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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셰프! 01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은 누군들 없을까. 유명인부터 시작해서 저만치 공부하고 있는 흔한 수험생들까지.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 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비밀 한 가지 쯤, 특별할 것 하나 없었지만 적어도 지민에게는 떼어놓고 싶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귀신이 보이니까."


귀신이 보이는 게 뭐, 대수인가. 그렇게 덤덤하게 말하면 말할수록 근처에 귀신들은 더욱이 꼬였다. 왜 그런지 모를 팔자였다. 적어도 부모님만이 알고있는 고독한 비밀이었으니까. 자세히 알 턱이 없으나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무당이셨다고 들었다. 돌아가셨으니 자세한 사항을 물을수도 없고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아 하셨던 부모님께서도 그 분이 무당이라는 사실 외에는 딱히 아는 것이 없는 듯 했다.


하필이면, 하고 많은 것 중에 귀신이 보일까. 귀신이 보인다면 귀신을 처리할 힘도 같이 주시지. 만화나 영화에서 보면 멋지게 퇴치하던데. 적어도 내겐 그런 힘이 없었다. 갖고 있어봤자 쓸모없다고 생각되지만. 귀신이 보인다고 해서 좋을 점이 하나 없다는 건 삶을 살아온 연대기를 보면 잘 알 수 있었다.


친구없던 학교 생활. 무서운 아이라고 불렸던 학교 생활. 이미 익숙해질 법도 한데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불쾌해.'라고 쳐다보는 시선이 따가웠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불쾌하다'라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반대 입장이 되더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 명백했다. 삶을 살기가 문득 싫어졌다.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도 못했고.


그러던 와중 우연찮게 틀었던 텔레비전 브라운관 속 프로그램이 인생을 한번에 역전시킬 줄 누가 알았을까.


그 날도 어김없이 귀찮은듯 소파에 눌러앉아 리모콘을 이리저리 누르고 있던 찰나였다. 요새 셰프들이 차고도 또 차고 넘치는데 지치지도 않는지 온갖 요리 프로그램들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봤자, 다 똑같은 사람들. 예능에 나와서 돈줄 좀 잡아보자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


굳이 연관 짓고 싶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방송국에서 일하는 터라, 그런 경우는 자주 봤다. 집에 들어와 아침보다 훨씬 무거워진 얼굴 위 화장을 깨끗한 솜으로 밀어내고 나면 한숨과 함께 엄마는 내게 자주 토로하곤 했다.


"요새 보면 요리사가 아니라 방송하러 나온 것 같은 사람들만 가득이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굳이 그들은 요리사라고 자부심있게 주장할 만큼 요리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우스웠다. 그렇게까지 돈이 벌고 싶나. 물론 벌고 싶겠지만, 대체 그럴 거면 요리를 왜 시작한 건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그를 만났다.


'예, 세계 퓨전 요리 경연대회 최연소 대상을 탄 민윤기 셰프 만나보겠습니다.'


벌컥 눈이 뒤집혔다. 그가 잘생겨서도, 최연소라서도, 셰프라서도 아니었다. 카메라를 명백히 거부하고 있었다.


'인터뷰 안해요.'


단호하게 말을 하고 카메라를 밀어낸 후에 자기 할 일대로 칼질을 하는 모습에 잠시나마 멍 때렸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멋있었다. 카메라를 밀어낸 것부터 집중해서 요리할 때 미간을 구기는 버릇이라던지. 단정하게 입은 검은 조리복이라던지. 이런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때부터 그에게 이끌리다시피 모든 잡지와 그의 레스토랑에 관한 정보들을 싸그리 모았다.


민윤기.

이름 울림성도 마음에 들었다.


*


"야 박지민. 뭐하냐, 설거지 다 끝내 놓으라니까."


그로부터 어언 10년.


"앗, 네네! 선배님! 지금 다 끝내가요!"

"플레이팅 조금 있다가 해야 한다고. 한번에 못 알아먹어?"

"죄송합니다..."


내 인생에 달라진 점은 그다지 없었다. 여전히 귀신이 보이고, 여전히 소심했으며, 여전히 사회생활에 힘이 들었고, 여전히 불쾌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고. 한 가지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라고 손꼽자면.


"자꾸 막내 갈궈라?"

"아, 아닙니다! 셰프! 저희는 그게..."

"갈구는 건 셰프 일이지, 요리에 '요'자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뭘 가르치겠다고 들어? 군기가 빠져가지고."


10년 전 동경했던 '민윤기'라는 셰프의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는 일이었다.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만큼 그의 레스토랑에 들어오기까지는 상당한 과정들이 있었다. 17년동안 칼질 한 번 안 해본 고등학생이 요리를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사람들은 알까. 하마터면 엄마 몰래 주방에 기어 들어갔다가 손가락이 잘린 채 밖으로 뛰쳐나올 뻔 했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없었지만. 그렇게 고생을 해가면서 들어온 주방인데. 주방인데, 그래. 주방인 것 까지는 좋았다. 속으로 남몰래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던 셰프와 함께하는 시간이 생기고,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도 좋았다. 하지만 견습 요리사가 되었다는 사실과는 정반대로 달라진 거 하나 없는 암울한 성격에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다.


