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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09

어젯밤에는 보름달이 떴던가. 초승달이 떴던가.


눌러쓴 모자챙이 무색하리만큼 그는 괜한 손으로 모자를 만지작 거렸다. 언제부터 생긴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버릇이었으나, 작업을 끝내고 나온 밤에는 항상 달의 모양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새까만 도심의 하늘 한 가운데 별은 이상하리만큼 보이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밝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달이라는 존재.


달은 항상 그랬다. 어렸을 때는 마냥 자신을 쫓아오는 것 마냥 느껴져서 오기를 부리며 더 힘껏 달려보기도 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 제게 달은 어느 의미로나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외로운 밤길에 떠있는 달을 보자니 조금은 기분이 풀리는 것만 같아서.


어두운 앞길도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면 달처럼 밝혀주는 존재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같은 것일까.


"...오늘은 쌀쌀하네."


윤기에게 있어 '달'같은 존재는 보라색 편지였다. 그다지 긴 내용이 오는 것도, 특별한 내용이 오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편지 끝마다 반복되는 달같은 사람, 이라는 그 문구 때문에 이러한 버릇이 생겨버린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분명 제 인생이나 음악 가치관에 있어 크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 그가, 어젯밤 어떤 달이 떴는지 기억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 상당히 큰 충격을 안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날짜가 바뀌더라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달을 보면서 힘을 얻고는 했는데. 보라색 편지가 끊긴지 몇 개월, 그 몇 개월간의 세월들이 그로 하여금 무언가의 상실을 일으키게 만든 것일까.


결혼 후 달라지는 것이라고는 유부남이라는 호칭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노래 작업을 하고, 언제나처럼 작업실에 앉아 다른 가수들과 협업 작업도 하고. 열심히 노력을 쏟아 넣은 노래들로 앨범을 내고, 반응이 좋다면 방송도 나가고, 콘서트도 열고.


자신의 이름을 있는 힘껏 불러주는 그런 팬들과 함께 늙어갈 것이라고, 몇 개월 전만 해도 그렇게 느꼈다.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느끼는 것은 아무리 귀를 막고 눈을 가려보려 해도 조금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팬레터들과 팬들의 사랑.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변했다 라고는 할 수 없는 정도였지만 예전부터 쭉 달려온 오랜 시간 동안의 동반자들이었으니 윤기 스스로가 그 점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었다. 무언가 하나를 바라보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무언가 하나가 무너지기는 쉬운 일이었으니까.


대체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무슨 일을 해 온 거지?"


괜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지민에게 잘 대해주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충분한 다짐을 해보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주기 이전에 자신도, 이기적인 인간의 종류라는 것을 자각시켜주기라도 하는 것인지.


가끔 지민이 미워질 때가 있었다. 말갛게 웃는 그 얼굴이 미워질 때가 있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 태도가 미워질 때가 있었다.


괜히 남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라는 것 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남준에게 상담을 구해 보고, 지민에 대한 미움을 떨쳐내려고 노력을 해 보아도 끈적거리는 이 기분 나쁜 감정은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라색 편지'


그 단어만 들으면 예민해 진다는 것은 도통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최근 들어 그 보라색 편지에 대한 지나친 집착 증세를 보인다는 생각 정도는 했으나, 날이 갈수록 우편함을 뒤지는 그 모습이 꽤나 초라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팬의 마음을 고맙게 여겨서, 오래 전부터 나를 응원해 준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고마워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줄로만 알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편지 한 줄을 읽으면 어디선가 모를 힘이 솟아나는 것만 같았고, 노래 곳곳에 보라색 편지에 의존하여 쓴 가사가 하나 둘 씩 박히는 것을 자각하면서 괜히 그 편지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는 노릇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팬을 향한 감사함 그 이상은 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여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지금에 와서야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저번 음악 작업을 하며 첫사랑에 빠진 소년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에 대한 문제점을 깊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팬에 대한 마음은 한가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섬세하고 복잡한 것들이라, 한참을 걸어오고 정상에 도달한 지금에서 생각해 봐도 무언가 정의내릴만한 단어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초창기부터 자신을 응원해준 보라색 편지의 주인만큼은 무슨 단어로든 표현할 수 없는 존재였다.


