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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셰프! 02

"윤기야, 오늘 엄마 좀 늦을 것 같아. 밥 먹고 먼저 자."


형식적인 인사. 형식적인 말투. 네, 어머니. 착한 아이인 척 대답을 하고 나면 집안은 온통 암흑이 되어갔다. 넓은 집에 혼자 앉아서 숙제랄 것도 없는 교과서를 펴고 어린 나이에 가만히 앉아있자면 폐로 들어오는 공기가 스산하게도 차가워서 스스로도 몸서리치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분 다 의사이셨다. 아침 일찍 병원에 출근해 새벽에 들어오시느라 얼굴을 본 적은 셀 만큼. 그 덕에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이라고 해봤자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에 다 함께 아쿠아리움을 갔던 기억 밖에 없다.


그래서 상어가 싫었다. 그래서 돌고래가 싫었다. 그래서 수달이 싫었다. 역겨웠다. 웃으면서 보고있자면 그 때는 마냥 행복한 아이가 된 것만 같아 스스로가 미워졌다. 화를 내서 외롭다는 감정을 승화시키려 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속박시켜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혼자 밥먹는 게 미치도록 싫었다.


익숙하게 부엌으로 걸음을 향해 서랍을 열면 한 가득 쌓인 라면들. 그런 라면들을 입 안에 꾸역꾸역 집어넣고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맛있다'는 말을 연신 고백했다. 나도 평범한 집처럼 엄마랑 아빠가 해준 밥이 먹고 싶어요. 함께 앉아서 식사도 하고, 그러고 싶어요.


이런 말을 했다가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다 큰 아이가 어리광을 부린다고?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말라?고? 널 괜히 낳았다고? 그런 생각이 머리 끝까지 치달아 있을 때면 심장이 쿵쿵 뛰었다. 호흡하기가 힘들어졌다. 괜스레 숨 쉬는 것을 의식하게 됐다.


어머니는 날 낳은 걸 후회한다고 했다. 죽도록 후회한다고 했다. 쓸모없는 존재라고 직접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었지만, 우연찮게 학교가 일찍 마쳐 집에 들어온 날.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던 그 소리들을 나는 들었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시덥지 않은 내용들, 그 내용이 이상하게 가슴을 후벼팠다. 그럼, 그럼 윤기를 낳은 것도 후회해, 당신은? 악을 쓰며 달려드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딸칵 딸칵 귀에 거슬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뒤에 들려오는 당연하다는 말은 더 거슬렸다.


둘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둘 다 똑같이 나를 쓸모없게 여겼다. 나는 그저 밥값을 뜯어가는 존재일 뿐,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는 결코 될 수 없고 그것을 바라서는 절대 안 되는 존재. 그래서 밥이 항상 라면이라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독립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 부모라도 옆에 없는 건 적잖게 외로우니까. 싫으니까. 혼자가 되긴 이보다 더 싫으니까. 그럼에도 앞에 서서는 언제나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었다거나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들이 보기 싫어졌다. 그런 감정이 스멀스멀 속에서 자라날 때는 라면을 두 개씩 끓였다.


컵라면 하나를 먹다가 배고프면 이번에는 끓인 라면을 먹었다. 입이 짰다. 죽도록 짰다. 물을 찾았다. 물츨 찾다가 컵을 깼다. 무서웠다. 혼날까봐.


그래서 생각했다.


요리를 해보자고.



*



"3번 테이블, 아직 서빙 안 끝났어?"


예, 셰프! 지금 갑니다. 그렇게 대답을 크게 해놓고서는 다시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녀석들. 미간이 구겨질대로 잔뜩 구겨졌는데도 개의치 않는 건지 본인의 후라이팬 속 파스타들만 머릿속에 한가득이다.


"셰프, 제가 할게요!"


이걸 가서 말해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 정도 간단한 일은 내가 해야하는 건지. 그렇게 한참 고민으로 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쯤 제법 고민하다가 말한 티가 잔뜩 나는 주눅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 녀석이다.


"박지민 너한테는 설거지 하라고 해뒀을텐데? 벌써 다 끝냈어?"


설거지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자 나름 그건 또 싫은지 입이 금방 삐죽 튀어나왔다가 금세 들어간다. 도대체 무엇에 그렇게 겁을 먹었는지 도통 대들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게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가끔가다 보면 지나치게 소심한 태도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이...셰프, 제가 서빙 할게요..."


말끝을 괜스레 늘이면서 시선을 피해 자신의 구두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지민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태도로 홀에 내보냈다가는 서빙하는 접시 또 날려먹고 올텐데 뭘 바라냐. 그 말을 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아직 지민은 서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설거지나 해라."


밀다시피 어깨를 툭 치고 주방을 나왔다. 더 있다간 침울한 눈을 보고 있자면 마음에 담기지도 않은 냉혈한 말을 내뱉을 것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지민은 처음 채용서를 들고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사진과 같은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푹 숙인 얼굴과 유난히 겁에 질려보이는 얼굴에 이상하게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자리에서 콜, 을 외쳐버렸지만.


