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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로테이션 12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후에 문자가 온 것이지만 윤기로부터 10시에 센트럴 광장에서 만나자는 문자가 왔기에. 그것보다 배는 이른 새벽 6시에 눈이 번쩍 떠져 아직 알람이 울리기까지는 2시간이나 남은 시계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깊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시 잠드려고 누웠지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봐도 오지 않는 잠에 끙끙대다 기어이 벌떡 일어나 이불을 정리했다. 평소에 하는 짓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깔끔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화장실로 걸어들어가 따뜻한 물을 틀었다. 몸 전체로 퍼져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에 부르르 떨기도 잠시 이내 알맞다고 느껴지는 온도에 눈을 감았다.


아침마다 하는 샤워는 기분이 좋았다. 겨울을 제외하고. 추위를 타는 것을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지민이었으니까. 뭐, 그 점도 빙상장 안에서는 예외인가. 평소에 샴푸를 1번만 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더군다나 3번씩이나 했다. 연습장에서야 윤기와 거의 붙어다닐 일이 없었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함께니까.


근데, 그러고보니까 이거.


"데이트 맞지...?"


그 생각에 금세 얼굴이 새빨개졌다. 정신차려, 정신차려. 연달아 외치며 두 손으로 뺨을 툭툭 치던 지민은 차마 달아오른 얼굴을 식힐 줄도 모르고 고개를 푹 숙였다. 샤워기에서 아직도 떨어지는 물들이 머리 위로 연달아 적셔왔다. 데이트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요새 계속 차가웠던 터라 접근할 생각도 못했고, 이런 일은 평생 없을 줄로만 알았다. 영화를 보자는 말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여준 것 까지는 고마웠지만. 그러고보니 무슨 생각으로 받아들인 거지? 알다가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깊게 파고 들지 말라는 말까지 들은 터라 물어볼수도 없었지만. 샤워를 깨끗하게 끝내고 밖에 나와 드라이기로 말리고서는 한참을 입을 옷을 고민했다. 침대 위에 펼쳐진 여러개의 옷들 중에서 고민하던 지민은 포슬포슬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입꼬리로 호선을 그렸다.


생각해보니 제법 낭만적이었다. 10월 13일. 오늘은 자신의 생일이었으니까. 생일 날 좋아하는 사람과 첫 데이트. 이보다 좋은 선물이 있을까? 게다가 상대는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윤기였다. 기분이 미치도록 좋았다. 이런 날만큼은 윤기가 준 옷을 입어도 좋을 것 같아 한참을 망설이다 위에 입었다.


지금까지 아끼느라 입지도 못한 옷이었다. 처음으로 사준 선물이라 너무 고맙고 소중해서 입지도 못하겠다는 말을 윤기에게 할수도 없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입지 못했던 검정색 니트를 만지작 거리다가 거울을 바라봤다. 딱 떨어지는 핏이 마음에 쏙 들었다.


윤기씨는 이 옷을 보고 무슨 말을 할까. 그보다, 이게 데이트라는 걸 그 사람도 알까?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억지로 억누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설레서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



아. 일냈다. 들고있던 휴대폰을 그대로 소파 위로 집어 던졌다. 그러다가도 그대로 위에 주저앉아 한숨을 깊게 내쉬고서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뭐가 그렇게 조급한데."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허공에 나돌았다. 젠장. 입밖으로 차마 내뱉지도 못하는 욕들을 속에 담아두다가 다시금 휴대폰을 집어들어 문자 내역을 확인했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자에는 여전히 지민의 말에 긍정한 자신의 답변이 담겨있었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어제 그런 답을 남겼는지 알다가도 이해 못할 일이었다. 사람과 어디를 함께 가는 것도 싫어했지만 더 확실히 말하자면 그저 누군가와 엮인다는 사실이 싫었다. 근데 하필이면 지민이라니. 평소에 누군가와 영화라니 있을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희대의 사건이었다.


솔직히 말해 조금 짜증이 나있던 것은 인정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러시아 전지 훈련까지 남은 날짜가 얼마나 된다고 연습까지 강제로 종료시키고 연습이나 스트레칭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운동도 손에서 놓은지 이틀이 되어가니 몸이 제법 근질거리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밖으로 나가 땀을 빼고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간절하게 들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스스로는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가만히 있다보면 입버릇처럼.


"박지민."


그 아이의 이름을 되뇌이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나온 말이라 왜 그 이름을 떠올렸는지도 몰랐지만. 영화를 보자는 말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승낙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거절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화를 보러가자는 말에 욱한 심정에 '그래.'라고 보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어딘가 모르게 답지 않은 구석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감정이 있는 건 아닌데. 억지스럽게 머리만 헝클었다.