과연 나는, 이러한 감정을 단순히 감사함이라고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문득 집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봤다. 쌀쌀한 바람이 코끝을 지나 폐를 스쳐 나오며 온기를 머금고 따뜻하게 바뀌어 가기를 반복하기 여러번. 괜히 생각이 더 무거워졌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것은,


단순히 감사함으로 치부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연예인에게 있어,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금지되어야 할 무언가의 선을 지금 그는 넘으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팬들을 사랑하고 나의 음악을 들어줬으면 한다는 그 생각이 바뀌어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일어나는 그런 감정.


내가 노래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휘갈겨댔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바로 그러한 것을 정의내리는 단어가 아니었을까.



-



"으...추워...슬슬 온도 높여야 하나?"


집안은 온통 쌀쌀맞은 기운으로 가득차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의 운치를 느끼기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사계절이라는 것은 참으로 변덕스러운 것인지, 어느새 겨울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것 같은데, 결혼식을 올린지 어느덧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마저도 아닌 것만 같았다.


가벼운 가디건을 걸친 채 거실로 나온 지민은 괜스레 보일러 온도를 높이며 현관문을 흘긋 바라보았다. 저녁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근 들어 카드를 건네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어느 정도 사이가 회복되어 가는 것인가 하고 기대를 했는데.


지민에게 있어 그와의 사이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단순히 소망을 현실처럼 여겨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무엇이 되는 것도 아닌데, 지민은 그 날 이후로 그가 준 카드를 품에 지니고 다니는 버릇을 만들고 말았다.


버릇이라는 건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서, 무언가 하나의 버릇을 잃고 나면 또 다른 버릇으로 옮겨 붙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보라색 편지를 쓰는 것을 겨우 관뒀더니 생겨버린 또 하나의 버릇. 운이 나쁜 것인지 아니면 운명인 것인지 이번에도 꼭 그와 연관이 있는 버릇이었다.


가디건 주머니에 넣어뒀던 카드를 꺼내 괜스레 만지작 거리며 지민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차갑디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 그 플라스틱 위로 새겨진 이름 세 글자. 그와의 거리는 현재로서 딱 이 정도의 것이었다. 눈만 뜨면 이름이 보이고, 그의 존재를 확실히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다가설 수가 없었다.


"...밤길 어두운데."


혹여 그가 작업에 지쳐 걸어오다가 넘어지지나 않을까. 그런 걱정에 휩싸였다. 이런 입장이 되기 직전, 그러니까 그저 팬인 입장이었을 당시에는 이런 걱정을 한 적은 없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이 마저도 크나큰 문제점으로 다가왔다.


그의 온갖 부분들이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문자로 잘 지내냐고 물어보기에는 어디 먼 사람에게 하는 문자 같았고, 다정하게 말투를 바꿔보자니 새삼 그렇게 다정한 말투로 문자를 주고 받을 사이는 아닌 것만 같아서. 아니, 그에게 그렇게 대하기에는 사뭇 너무나도 미안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는 없는 것인지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결말이 쉽게 날 리도 없었고. 그런 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 테이블 위에 놔뒀던 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하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그 소리에 놀라다가도 잠시 혹여 윤기일까 싶어 단숨에 지민의 입꼬리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뭣도 모르게 기분이 들떠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액정 위로 뜬 이름을 발견한 후였다. 윤기씨, 라는 그 석자를 기대했거늘 테이블 위 휴대폰에 뜬 이름은 생각 외의 인물이었다.


'고모님'


제일 받고 싶지 않으면서도 제일 받아야만 하는 사람. 어릴적부터 어딘가 모르게 지민의 뇌리에 박혀 떨어져 나올 줄을 모르는 사람. 그렇게 지민을 자신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양 어딘가에 각인시켜둔 사람. 전화를 빨리 받아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사람은 참으로 미련했다. 더 이상 만날 일이 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맞을 지도 모른다는 그 걱정에 손이 먼저 나갔으니까.


