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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첫번째 만남을 가지고, 그렇게 사귀게 되고. 평범한 연인이 되면 과분한 짓을 하게 된다. 바라지도 않았던 모든 것을 그 사람이 해주기를 기대하고, 전에는 원하지도 않았던 것을 원하기도 하고. 당연한 세상의 이치였다. 다른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집 안에 발을 들이고 더듬더듬 거리다 불을 켰다.


평소라면 왔냐고 다정하게 말하며 현관까지 마중 나와줬을 윤기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가운데 텅 빈 거실을 빙 둘러보다가 피실 웃었다.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어째 이 적막함은 익숙해질 줄을 몰랐다. 오늘따라 더 꽉 졸라 묶은 넥타이를 풀어서 소파에 아무렇게나 내던지려다가 문득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중에 치우기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세탁기에 넣어둬.'


가만히 서 있다가 걸음을 세탁기로 향했다. 사뿐하게 툭 던졌다가 한 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문 언저리에 툭 부딪친 다음 나가 떨어지는 넥타이를 다시 집어들어 신경질적으로 쑥 넣었다. 그러고서 한참을 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뭘 짜증내는 거야...먼저 헤어지자고 해 놓고서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리다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짜증났다. 왠지 모를 짜증이 자꾸만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그랬다. 윤기와 헤어졌다. 그것도 한 달이라는 긴 시간 전에. 어떻게 보면 짧을지도,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민에게는 한참은 긴 시간이었다.


야근을 하고 늦게 집에 들어오면 언제나 외로워져서 방 안 깊숙히 숨겨놓은 비밀공간을 찾았다. 비밀공간이라고 해봤자 잘 안 보이는 구석 서랍이었지만. 열쇠로 딸칵 서랍을 열면 안은 갖가지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같이 갔던 레스토랑에서 형이 줬던 반지. 첫 데이트를 나갔을 때 잘 어울린다고 사줬던 스웨터.


이왕이면 커플로 뭐 하나 좀 맞춰보자고 해외 출장을 다녀와서 사다 준 시계. 전부 때가 묻고 시간이 묻고 추억이 묻어있었다. 차마 버릴 수는 없었다. 윤기와의 연애가 첫 연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가 한참을 속에 머물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손길이 많이 타는 물건은 다이어리였다.


윤기와 사귈 때 그의 일정을 빽빽하게 적어둔 다이어리. 한 장을 넘기면 작년부터 시작해서 빼곡하게 일정들이 채워져 있었다. 어떤 날은 일본 출장, 어떤 날은 해외 컨벤션. 어떤 날은 해외 미팅. 해외, 해외, 해외.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속이 아파서 입술을 꽉 깨물고 다이어리를 지그시 덮었다.


이것 때문에 헤어져서 그런가. 보고 싶어서 본 것임에도 코가 시큰했다. 알고 있었다. 형이 바쁜 사람이라는 거. 무리해서 나랑 만나주고 있는 거라는 거. 사귀기 전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그냥, 형이랑 한 번이라도 데이트를 해봤으면. 한 번이라도 손 잡아봤으면. 한 번이라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해줬으면.


하지만 막상 '사귄다'는 목적을 이루고 나니 더 많은 걸 바라게 됐다. 나와 언제나 함께 해줬으면 좋겠고, 내가 퇴근할 때 쯤에는 같이 집에 갔으면 좋겠고, 해외 출장으로 나를 혼자 집에 두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치졸하고 부조리 했기에 지금껏 참아왔지만 우연찮게 약속한 시간보다 두 어시간 미팅으로 늦어졌을 때 울컥하고 모든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나를 사랑한다면 왜 혼자 두냐고, 내가 그새 싫어진 거냐고. 마음에 담기지도 않은 소리였지만 크게 당황하며 절대 그렇제 않다고 말을 하는 윤기를 앞에 두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며 끝내 남 속 아플 소리만 내뱉었다.


'난 이제 형이랑 있어도 행복하지 않아.'