-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심정은 좋았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 그런가. 사실상 지금까지 제대로된 데이트도 해본 적이 없는 터라 기다려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심리였다. 어릴때부터 바보처럼 현대 무용에만 빠져있던 탓이었다.


약속한 시간까지는 앞으로 10분. 애꿎은 핸드폰만 켜서 시간을 연달아 확인했다. 아까 확인했을 때는 9시 59분이었는데.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정작 1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한숨만 푹푹 나왔다. 괜히 일찍 나왔나 싶었지만 늦게 나왔다가는 약속을 어기는 것을 지지리도 싫어하는 윤기가 새삼스레 집으로 다시 가버릴까 두려웠다.


10월은 때마침 가을이 찾아와서 하늘이 맑고 푸르렀다. 이런 가을 날씨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윤기가 사준 니트 한 장만 덜렁 입고 나오기에는 무리감이 있는 날인가 싶었다. 가뜩이나 추위를 많이 타는데. 하지만 오늘만큼은 꼭 이 니트를 입고 싶었다.


검정 니트에 평소 잘 입지도 않는 아끼는 청바지. 친한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도 잘 입지 않는 바지를 입고 나오니 새삼스레 윤기를 만날 때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알고보니 제법 낯부끄러운 말이라서 얼굴만 붉혔다.


짝사랑이 원래 이렇게 창피하고 간질거리는 건가. 아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제대로 꾸미고 온 건 맞는지. 오늘 너무 과하게 들뜬 건 또 아닐까. 티가 나면 어떡하지. 그런 저런 고민들로 머릿속이 꽃피고 있었다. 10시가 조금 넘자마자 저만치에서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셔츠에 단정한 옷. 보자마자 멋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모습을 하고 와서는 멀쩡하게 인사를 건네는 윤기의 모습에 행여 붉어진 얼굴이 보일까 고개를 숙였다.


"많이 기다렸어?"

"아,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그럼 빨리가자."

"네?"

"영화 시간 얼마 안 남은 거 아니야?"


순간 정말 칼같이 말을 꺼내는 그가 조금은 미워졌다. 차가운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걸까. 애초에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있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방금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고 더군다나, 낭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일단 갈까요...?"

"영화 같이 볼 친구 없어서 나 부른 아니야?"

"...네?"


아. 혹시나 했는데 왜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역시 이 사람, 이걸 데이트라고 인지하고 있지는 않구나. 그런 생각에 괜히 입술만 삐죽였다. 사실 알고 있었잖아. 알고 있었잖아, 박지민. 근데 너만 혼자 들떠가지고. 괜히 이 니트 입고 나왔나.


"아 그럼 가던가요."

"왜 또 그런 말투인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뭐라고 대답하라는 거야? 속으로 남몰래 흥, 이라고 말하며 먼저 앞장섰다. 그래, 내가 뭘 바라겠어. 영화라도 같이 봐야지. 눈치 하나는 드럽게 없어서. 사실은 지금까지 철벽 치느라 여자 안 만난 거 아니고 눈치가 없어서 못 만난 거 아니야?


심술이 나서 그런 마음도 들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또 그건 아닌 것 같고. 밉기는 미운데 얼굴은 여전히 잘생긴 터라 할말이 없었다. 답지 않게 뒤에서 지민을 따라오다가 피식 웃으면서 걸음을 바삐해 따라잡고서는 옆에 와서 나직하게 같이 걷는데 그런 느낌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이것이 나만의 데이트라고 할지라도.


영화관에 도착한 뒤로의 일상은 똑같았다. 다른 사람과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영화 대기표를 뽑고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래, 여기까지는.


"어, 혹시 민윤기 선수 아니야?"


사람들이 알아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친, 민윤기 선수잖아!!!"


여고생인지 아니면 평범한 여대생인지 모를 무리들이 잔뜩 몰려와 민윤기가 아니냐고 여러번 말하더니 그 소리에 관심이 생긴 영화관 안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평소 자연스럽게 윤기와 일하는 삶이 되어가다 보니 잊고 있었다.