"...여보세요?"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결혼하고 나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니?

"죄송합니다..."

-됐고. 민윤기 바꿔.

"...네?"


결혼 후에 한 번이라도 지민에게 신경을 쓴 적이 없던 고모에게서 전화가 온 것도 놀라웠는데. 통화 중 그녀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제 3자의 이름은 더욱 뜻밖이었다. 제 3자. 그러하였다. 민윤기라는 사람의 존재는 지민에게 있어, 그러니까 이 집안에 있어 제 3자같은 존재였다.


더이상 연관되어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 쯤은 지민도 잘 알고 있었고 혹여 그에게 또 다른 민폐를 끼칠까 괜히 전화기를 쥔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윤기씨는 왜..."

-...너 기어오른다?

"네? 아, 아니...그런게 아니고...지금 집에 없어서..."


기어오른다, 그 한 마디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몇 개월 전 맞은 부분은 말끔하게 다 나았는데도 복부가 욱씬욱씬 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 그 욱씬거리는 복부를 애써 매만지며 지민은 두 눈을 꾹 감았다.


확실하게 말해야만 했다. 그에게 무슨 용무냐고, 결혼을 해서 이용해 먹은 것이면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그 한마디면 됐는데, 아니, 그 몇 단어면 됐는데. 이상하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모음 한 글자를 내뱉으려고, 단어 하나를 내뱉으려고 분명 입모양은 움직이고 있었는데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압도적인 공포심은 그를 향한 마음을 훨씬 넘어 나뒹굴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미안하다는 것을,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나온 세월동안 고모에게 짓밟혀온 지민에게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끝끝내 아무말도 내뱉지 못하고, 반항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민은 고모가 내뱉는 터무니 없는 요구들을 귀 안으로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내용은 꽤나 간단한 것이었다. 연말파티를 이번에 여러 대기업들이 모여 한꺼번에 개최하는데, 그 파티에 부디 민윤기와 저를 초대하고 싶다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어째서 그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울분이 솟아나올 정도였으니까. 연말파티, 그것은 매년마다 열리고 있는 연례 행사같은 것이었다. 대기업들의 자제들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주체할 도리가 없어서 여는 것인지 어쩐지는 몰랐지만, 잘 둘러대봤자 그저 인맥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민은 알고 있었다.


각자 알만한 유명인사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겨루는 행사, 그 정도로 말하면 된걸까. 파티다운 분위기는 분명 띄고 있었지만 그래봤자 알만한 사람들만 서로 인사를 나눌 뿐이었고, 지민에게 있어서는 거북한 파티였다. 그래봤자 매년 파티에 참석하지도 못한 채 꽁꽁 집안에 숨겨져 노래를 들을 뿐이었지만.


그간 집안의 수치라고 여겨져 왔던 지민에게 그런 커다란 규모의 파티에 참석할 권한이 주어질 리가 없었다. 그런 입장이었던 지민에게 윤기를 데리고 파티에 참석하라니. 보이는 의도가 다 들킬 수준이었다. 보나마나 윤기를 통해 이 기업의 수지가 어느 정도 되는지 자랑할 심산이겠지.


안된다고, 그 날 무슨 이유가 있어도 그 파티에 참석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단칼에 잘라냈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통화가 끊겨버린 후에야 자각했다. 통화를 끊었는데도 귓가에, 머릿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유리 조각처럼 단단히 박혀 상처를 내고 있는것만 같았다.


"오늘도...오늘도 나는..."


오늘도 나는, 그녀에게 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에게 또다른 상처를 내고 말았다.



-



"...무슨 파티?"


지민의 첫마디는 혹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는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그러고보니, 평소에 비하면 꽤 늦은 시간이긴 했다. 그래봤자 윤기가 할 수 있는 말은 네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매정하게 받아치는 것 밖에 없었지만.