그 말 한마디에 꽤나 충격을 먹은 듯 당시 대변하고 있던 윤기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가던 게 생각난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걸. 거짓말이었다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말했으면 지금 이렇게 씁쓸한 생각을 하지 않았어도 될텐데.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헤어지자는 말에, 나는 형이랑 있으면 힘들다는 말에, 그는 수긍이라도 하듯 돌아서 가버리는 지민을 끝내 잡지 못했다.



*



"야, 박지민. 내일 뭐햐냐?"

"뭘?"


너 생일이잖아. 생일인 건 이 쪽인데, 어째 전화를 하는 김태형의 목소리가 더 들떠있다. 그래, 내 생일 생각해주는 게 너말고 누가 있냐. 생일인 것도 요즘, 까먹고 있었는데. 깨닫게 해준 게 생각보다 너무 의외의 인물이라 잠에서 깨다말고 웃으며 눈을 비볐다.


"그래서? 왜. 같이 어울려 주기라도 하려고?"

"두말하면 잔소리지. 이 형님이 너를 위해서 약속을 뺄 수도 있다고."

"아서라. 선약이 먼저잖아."

"그래도. 너 내일 혼자 아니야?"


혼자 아니냐는 말에 웃고 있던 입꼬리가 스르륵 내려갔다.


"...아니야, 혼자. 난 괜찮아. 놀다 와."

"진짜? 뭐야, 선약 있던거야?"

"어. 걱정 안 해도 돼."

"에이, 누가 걱정 했다고. 난 그냥 예의상 물어본거지."


고맙네. 장난으로 비꼬듯 말하니 수화선 너머로도 너털웃음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그럼 끊는다? 재밌게 놀고."

"어, 그래. 너도."


뚝.

끊기는 전화를 차마 놓을 생각을 못하고 계속 귀에 붙이고 있었다. 참 목소리가 밝다. 나, 사실은 내일 혼자인데. 놀 사람도 없고, 같이 생일을 챙겨줄 사람도 없고. 근데 이런 날까지 태형이한테 기댈 수는 없으니까. 혼자서 해결해 봐야지. 뭐 어때? 요새 혼자 생일파티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그 중 하나가 되면 되지.


작년이랑 그 전 년에는 형이랑 같이 보냈지만, 이번에 혼자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작년 생일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사람하고 굳이 생일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으면서 어느새 눈 앞이 흐릿흐릿해졌다.


"아...씨이...안울어...안 운다고..."


눈까지 비비면서 기어이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옆으로 누웠더니 주르륵 눈물이 얼굴위로 흘러내렸다. 이렇게 친구가 없었나 싶을 정도로 외로운 생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담했다. 내일은 생일이 아니고 차라리 1년 중 하루 스쳐 지나가는 날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근무도 없는 날인데. 하루 푹 쉬어보자고 이불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웅크리다 시피 이불 안에 몸을 감추고 숨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니 어느새 숨이 찼다. 눈물 조금 흘렸다고 그새 부운 눈이 퉁명스럽게도 짜증났지만 두 손으로 꽉꽉 누르다가 침대 맡에 앉았다.


"...뭐할까?"


형은 내일. 딱히 그를 의식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미 발걸음은 다이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열쇠를 들고 서랍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기어이 열고서 다이어리를 손에 들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게 남들 눈에는 미련해 보이겠지만 적어도 확인이라도 좋으니 해보고 싶었다.


다이어리를 열어 촤르륵 맨 마지막 페이지를 여니 뭘 대변이라도 하듯 10월 13일에 '해외 미팅'이라고 적혀있다. 이번에는 유럽 쪽이네. 내일 미팅이 시작이니 아마 오늘 쯤은 공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이랬다. 작년 생일에도 윤기와 보냈다고는 하지만 정작 영상통화를 했던 게 끝이었고. 고작 그거 하나에도 행복해했다는 사실에 목이 메었다.


