알 수 없을 노릇이었다. 애써 구겨진 미간을 펴려고 노력하며 다른 한 손에는 다 먹은 사탕 막대를 들고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보니 문은 어느 틈에 열려있었다.


지민을 찾아야만 했다. 찾아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박지ㅁ..."


아.


사람은 잘못을 저지른 다음에 후회를 한다는 그 말. 이런 데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나.


구두를 벗으려는 순간, 눈 앞에 닥친 것은 물을 따르다 말고 힘없이 옆으로 기우뚱하는 피사체. 어젯밤에 볼 때도 볼 말고도 묘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한없이 마른 몸. 결혼식 때보다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몸.


"박지민!!!"


바보.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어디있어. 무릇 사람은 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간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그는 실감했다. 픽 쓰러지는 몸을 전속력으로 달려가다시피 해서 겨우겨우 품으로 받자마자 무언가에 부딪혔다는 인식 때문인지 잠시나마 정신을 잃었던 지민은 두 눈을 활짝 떴다.


두터운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음에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몸은 온통 불덩이었다. 그것도, 아주 뜨거운 불덩이.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주위를 살펴보자 놓여있는 것은 따르다 만 물 한 잔과, 그대로 그가 넘어지는 바람에 엎어진 물병.


그리고,


"......"


아침에 설거지를 한 이후로 단 하나도 바뀌지 않은 싱크대의 그릇 위치. 그 모든 것들이 말해주는 결론은 하나였다. 밥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는 것과, 물 한 잔을 겨우 마시려 했지만 못 마셨다는 것. 안겨있는 와중에도 여러 군데가 아픈지 끙끙대는 모습이 퍽 어딘가 모르게 동정심을 유발했다.


정신이 잘 들지 않는 모양인데도 불구하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황급히 윤기의 품에서 떨어진 지민은 일어서려다가도 다시 힘이 빠지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야."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윤기의 몫. 오들오들 떨고있는 입술은 이미 새파랗게 질린지 오래였다. 어제 홧하게 부풀었던 뺨은 전혀 가라앉을 기새 없이 여전히 상처 자국을 달고 있었고, 붉게 상기된 볼은 간밤부터 아팠다는 사실을 상기라도 시키듯 점점 열기운을 내고 있었다.


"약은."

"......"

"약은 먹었냐고 묻잖아."

"...아직."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대답에 알 수 없는 짜증이 치솟았다가도 이내 푹 가라앉았다. 아, 나 이러려고 온 거 아닌데. 구겨진 미간을 애써 펴며 일단 눕혀야 겠다 싶은 생각에 다시금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대자마자 지민은 황급히 그 손을 피해 더 멀찍하게 달아났다.


"......"


그러고 나서도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움찔하고 잠시나마 윤기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는 인식을 받았으나. 그는 포기 하지 않고 다시금 한 발자국 더 다가가 억지로라도 지민의 팔을 잡아 끌었다.


"이리와. 너 지금 누워야돼."

"...시, 싫...!"

"누워야 된다고. 열도 나는 애가."


이렇게 힘이 셌던가?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만큼 연달아 다가오는 팔을 밀쳐내고 뿌리치는 힘에 어느 정도 새된 그의 인내심도 한계를 보이고 있을 때 쯤이었다.


"침대까지만 부축해줄게. 너 지금 아프잖아."

"싫어요...!"

"고집 좀 그만 부려!!!"


옥신각신 여러 말이 오가던 찰나 결국 화가 끝까지 나버린 그는 지민을 제 쪽으로 세게 끌어당기며 소리치고 말았다. 그 목소리에 놀랐는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멈칫하고 입을 꾹 다물어버린 지민과 그만 눈이 허공에서 시선이 얽혔다.


또 저질러 버렸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못하고 타들어가는 목만 축이고 있는데. 이내 자신을 바라보던 그 투명한 눈동자에 그득 그득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


"......"

"끅..."

"...아."

"끄흑..."

"...박지민."

"으흑...끕..."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뚝 뚝 양 볼을 따라서 그의 가디건을 잡고있는 윤기의 손까지 한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이 애처로웠다. 젠장. 이러려고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었는데. 뭐라도 말을 해야 한다 싶은 생각에 우는 얼굴을 보고 한참을 굳어 있는데,


"미, 미안해요."

"......"

"끄흑, 미, 미안해요...윤기씨...정말...진짜..."

"......"

"미안해요...미안, 끅...미안해요..."


서럽게 펑펑 우는 지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훨씬 예상을 뛰어 넘는 말이었다. 서럽게 울면서도 눈물이 입안에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지민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그는 그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미안해요...진짜...끅...행복하게, 윤기씨만큼은, 끅...행복하게 해주고 싶었, 는데..."


아.


'형 혼자만 상처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이제서야 남준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온전하게 각인되었다.


'그 아이는 아직 형보다 훨씬 작고, 훨신 어린 아이니까.'


제 앞에서 연달아 인생을 망쳐서 미안하다는 말과 눈에 띄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른 채 연신 눈물만 흘리는 지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문득 속이 아렸다. 아팠다. 너무 깊게 아파서, 어쩌면 충동적으로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느낄만큼.


그저 그 아이는 자신보다 4살 어린 한낱 아이에 불과하다고.


새까맣게 타들어갔던 삭이 보름달을 향해 차오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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