지민에게 나름대로 마음을 풀려고 노력을 했던 것인데, 남준도 그렇게 해야만 앞으로의 길이 순탄할 것이라고 말을 했고. 오늘로서 보라색 편지가 도착하지 않은지 수 개월이 지났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고 온 후라서 그런지,


유독 지민이 밉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말똥말똥 자신을 쳐다보는 저런 깊은 눈이 싫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아서 더이상 같이 얘기를 했다가는 어처구니 없는 화풀이를 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지. 평소에도 지민은 자신에게 무슨 말을 꺼낼 때 많이 망설인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곤 했으나,


"왜. 무슨 할 말 있어?"


오늘은 유독 그 상태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만 같았다. 자켓을 벗어 옷걸이에 걸 때도, 차가운 냉수를 꺼내 들이킬 때도 줄곧 근처로 와서 서성거렸으니까. 끝끝내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고개를 휙 돌린 윤기는 기어이 지민에게 단말마의 말을 던지고 말았다.


"그게..."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아...그게 있죠..."

"카드로 오늘 학식 사먹었다는 말 할거면 안 해도 돼. 문자 알림 받았으니까."


그게 아니고, 지민은 한숨을 푹 내쉬며 신경 쓸 거 없다는 투로 말하는 그의 말을 듣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카드를 써서 학식을 먹었구나, 하고 다시금 되새기게 됨과 동시에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지민의 머리를 덮쳤다.


말해야만 했다. 연말 파티에 같이 참석해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모를 포함한 그 대기업의 사람들이 무슨 딴지를 걸어올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지민의 입장에서 거절이나 대항을 했다면 맞는 정도로 끝났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이상 어떻게 해서라도 윤기를 파티에 데려가야만 했다.


어찌보면 자신이 몇 대 맞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윤기의 입장에서는 무언가 말 할 것이 있는데 차마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데는 자신의 모습이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제 모습은 지민 스스로가 보기에도 제법 추했으니까. 어찌보면 그를 방패로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조금이라도 덜 맞아보겠다고 날뛰는 꼴이란. 말로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파티에 데려간다고 하지만 실상 파티에 데려가지 않았다가는 최종적으로 피해를 보게 될 사람은 자신이라는 생각에.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자꾸만 그에게 파티를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미루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몇 초 지나지 않아 복부가 욱씬거리는 것이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그렇게 한참을 그의 뒤만 쫓아다니다가 기어이 지민은 그에게 한 마디를 꺼냈다.


"...파, 파티에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요."

"파티?"

"네, 그..."


고모에게 초대받은 거예요, 라는 그 뒷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뻔히 의도가 보이는 초대. 누가 봐도 뻔히 그를 자랑거리로 삼겠다고 보이는 초대. 그따위 말을 예전부터 팬이었던 지민이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입술을 앙다물며 무어라 말을 이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하던 찰나에 낮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어. 날짜는 언제야?"


그 말에 딱히 가시가 돋힌 것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은 않았다. 수긍이라도 한듯한 그의 차갑고도 낮은 그 목소리에 지민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순간 마주치는 눈동자. 그는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모양인지 입술을 잠시 달싹였지만 이내 다시금 꾹 닫아버렸다.


그러더니 커다랗고 하얀 손을 들어 지민의 머리 위로 턱하고 올리더니 다시금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고생이 많다."


마치 지민에게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의 의도는 알았으니, 굳이 스스로 상처를 입으려 하지는 말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그 다정함을 무언가 알 것만 같다는 생각에 지민은 괜히 코 끝이 시큰거렸다.


"나중에 날짜 말해줘."


차가웠던 집안에 그저 민윤기라는 한 사람이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순식간에 없어졌던 온기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사라졌던 새까만 달이 다시 차오르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새까맣게 타버렸던 그의 마음이 다시금 상처를 입고 흰 부분을 억지로 드러내는 것처럼.


지민은 새하얗게 질렸던 자신의 얼굴이 돌아올 때까지, 그의 발걸음 소리가 방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하염없이 지켰다.

JM BOTTOM/ONLY SU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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