바쁜 사람을 붙잡아 두고 나를 위해서 일을 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윤기는 유능했다. 그저 그런 회사에 다니면서 매일 야근에 시달리는 지민과는 달리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그에게 애인 생일 탓으로 해외 미팅을 하루 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리인 걸 알기에 일부러 부탁하지 않았다. 형이 곤란해하는 표정을 보고싶지 않았으니까. 쓴지 두 달은 넘었는데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검정 볼펜으로 '해외미팅-유럽' 이라고 적힌 글자 밑에 괄호로 '다치지 말고 돌아오기'라고 적혀있다. 미련했다. 저 때는.


해외미팅이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알면서, 헤어진 이후로 몇 번이나 다녀왔을 해외 미팅을 오늘도 뻔히 갈 걸 아는데 근데 왜 이렇게 가슴이 시린지를 모르겠다. 속으로는 형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면서 한 편으로는


그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



차라리 오늘이 주말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걸. 그러면 지금쯤 일하고 돌아올 시간이니까 차라리 힘들어서라도 생일인 걸 잊을 수 있었을 텐데. 한 손에는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숟가락을 들고 퍼먹으며 무표정으로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코미디 영화라고 하더니 개뿔. 하나도 웃기지를 않았다. 한 번 봐서 그런가? 제목이 익숙해서 그런지 잘 생각해보니 첫 데이트 때 윤기와 보러갔던 영화였다. 당시에는 배꼽 빠지도록 웃었는데. 왜 이번에는 웃기지 않지? 가만히 보고 있다가 더이상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숟가락을 아이스크림에 꽂아놓고 더듬더듬 리모컨을 찾아 전원을 껐다.


애초에 집 안에 불을 켜지 않았던 탓에 금세 깜깜해졌다. 옆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생일은 2시간여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차라리 일찍 잘까 싶었지만 잠이 안 오기도 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고 남은 아이스크림을 냉장고로 밀어넣었다. 단 걸 그렇게 좋아하는데도 오늘은 많이 먹지를 않았다.


소파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으니까 정말 세상에소 동떨어진 외톨이가 된 것 같아서 눈을 꾹 감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차라리 누가 옆에 있다고 상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일 하루인데, 왜 이렇게 유난히 힘든지를 모르겠다.


헤어지지말걸.


스스로도 그 생각을 하다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도 이내 금방 축 처져 우울해졌다.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 해외 출장을 가면 꼭 하나씩 기념품을 사와서는 지민의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곧장 품에 안기는 통에 여러번 웃곤 했는데. 몸집은 지민보다 훨씬 크면서 안기려 드니 되려 지민이 안기는 모양세가 되긴 했지만.


지민아, 라고 불러주는 울림이 좋았다. 유독 형이 불러주는 이름이 좋았다. 이제 더는 불릴 일이 없겠지만. 아마 유럽과는 시차가 있어서 지금쯤 낮이니까 돌아다니고 있겠지. 내가 이러고 있을 거라는 거 생각도 못하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그 때 욱해서 헤어지자고만 안 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뒤늦은 후회는 독인데, 이미 할대로 하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지이잉-.


소파로 전달되어오는 진동에 문득 고개를 드니 화면을 밑으로 가게 해 덮어둔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이 시간에 누구지, 태형이인가. 내가 전화하지 말라니까. 지금 받으면 우울한 거 티나는 거 아니야? 휴대폰을 잡기 전 여러번 헛기침을 하고서 조금 지나고 나서야 집어 들었다.


화면에 뜬 세 글자는 예상 밖이었다.


'윤기형'


멍하니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곧 있으면 끊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덮쳐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슬라이드했다. 무슨 말부터 해야하지, 무슨 말부터. 왜 전화를 한 건지 물어봐야 할까?


"여보세..."

"생일 축하합니다-."


걱정되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라고 간신히 말하기도 직전에 저편에서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려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는 지민이,"

"......"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이라는 부분에서 잠깐 멈칫한듯 했지만 끝까지 노래를 마치고서는 침묵이 흘렀다.


"...생일 축하해."

"......"

"이미 거의 다 지나버렸지만 생일 축하해. 지민아."

"......"

"...끊을게."