실수였던 걸까. 6개월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설거지 담당이었다. 나이도 어린 편이었고, 요리에 대한 기초 지식이 많지 않아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게다가 가르쳐 주려고 해도 피하는 기술이 보통 사람이 아닌지라 더더욱 힘들었다. 그렇게 거부한다면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을 것만 같았다.


사람이 소심해지거나, 대담해지거나. 그런 행동에는 필히 사연이나 이유가 있다고들 하는데 지민의 그런 사연을 알아줄 수도 없고, 알아줄 필요도 없으며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저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였으니까. 다만, 신경쓰이는 건 원하지도 않는데 어느새 눈 끝이 지민을 쫓고있다는 것이었다.


그릇을 깨는지, 미끄러지지는 않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선배들에게 갈굼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기하게도 그런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이 민윤기가. 대체 왜? 알고 싶어서 스스로 질문한 적도 여러번이었지만 알 턱이 없었다. 신경을 안 쓰고 있는 찰나에 이미 눈은 가 있는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복잡한 걸 신경쓰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귀찮았다. 굳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나이도 어린 게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았나 보지. 지금은 그렇게 합리화 하고 있었다. 이번 달 월급을 올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올려줄 때는 된 것 같은데 정작 하는 일이 달라진 건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올려주자니 녀석 성격을 보아하니 당장 내리라고 조심스레 말을 걸어올 것 같으니. 아니, 그래주면 오히려 이 쪽에서는 땡큐인가. 한 번이라도 좋으니 녀석이 마음대로 짜증도 내고, 화도 냈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 과거의 아무 말도 못하고 라면만 주구장창 먹던 나와 닮아서일까. 정이 갔다.


"야 박지민. 뭐하냐, 설거지 다 끝내 놓으라니까."


아. 왠지 조용하다 싶더라니. 자기도 모르게 잔뜩 구겨지는 미간을 애써 검지로 꾹꾹 눌러 폈다. 밑에 애들도 이제 제법 컸겠다, 주방은 맡겨도 되겠구나 하고 잠시라도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곧잘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다 들리는 줄도 모르고 녀석들, 막내를 신나게도 갈구고 있었다.


설거지를 끝내놓으라고는 분명 말했다. 하지만 그 분량만 끝내라고 했지, 내가 언제 네놈들의 분량까지 다 챙기라고 했냐.


"앗, 네네! 선배님! 지금 다 끝내가요!"


더 짜증나는 건 알겠다는 듯 흔쾌히 대답하는 박지민 쪽이었다. 오더를 내리는 건 오너셰프인 나면 다 된거지 대체 윗선배들 말은 왜 듣는 건데? 그리고 다 끝내가? 장난해? 그 많은 양을 언제 혼자 다 끝내겠다고. 가끔가다 보면 못할 걸 알면서도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게 무모하다고 해야할지, 바보같다고 해야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었다.


"플레이팅 조금 있다가 해야 한다고. 한번에 못 알아먹어?"

"죄송합니다..."


주방 근처로 가니 아직 화가 잔뜩 나 팔짱까지 끼고 등장한 이 쪽을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얼씨구, 선배 폼은 다 잡아놓고 이젠 아주 군기까지 잡는다. 미칠 노릇이었다. 적당히 해가면 봐주겠는데 아예 대놓고 지민을 종 취급을 해대니 한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화끈하게 대응을 할 박지민도 아니었고. 여기서는 나설 수밖에 없나.


"자꾸 막내 갈궈라?"

"아, 아닙니다! 셰프! 저희는 그게..."


아니나 다를까.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화들짝 놀라는 꼴들이 아주 명화다. 쯧쯧, 속으로는 여러번 혀를 차주고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니까 니네가 성공을 못하는 거야, 성공을.


"날 봐라, 날. 나이는 어린 새끼가 세계 대회 대상 타서 이렇게 기고만장한 걸. 너희는 안 분하냐?"

"......"

"나라면 화나겠다, 임마. 어? 아니면 좀 잘해서 어서 독립을 하던가. 계속 우리 레스토랑에서 빌붙어 살거야? 아니잖아."

"......"

"갈구는 건 셰프 일이지, 요리에 '요'자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뭘 가르치겠다고 들어? 군기가 빠져가지고."


시원하게 한마디 해주고 나면 속으로는 분한지 손까락이 꿈틀거리는 게 눈에 다 보였다. 그러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윤기도 처음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을 때 같은 상황을 여러번 겪었으니까. 여기다 대고 어디서 화를 내냐고 소리를 높였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여기서는 조용히,


"박지민, 네 선배들 입에서 너 못한다는 소리, 그것 좀 안 나오게 할 수는 없냐?"