그가 국가대표에다가 잘생긴 얼굴로 제법 인기몰이까지 하고있는 피겨 스케이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봤자 달라지는 점들은 없었다. 준비해온 마스크도 없었으며 더군다나 쓴다고 해도 알아볼 것이 뻔했으니까. 애초에 팬 서비스를 잘 해주지도 않는 걸로 유명한데도 싸인을 해달라느니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느니 더 무리하게 안아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체 그런 말을 듣는 사람 입장은 생각해주는 건가. 이쯤돼서 매니저 입장으로 말려야겠다 싶어서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 지금까지 사람들 인파 속에서 가만히 서있던 그가 미간을 잔뜩 구기며 딱 한마디 내뱉었다.


"그만."


그 한마디가 너무도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흘러나왔기에 주위는 순식간에 정적이 되었다. 사실, 정적이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날카롭게 쳐다보는 눈도 한 몫 했다. 그래, 민윤기는 이런 사람이었다. 지민이 남몰래 좋아하고 짝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사적으로 온 거니까 이 이상 접근은 그만해주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인파를 뚫고 나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버버, 만 반복하며 따라나섰다. 왜 갑자기 나가느냐는 말에 그는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번호. 우리 차례야."

"아."

"알면 좀 확인해라."


네에, 시무룩하게 대답하자 그건 또 싫었는지 흘긋 쳐다보는 그였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국가 대표로서 살아온 삶이 얼마인데. 이 정도 상황쯤이야 익숙하겠지.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가 이렇게나 먼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영화 뭐 볼건데."

"아, 그게요. 저는 저기 있는 거...'트루 러브'"


뭐가 그렇게 창피한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자꾸만 기어들어갔다. 꾸물꾸물 말했더니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는 통에 얼떨결에 아무거나 말했는데. 저런, 하필이면 말해도 로맨스 영화였다. 사실상 뭘 보던지 상관은 없었다. 그저 윤기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만남이었으니까.


사실, 찔린다고 해도 지민 혼자서만 찔리는 터라 로맨스 영화라고 해서 윤기가 신경 쓰거나 할 일은 전혀 없는데도 자꾸만 식은땀이 흘렀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었다. 전혀 상관쓰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그였지만. 각자 영화 표 값을 계산하고 시간을 보아하니 시작까지 여유가 없었기에 곧장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깜깜한 가운데 조심스럽게 딛다가도 넘어질 것만 같아 입술만 앙다물었다.


"엄마야...!!!"


가만히 넘어갈 둔한 몸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발을 헛디디고 넘어질 뻔 한 것을 질끈 눈을 감자마자 누군가가 받쳐줬다. 누군가 싶은 생각도 없었다. 넘어지자마자 뒤이어 올 고통을 걱정하느라 바빴으니까. 진정이 되기도 전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달았다.


"이제 그만 좀 일어서지?"


잡아준 사람이 윤기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이며. 무겁다고 그만 기대라는 말이 귀에 푹푹 박혀오는 것도 그렇고.


"죄, 죄송합니다..."

"정신 놔두고 다니는 건 여전하네."


한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얼굴이 티나지 않게 가려주는 이 곳이 상영관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안 그랬다가는 이 얼굴과 얼빠진 표정이 그에게 그대로 드러났을 테니까. 자리를 잡고 안자 피곤한 것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의자에 푹 기대서는 눈을 감는 윤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피곤해요...?"

"어."

"아...그럼 괜히 같이 보자고 했..."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잠자코 있어."


단호하게 말하는 그에 입만 꾹 다물었다. 피곤한 거 맞으면서. 잔뜩 지쳐보이는 얼굴을 하고서는 잘도 거짓말을 했다. 건강을 걱정하는 건 매니저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똑같은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런 지민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자나깨나 잠을 자도 피곤한 그였다.


솔직히 말해서 같이 영화를 보러가자고 승낙한 건 충동적이었으나, 막상 약속 장소에 와보니 그다지 소득이 없는 편도 아니었다. 많인 사람들이 오가는 와중에 눈에 띄는 작은 키의 꼬마같은 모습에 지민을 발견하고서 처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검정색 니트'였다. 일본에서 사준 그 니트.


그 옷차림을 보자마자 이상하게 피실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입나 싶으면서도 그간에 긴장이 왠지 모르게 풀려서. 요 며칠 새에 연습을 가지 못한 동안 휴식 기간을 가지자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정작 그러지도 못했다. 피곤했지만 침대에 누워봤자 잠은 오지 않았고 평소에 눕기만 하면 1분도 안돼서 잠드는 몸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 알 턱도 없었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그저, 그냥 그저. 긴장이 풀렸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졸음이 오는 것 뿐이었고. 사실 영화에는 별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는 취미도 없었고 더군다나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 취미는 더더욱 없었다.