"박지민, 네 선배들 입에서 너 못한다는 소리, 그것 좀 안 나오게 할 수는 없냐?"

"죄송합니다, 셰프..."

"또, 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에 그렇게도 화가 나는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됐다는 말과 함께 한숨을 깊게 내쉬고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셰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난 대체 왜 이럴까. 왜 하나를 시작해도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그런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것도 아니었고 원래부터 눈물이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눈물이 나는 모습조차 보기 싫었다. 또 우냐는 말이 듣기 싫어 걸음은 이미 사람들이 잘 오지도 않는 창고로 향하고 있었다.


"셰프는...끕...맨날...나한테만 그래...내,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굳이 그렇게...끕..."


자존심을 긁지 않아도 되잖아. 난 셰프를 좋아하는데. 이미 한참 붉어진 눈을 잔뜩 비비고 있자니 눈이 아렸다. 아려도 한참을 아렸다. 그래서일까. 뒤에서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기운도 느끼지를 못했다. 어두 컴컴한 창고에 있으면 꼭 귀신이 나올 것 같아 처음에는 노심초사 했지만,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민을 안도하게 만든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지민의 생각을 짓밟기라도 하듯, 뒤에서 흥미롭다는 듯 웃고 있던 귀신은 단숨에 그의 몸으로 쑥 들어갔다.


하필이면 한도 많다는,

처녀귀신이었다.


*


귀신이 몸에 들어갔다 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지금 이 몸의 상태는 어떤가, 하고 살펴보는 것이었다. 조리복을 보아하니 요리사인가? 그렇게 짐작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연신 핑그르르 한바퀴 돌아본다.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스스로도 괜찮은 몸을 고른 것 같다는 느낌에 만족을 하면서도 불만감이 속에서 솟구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얘는 몸매도 좋으면서 왜 이렇게 큰 옷을 입는데?"


짜증나.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미 신경을 꺼둔지 오래인 것 같았다. 윗옷을 훌렁훌렁 벗고 뽀얀 살이 드러나자 그저 마른 몸매가 아니라 조금은 잔근육이 잡힌 탄탄하고 마른 몸매라는 걸 깨닫고 나서는 가뜩이나 야해 보이는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뭐야, 좋잖아."


남자 꼬시기 딱이네. 그 시각, 속 안에 든 박지민. 난리도 아니었다. 갑자기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몸 하며. 단정했던 앞머리를 가르마 타는 것까지.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하나. 호, 혹시 지금 내 몸에 귀신 들린거야?


정답.


내적으로 소리를 질러봤자 소용 없었다. 밖에는 들릴 일이 없었고 듣는다고 해도 해줄 수 있는 수단도 없으니까. 그 소리를 듣는 건 오로지 귀신,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사람이라기도 민망하지만. 잠자코 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하던 찰나에


'뭐, 뭐, 뭐하는 거야!!!'


얼굴이 새빨개져 그대로 손바닥 두 개로 얼굴을 퍽 가로덮었다. 보고싶지 않았다. 대체 이 귀신은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남이 올지도 모르는 창고 안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있는 꼴을 보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귀신 빙의가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나. 단언코 말하자면 그러하였다.


제발, 이 상태로 주방만 가지 말아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안 받고 싶단 말이야. 제발, 특히 셰프한테는. 외치다시피 크게 말했는데 역시 귀신에게만 들리는듯 했다. 더 약오르는 건 그걸 듣고도 작은 조리복을 찾아 몸에 맞춰 입고서는 신이 나서 주방으로 찾아가는 나쁜 귀신이 몸에 깃들었단 사실이었다.


아아악, 쓰지도 않는 욕을 내뱉어봐도 분노는 풀리지 않고. 결국 귀신이 얌전히 주방에서 있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근데, 작은 조리복을 맞춰입는 것부터 뭔가 예사롭지가 않다는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한숨을 깊게 쉬고 서있어봤자 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저 영화관 화면처럼 눈 앞의 광경이 재생되는 허무한 공간에 주저앉았다.


지켜봐야겠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그 와중에도 하나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이상한 행동을 귀신이 한다고 해도 이 쪽에서는 말릴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와, 미친. 여기 남자들은 요리를 하러 온거야, 아님 얼굴 자랑하러 온거야?"


그 말은 즉슨, 주방이 마음에 든단 뜻이었다. 안돼, 그러지 마. 어서 내 몸에서 나가란 말이야. 근데 다시금 그 말을 곱씹어 보니, 상황이 이상하다? 여기 남자들? 설마...


'너 처녀귀신이야?'


빙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망했다. 아니, 좆됐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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