박지민을 불러 혼자 혼을 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목소리를 높인 것도, 화를 직접적으로 낸 것도 아니었는데.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지민의 눈꼬리가 축 처져갔다.


"죄송합니다, 셰프..."


억울해서도, 화가 나서도 아닌 그저 정말 죄송해서 나오는 표정.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얼굴을 보고있자면 더도 덜도 말을 못했다. 왜 거기서 또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냐고. 잘 하겠다고 말하면 어디 덧나는 거야?


"또, 또. 죄송합니다."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가 이내 뭐라고 변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건지 구두 끝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지민을 향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그러고선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당분간 녀석이 갈굼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주방에 머무르기는 해야될 듯 싶었다. 칠칠치 못한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의기소침한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보호해줘야 할 의무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저 그런 것 뿐이었다.


다른 감정이 있으리라고는 차마 짐작을 하지 못했으니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정성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박지민이 또 안 보였다. 아, 또 창고에 갔나. 괜스레 뒷머리를 긁적 거리며 있지도 않는 자리를 체크했다. 닦이다가 만 후라이팬.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히 창고에 가봤자 방해만 될 것 같았다. 아직 나는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무슨 말이라도 들었다간 거기서 혼자 울고 들어오는 게 뻔히 티가 났다. 창고에만 다녀오면 눈이 새빨갛게 부어 올라있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속일 사람을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그런 쪽으로 눈썰미는 유독 발달해 있어서 게다가 우는 사람을 막으려는 악취미는 없었다.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평소보다 배는 시간이 더 많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착각인가.



*



시간이 한참 흘러도 안 오길래 창고에 가봐야 하나 싶던 찰나 박지민이 들어왔다. 그것도 꽤,


"어..."


야한 몰골로. 야하다는 말을 잘 쓰는 편도 아니었고 그런 쪽으로 도가 트인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딱 맞춰 입은 조리복으로 눈이 갔다. 평소에 큰 사이즈를 입고 있었구나, 하고 체감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이상하게 작은 사이즈를 딱 맞게 입고나온 지민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나쁜 건 아니었지만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 그래, 그냥 평소랑 달라서 느끼는 평범한 감정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약속 관계를 어긴 것에 대해 화를 내지 않을 만큼 이 쪽은 성인 군자가 아니라서 말이지. 그래, 운 건 상관이 없다. 일에 관계되지 않는 일이니까. 그런데?


"설거지를 이만큼 쌓아두고 박지민 이 새끼는 어딜 간 거야?"


제법 짜증이 묻어난 말투.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해도 짜증이 났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덕분에 플레이팅도 지연 됐고, 주문도 밀리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상관이 없었지만 제일 짜증나는 건 일에 지장을 줬다는 것. 개인의 사정 때문에 가게에 대한 불이익이 가는 건 적잖게 심정을 쿡쿡 들쑤셨다.


"지민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이미 자기 선배들은 눈치를 다 깐 것 같은데 티나는 윙크를 하며 낌새를 좀 알아차리라고 말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더 웃긴 건 평소랑 달라진 지민의 분위기였다.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든 건지 실실 웃고있는 것 하며 팔짱을 낀 것 까지 마음에 안 들었다.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도 그럴 게, 옷을 꽉 맞춰 입고 평소라면 문을 소심하게 열고 쭈뼛쭈뼛 들어오던 녀석이 쾅, 하고 소리가 나게 세게 열고서 게다가 파워 워킹까지 하며 이 쪽으로 걸어오니까. 이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왜. 뭐요."


그럼 그렇지. 망했다는 눈길로 질끈 눈을 감아버리는 지민의 선배들은 오늘도 역시 야근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눈치는 드럽게 말아 먹어가지고. 갑자기 들어온 지민에게 시선이 집중돼서 그런 걸까. 녀석들이 아까부터 조리대에서 멀리 벗어나 한 가운데 지민과 윤기를 연결하는 통로만 훤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뭐야, 일 안해?"

"예...?"

"이 새끼들은 말을 처해야 알아듣나. 빨리 일 못해?"


예, 예!!! 세프!!! 대답은 잘해. 미간을 좁혀 입모양으로 욕을 한가득 내뱉어 주고 나니 시야에 박지민만 들어왔다. 아까 그렇게 말을 해놨는데 또 화를 내봤자 뭐하나 싶어서 눈짓으로만 잔뜩 뭐라하다 시피 눈치를 주고 다시 자리를 벗어났다.


이 정도면 적어도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쯤은 알아들었겠지. 역시 윤기의 의도대로 뭔가 알아 들은 건지 지민이 가까이로 오고 있었다. 다만, 의아하다고 생각한 점은 살풋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다는 점.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거야, 녀석은?


가까이 다가와서 뭔가를 보기라도 한듯 위아래로 스캔한 다음에 내뱉은 녀석의 첫마디는


"와, 몸매 죽인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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