그런 취미는 이쪽에서 사절이었다. 하지만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지민이었으니까.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의 세상이 존재했다. 그러고보니, 안무 다 짜가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부담주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심란했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우승을 목표로 하는 한 나라의 대표인데 처음 안무를 짜본은 사람한테 맡겨놨으니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도 그랬고, 이미 나가버린 매니저들도 그랬고 항상 인연이 끝날 때마다 하는 말들은 똑같았다.


윤기가 너무 차갑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부담스럽다고 말하거나. 솔직히 말해서 성격이 올곧은 편은 결코 아니었다. 본인도 잘 체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서툴렀고,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으며 부드러운 감정에 익숙해지는 것도 힘들었다.


더이상 매니저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자신의 말 한마디로 지민의 표정이 뒤이어 울 것 같은 강아지 표정이 되는 것도 보기 싫었다. 결단코 보기 싫은 얼굴이었다. 묘하게 그랬다. 살짝 눈을 뜨고 옆을 보니 뭐가 또 그렇게 궁금한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녀석의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혼내려는 것도 아닌데 당황해서는 누가 봐도 티나게 눈을 피하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왜 피하는데."

"아니...그게요..."


변명을 하려는 건지 뭔지. 지금 와서 해봤자 소용없는데.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눈을 감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인데. 예를 들면 최근에 갑자기 왜 연습을 쉬었다던가 그런 사소한 질문들. 일에 관한 질문들이겠지. 하긴, 지민에게는 생계가 걸린 삶의 현장이니까.


이해하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굳이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무슨 물어볼 거라도 있냐고 물어볼만큼 그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친절한 사람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말해서 윤기가 지민에게 물어볼 일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 틈에 영화가 시작했다. 아무거나 고른 조잡한 선택이었지만 영화 시작부터 중반부까지 다다르는 동안 그런 생각은 한번에 날아갔다. 일단 무엇보다 주인공인 배우가 잘생겼고. 영화는 그 하나로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 거 아닌가? 적어도 지민의 생각은 그러했다.


틈이 날 때마다 자꾸만 윤기 생각이 나서 돌아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팔짱까지 끼고 그는 곤히 자고 있었다. 어두운 영화관에 게다가 로맨스 영화다 보니 조용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에 깔끔한 클래식 음악까지. 잠이 올 법도 했다. 요 근래에 쉬었다고 하더라도 국가대표의 평소 삶이 피곤하지 않다는 이유는 되지 못했으니까.


깨울까 하다가도 와중에 무슨 꿈을 꾸는지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웃었다. 가만히 냅두는 편이 훨씬 좋겠지. 그렇게 윤기에게 눈을 떼고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사랑스러운 부분이었다. 영화도, 그도.



-



"윤기씨, 영화 끝났어요."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미간을 구기다가 서서히 눈을 떴다. 뜨자마자 보이는 지민의 얼굴에 눈만 부볐다.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영화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물었다.


"뭐야. 벌써 끝난거야?"

"앗, 네!"

"왜 안 깨웠어."

"그냥...잘 주무시길래..."


영화 같이 볼 사람 필요했던 거 아니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윤기는 물어왔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지만 차마 그런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영화 같이 볼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윤기씨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과연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대로겠지. 좋은 표정이 아닐 것이라는 건 확실했다. 이제 영화도 봤겠다, 그만 헤어질 시간이었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시간은 아직 점심 중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집가면 뭐하지. 생일인데 혼자 있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친구를 부르자니 그것도 거북하고.


그냥 얌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나. 윤기의 집은 이 근처라 가까웠으니 곧장 집에 갈 것이 뻔했다. 애초에 데이트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영화 이외에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엘리베이터가 어딨나 찾는 틈에 그가 손목을 붙잡아왔다.


"아 진짜...깜짝아..."


놀란 심장을 다스리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뭘 놀래냐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길래 흘긋 한 번 눈을 쏘아주고 말았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람 놀래키는데 재주있나. 무엇 때문에 붙잡은 것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먼저 입을 열었다.


"가자."

"네...? 아. 그럼요. 집 가야죠. 저는 버스 타고 가면 더 빨라서..."

"무슨 소리 하는거야."

"네?"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말을 건네는 그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세게 잡고 있던 손목을 놓은 그는 먼저 앞장섰다. 이쪽이야 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집 가는 거 아니야?


"배고프잖아, 너."

"아니...저는...그게..."

"사줄테니까. 그냥 먹어."


귀찮다는듯 앞머리를 쓸어올린 그는 엘리베이터 내림 버튼을 눌렀다. 영화관 다음에 식사.


명백히 데이트 코스가 되고 있었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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