대답을 하기도 전에 뚝 끊기는 전화기를 귀에 한참 대고 있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소용이 없는지 이내 볼을 타고 눈물이 한 두 방울씩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기어이 왈칵 울고 말았다. 꺽꺽 아무도 없는 집에서 서럽게 울다가 기억도 나지 않던 1년 전쯤에 일이 생각났다.


생일을 이 정도로밖에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작년 생일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으로 입국을 한 윤기는 품에 지민을 안고 속삭였다. 오랜만에 맡는 알싸한 민트 향기에 살풋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지만 이내 내년에는 제대로 챙겨주고 싶으니까 뭘 바라냐는 말에 고민할 것 없이 전화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작 그걸로 괜찮겠냐는 말을 추우니까 빨개진 지민의 얼굴을 커다란 두 손으로 감싸쥐며 말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내년 생일에도 분명히 해외 출장같은 게 있을 거라고.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평소에 노래라면 질색을 하는 형이 전화로, 그 낮은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는 게 너무 낭만적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런 말을 한 걸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한참을 펑펑 우는데도 가슴이 아팠다. 윤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스치듯 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하나하나 서열을 정해 정리해두고 있었다.


생일이라는 걸, 헤어졌다는 걸, 다 알면서도 전화를 걸어 1년 전쯤의 약속을 지킨다니. 오랜만에 듣는 윤기의 목소리가 유독 갈라졌다고 느끼는 것도 지쳐 보인다고 느끼는 것도 착각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떠나 보냈다는 사실 한 가지가 서서히 마음 속에 살아나면서 찢어지는 통증을 만들어냈다.


보고싶어, 지금 당장 보고싶어. 눈을 비비면서 휴대폰을 집어들고 최근 통화 목록에서 '윤기형'을 누른 건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신호음이 몇 번 채 가지도 않아 뚝하고 받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디...어디에요?"

"...지민아?"

"어디...어디있는데요?"

"집이야."


유럽에 있어야할 사람이 왜 집에 있는지 물을 틈도 없었다. 옷 챙겨입은 것도 몇가지 없이 단가라 스웨터에 바지만 챙겨입고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윤기의 집이 어딘지는 눈을 감고도 갈만큼 익숙했다. 멀다면 멀었지만 버스를 타면 금방이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막차가 이미 떠나버린지 오래라 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참을만큼 참았는데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서 앞이 잘 보이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길가에 나가 택시를 급히 잡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가면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그런 건 알지 못했다. 그냥 보고 싶었다. 마냥 그 얼굴을 보고, 만지고 싶었다. 윤기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싶었다. 택시가 세워지길 무심하게 계산을 하고 아파트로 뛰어갔다. 평소에는 가깝게 느껴졌는데 새삼 안으로 쑥 들어가야 하는게 여간 힘든게 아닐수가 없었다.


중간에 돌부리에 걸려 퍽 넘어지면서 손바닥에 상처가 난 것 같았는데 상관 없었다. 아픈 걸 느낄 새도 없었으니까. 엘리베이터에 타서 부들부들 떨려서 잘 누르지도 못하는 손으로 23층을 눌렀다. 올라가는 속도가 유난히 느리다.


띵, 하고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리자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그 사이를 비집고 나가 익숙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조금 시간이 지나 안에서 걸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딸칵하고 문이 열리고 지민아, 라는 소리가 귓가에 들어오기도 전에 한달음에 뛰어 그의 품에 안겼다.


"지민아...?"


윤기의 목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얼굴을 묻은 상태로 있으니 놀랐는지 손이 어디로 갈지 방황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겨있으니 한 달 동안이나 못 맡았던 민트 향기가 코로 들어와서 사무치게 서러웠다. 그러다 기어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지민아"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게 안타까운 건지 아니면 동정인 건지 멀쩡하게 내리고 있던 팔을 윤기는 들어 지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미, 미안해요. 형 미안해요. 나, 나는...끕...내가...욕심...부려서...끅..."

"진정하고 일단 진정하자, 응?"

"나...나...끅...너무 이기적이라서...끕...미안...미안해요..."


들썩이면서 우는 걸 윤기는 가만히 등을 쓸어주다가 손을 올려서 어깨에 파묻혀있는 얼굴의 두 볼을 맞잡고 자기 얼굴 앞에 고정시켰다. 우느라 얼굴이 엉망이라서 안 봤으면 좋겠는데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또 싫지는 않아서 굳이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키스해도 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눈을 꽉 감고 거세게 끄덕끄덕 거리니까 피실 웃으면서 곧장 그의 입술이 덮쳐왔다. 오랜만에라서 그런가. 유독 길게 느껴지는 입맞춤에 윤기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얼굴을 붙잡고 있는 손이 차가우면서도 시원해서 키스에 더 열렬하게 응했다.


한참 긴 키스를 끝내고 나서야 그의 얼굴을 다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있었다.


"놀랐잖아. 갑자기 와서."

"...보고...서..."

"어?"

"보고싶어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가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주면서 나도, 라고 대답했다.


"...어쩌다가 돌아온 거예요?"

"뭐가?"

"유럽...유럽에 있을 시간이잖아요...오늘 미팅..."

"아, 그거?"


별 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게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단순하게 그는 대답했다.


"뺐어."

"빼, 뺐다고요? 왜요?"

"일만 챙기기 싫어서. 지금까지 너무 일에만 목을 멨던 것 같아서 그게 싫었어."

"......"

"너하고 헤어지기 전까지는 몰랐지. 일만 하는 게 왜 나쁜지."

"......"

"헤어지고 나니까 알겠더라."


바보같다는 거. 피식 웃으면서 지민을 다시 품에 안고 등을 쓸어내려주는 행동에 그냥 편안하게 안겼다. 한참을 그렇게 안겨 있다가 윤기가 볼에 가볍게 쪽하고 버드키스를 해주고서는 나긋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건데?"

"...네?"

"다시 만나는 거야, 아님 오늘만 한정으로 이래도 되는 거야?"

"......"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도 못하는데 놀리려는 건지 되려 허리를 감싸안고 다정하게 응? 이라고 되물어온다. 시선을 이리저리로 피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중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마, 만나요..."

"진짜?"

"형은 괜찮아요...? 내가...그...저번에...심한 말 했는데..."


고개를 푹 숙이면서 얘기하자 윤기가 말을 이었다.


"넌 나랑 헤어지니까 괜찮았어?"

"......"

"난 아닌데. 힘들었는데."

"......"

"다시 헤어지자는 말 안 할거면 난 다 괜찮아."

"......"

"보고싶었어, 지민아."


그 마지막 다정한 말에 울컥해서 코끝이 시리기도 잠시 붉어진 눈가에 쪽하고 입을 맞춘 윤기가 들어오라며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얼떨결에 따라가니 거실을 지나 부엌 쪽 아일랜드에 커다란 생크림 케이크와 함께 샴페인이 한 병 놓여있다.


그걸 보다가 이내 웃으면서 고개를 내렸다. 저 샴페인, 익숙하다 싶어 보니 맨 처음 윤기의 생일에 같이 마셨던 샴페인이었다. 지민이 올 줄도 몰랐으면서 왜 이렇게 큰 케이크를 사다놓고 이러고 있었냐고 물으니 뒤이어 곧 있으면 초에 불을 붙일 생각이었다고 대답했다.


"왜요?"

"이러면 너랑 같이 있는 것 같은 기분 들 것 같아서."

"......"

"나 찌질하지?"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는 걸 보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담배 끊었었잖아요."

"다시 폈어."

"...왜요?"

"너 안 보니까. 필 수밖에 없겠더라."

"......"

"끊을테니까 혼내지마."


그렇게 좋은 말만 하는데 어떻게 내가 화를 내. 주황 조명만 간단하게 켜진 집 안에 촛불이 켜지자 금세 따듯한 기운이 멤돌았다. 딱 맞춰서 준비된 촛불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맞은 편에 앉은 윤기의 얼굴을 쳐다봤다. 생일날 케이크에 촛불을 불면 소원을 빌어야한다고 하던데. 후, 하고 불면서 눈을 감았다.


내년 생일에도 같이 있을 수 있기를.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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